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바람’은 희망에 동의한다

2018.04.02 21:06 입력 2018.04.03 09:39 수정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 그땐 몰랐다. 세월호 참사 당일. 나는 진도체육관에 있었다. 그곳은 세월호 실종자 가족으로 가득 찼다. 첫날부터 정부관계자와 실종자 가족 간의 구조작업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이어졌다. 자정을 조금 넘길 무렵. 50대 남성이 체육관 연단 앞, 자유발언을 위해 놓아두었던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한참을 흐느껴 울고 분노에 울던 남성이 목이 메어 던진 한마디는 “이게 나라냐”였다. 그땐 그 체육관 안, 작은 외침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몰랐다. 말하기가 두렵다. 느낌이 생생하다.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한 장면, 대사가 뇌리를 스쳤다. “니들, 그 냄새를 맡아 본 적 있어? 새끼 잃은 부모 속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냐 이 말이여! 부모 속이 한 번 썩어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리 밖에까지 진동하는 거여!” 그 냄새는 정말 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게 나라냐’는 외침과 촛불은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웠고,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위로했다.

[세상읽기]‘천개의 바람’은 희망에 동의한다

#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 공공의창·우리리서치는 최근 한국 사회 공공성지수 관련 여론조사를 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필요성과 광화문촛불의 사회적 의미는 매우 높은 상관성(0.736)을 보였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공공성 확대 요구는 계속되어 왔다. 공공성 개념은 그 차원과 영역이 너무나 다양하지만, 헤겔의 말처럼 모든 개념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한국 사회의 공공성은 보수정부 10년 동안, 투명·소통·정의·평등·안전·공유·인권 등의 가치실현을 위한 욕구에 목말랐다. 공공성 확대는 제도뿐만 아니라 국민인식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공공성 인식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반영하며, 이는 제도 변화의 강도와 방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다원화된 한국 사회에서 국가·시장경제·시민사회로 분화되고 다시 연결되는 공공의 역할을 절차적 투명성과 내용적 공익성 등 6가지 지수로 나누어 조사했다. 지수마다 동의 여부를 묻는 방식으로 질문했다. 국가의 소통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질문한 ‘국가가 국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다’에 46%가, 국가의 정책편향성을 알아보기 위해 질문한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한다’에 30%가 동의했다. 또 시장의 공정경쟁 측면에서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에 29%가, 시장의 공평배분 측면에서 ‘누구나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에 25%가 동의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의 자율성, 즉 ‘우리 사회는 계층·지역·인종·종교 등에 의한 차별이 없는 사회’라는 데 23%만 동의했다. 담론권력의 공정성, 즉 ‘언론은 강자보다 약자를 잘 대변한다’엔 12%가 응답해 가장 낮은 동의율을 보였다. 응답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은 공공성지수는 없었고, 100점 만점에 평균 28점으로 평가되었다.

# 1인칭 숙제, 미투. 이번에는 촛불의 의미와 함께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물었다. ‘작년 광화문촛불이 부패한 권력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71%가 동의했다. 또 ‘미투 운동이 특정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일상적인 문제’라는 주장에 77%가 동의했다. 전자의 광화문촛불이 질문 그대로 부패한 정치·경제 권력에 보내는 국민의 심판인 반면, 후자의 미투 운동은 촛불이 촛불에게 던지는 우리 모두의 공적 과제인지도 모른다.

# 대한민국엔 희망이 있을까. 끝으로 두 개의 질문을 더 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한국 사회에서 가능하다고 보는지’를 물었다. 가능하다는 응답이 59%로 가능하지 않다는 응답(27%)보다 높게 나타났다. 또 ‘한국 사회는 정말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으로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바뀔 수 있다는 응답이 53%로 바뀌지 못한다는 응답(26%)보다 높았다. 슬픈 현실과 절박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가을곡식의 볕이 되고 어두운 밤의 별이 되어 불어오는 ‘천개의 바람’도 우리와 함께 희망이 될 것이다.

[세상읽기]‘천개의 바람’은 희망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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