(11) ‘공화국’이라는 새 술을 ‘조선왕조’의 헌 부대에 담아왔던 대한민국

2018.03.29 21:19 입력 2018.03.29 21:37 수정

대한민국 70년의 초상

광복 70주년 당시 광화문광장 행사 그림. 하지만 광화문광장에서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찾을 수 없다.

광복 70주년 당시 광화문광장 행사 그림. 하지만 광화문광장에서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찾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공화국

“공화국에서 왔수다.”

어릴 적에 반공 드라마를 보면 남파간첩이 신분을 드러내면서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 공화국이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을 가리킨다. 그래서 예전에 나는 공화국이 공산주의 국가의 줄임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은 우리 대한민국이야말로 공화국이 아닌가. 모두가 아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이렇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정체로 하고, 공화국을 국체로 하는 국가인 것이다. 그런데 그냥 민주주의가 맞는가, 자유민주주의가 맞는가 하는 논란은 있지만 정작 공화국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은 없다. 정체는 약간이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국체는 자명한 것이기에 그런 것인가. 공화국은 단지 왕국이 아니라는 의미인가.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공화국의 의미는 딱 그 정도인 듯하다.

아무튼 한국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공화국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과연 공화국은 민주주의만큼 중요한 주제가 아닌 것인가. 정말 공화국은 단지 왕국이 아니라는 의미일 뿐인가.

프랑스 헌법 제1장 제2조는 공화국에 대한 규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일부는 이렇다.

② 국가의 상징은 청, 백, 적의 삼색기다.

③ 국가(國歌)는 ‘라 마르세예즈’이다.

④ 공화국의 국시는 ‘자유, 평등, 박애’이다.

이처럼 프랑스 헌법은 공화국의 시각적, 청각적, 언어적 상징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에는 이런 부분이 없다.(개별법에는 있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단지 선택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의 공화국이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공화국이 눈에 보인다, 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사실 민주주의는 행위의 영역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화국은 형식의 문제로서 눈에 보일 수 있고 보여야 한다. 민주주의가 소프트웨어라면 공화국은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소프트웨어인 민주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하드웨어인 공화국은 눈에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공화국은 눈에 보이는가.

정부 상징

정부 상징

대통령 문장

대통령 문장

공화국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 상징이라면 그러한 상징을 조형하는 것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우리의 공화국은 어떠한 상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상징을 통해서 상상 또는 재현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우리에게도 국가와 관련된 상징물이 없지는 않다. 대표적으로는 국기를 비롯한 국장(나라문장), 대통령문장, 정부 상징 등이 있다. 역시 문제는 거기에 공화국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가령 국기를 보자. 태극기는 고대 중국의 형이상학서인 <주역>에 나오는 태극을 주된 요소로 하는 상징물로서, 거기에서 심오한(?) 철학적 원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대 세속국가인 공화국의 요소를 찾을 수는 없다. 그리고 태극기는 원래 조선왕국의 국기였다. 사실 태극기의 배경과 탄생 과정을 안다면 많이들 갸우뚱해할 것이다.

프랑스공화국의 국시와 마리안상이 새겨진 문장.

프랑스공화국의 국시와 마리안상이 새겨진 문장.

물론 본래 그것이 무엇에서 왔던 간에 한국 현대사에서 태극기가 갖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신산고초를 함께해온 조강지처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천적인 도상의 한계가 사라지는 것 역시 아니라는 점에서, 속된 말로 원판 불변의 법칙이 태극기만 비껴가기를 바랄 수는 없다. 프랑스의 삼색기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공화주의적인 의미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과 비교하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뿐만 아니라 태극 문양을 응용한 국장이나 정부 상징도 그렇고, 제왕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이 새겨진 대통령 문장도 공화국 수반의 상징물로 적합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태극기가 구한말부터 민족의 상징이라는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과 태극기에서 공화주의적인 요소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은 유감스럽게도 나란히 진실이다. 하나의 사실이 다른 하나의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서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 엄연히 공존해왔다는 사실은, 우리가 상상해온 공화주의의 이미저리가 과연 무엇이었던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국기는 매우 신성시되어 왔다. 그런데 정작 그 이미지를 훼손시킨 것이 근자의 일명 ‘태극기부대’라는 사실 또한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태극기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해진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나는 이를 매우 징후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우리 공화국의 상징에 대해서도 되돌아봐야 한다.

광화문광장에 대한민국이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지난겨울 촛불시위대가 소리 높여 불렀던 이 노래를 이제 더 이상 광화문광장에서 들을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 광화문광장에 없는 것은 그 노래만이 아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광화문광장에는 대한민국이 없다. 그곳에는 이순신장군상과 세종대왕상이 있다. 둘 다 조선시대 인물이다. 광화문광장에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조형물도 없다. 인물상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화폐에도 대한민국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세종대왕, 이순신, 율곡, 퇴계, 신사임당….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왜, 대한민국 지폐에는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라 조선왕국의 사람들만이 있는가.

대한민국은 조선왕국을 계승한 국가인가. 민족과 국가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형식적으로는 입헌군주국이지만 사실상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만 하더라도 화폐에 등장하는 것은 개화사상의 선구자인 후쿠자와 유기치를 비롯하여 모두 근대 메이지 일본인이지 막부시대의 인물은 한 명도 없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어떠한 장소나 대상에서도 부르봉 왕조의 것은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의 모든 관공서에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공화국의 이념과 마리안상(Marianne像)이 새겨져 있을 뿐이다. 베르사유궁과 같은 역사적 유적을 제외하고는 왕조시대의 상징물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백주의 대한민국 한복판에는 조선이 버젓이 살아 있다. 광화문은 조선의 육조거리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중심가로인가.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은 조선왕국을 계승한 국가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헌법 전문에 명기된 대로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국가라는 사실이다. 상해임정은 조선의 회복이 아닌 새로운 공화국을 지향한 정부였다. 이런 명백한 사실이 어째서 광장에, 화폐에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물론 광화문광장에 대한민국 인물이 없는 것은 좌우 이념대립 때문이라고 핑계 댈 수도 있다. 우파는 광화문광장에 이승만과 박정희 동상을 세우기를 원하고, 좌파는 김구, 나아가 전태일 동상을 세우자고 할 것이다. 좌도 우도 아닌 중도파인 조봉암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좌파든 우파든 모두 공화국 안에서의 이념적 지형일 뿐이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고희(古稀)를 맞은 우리의 공화국이 광화문광장에 동상을 세울 만한 공통의 인물 하나를 갖지 못한 채, 그 자리를 왕조시대의 인물로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공화국 70년의 초상이자 성적표임을 부정할 수 없다.

공화국, 신화, 디자인

어떤 국가든 그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정한 신화 체계와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인류 역사에서 유구하고도 보편적인 왕국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서사와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오늘날 대중매체를 장악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러한 왕조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물들 아닌가. 그에 반해 공화국은 왕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가 짧고 그런 만큼 이미지도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앞선 공화국인 미국과 프랑스는 그런 것을 제법 많이 만들어낸 편이다. 일종의 공화국의 신화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공화국의 탄생과 공화국 신화의 탄생은 일치한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합중국과 프랑스공화국은 그러한 신화와 함께, 신화 속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고대 로마풍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미국 의회의사당.

고대 로마풍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미국 의회의사당.

미합중국과 프랑스공화국의 모델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정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로마의 공화정이 주요 모델이 된다. 이는 마치 르네상스가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 고대 문화의 부활을 의미하듯이, 근대의 공화정은 고대 로마 공화정의 부활을 서사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하였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서구 문명의 지속성은 바로 이러한 전통의 계승과 재생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의 근대 공화정은 근대 올림픽이 고대 올림픽의 계승을 주장하듯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전통의 발전적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모두 일정한 상징과 이미지의 창출을 동반했던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공공건물들이 한결같이 신고전주의 양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우리의 경우 역사 속에 공화국의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신라의 화백제도가 민주주의의 모델이라고 주장한 적도 있었지만, 그건 좀 억지스럽다. 우리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단초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오래된 것이면 오래된 것대로, 새로운 것이면 새로운 것대로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은 아직 자신이 공화국이라는 의식 자체가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공화국이야말로 제대로 된 서사와 이미지의 힘을 필요로 한다. 공화국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공화국 만들기의 진실과 거짓

2016년 대한민국 정부 상징 디자인이 발표되었다. 당시 이 사업을 추진했던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금 헌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여기에도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문제는 정부의 상징을 이렇게 뚝딱 만들어내어도 되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전에 물어보자. 공화국을 만드는 것과 공화국의 상징을 만드는 것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를.

모든 역사는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자주독립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해방, 건국, 경제 발전에서의 외부 효과는 컸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공화국 만들기는 결국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을 내재화하는 역사적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공화국을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상징과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역시 문제는 그러한 상징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아니라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공화국이라는 나무가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둥지를 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끈질기게 남아 있는 왕국의 상징을 제거하고 진정한 공화국의 도상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가야 한다. 진짜 메이드 인 코리아 공화국, 대한민국을 말이다. 그것은 공화국을 만드는 것과 공화국의 상징을 만드는 것을 일치시킬 때 가능할 것이다.

▶필자 최범

디자인을 통해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많은 디자인 평론가다.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지냈다.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 이론을 강의하며 출판·전시·공공 부문 등에서 활동해왔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 국내 유일의 디자인 비평 전문지 ‘디자인 평론’ 편집인이다. 평론집으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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