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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천재 탄생 설화

2018.04.02 21:37 입력 2018.04.02 21:38 수정

[베이스볼 라운지]야구 천재 탄생 설화

처음엔 별명이 ‘천재’였다. KT 강백호(19)의 이름은 만화 <슬램덩크> 주인공 이름과 같았다. 만화 속 주인공 강백호는 스스로를 ‘천재’라 불렀다.

2018 KBO리그가 개막했고, 8경기씩을 치렀다. ‘야구 천재’라는 별명은 빈말이 아니었다. 진짜 실력을 설명하는 수식어가 됐다. KT 김진욱 감독은 강백호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 “천재성”이라고 답했다. 흡수력, 응용력, 적응력이 탁월하다. 강백호는 2006년 류현진의 타자 버전이다. 류현진은 그때 구대성 선배가 던지는 체인지업을 쓱 보고 따라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류현진이 그랬듯 진짜 천재를 만드는 건 기술과 재능이 아니라 ‘스토리’다.

강백호의 첫 홈런은 ‘20승 에이스’ 헥터 노에시(KIA)로부터 나왔다. 개막전 3회 풀카운트에서 바깥쪽 낮은 속구(147㎞)를 때려 왼쪽 담장을 넘겼다. 이른바 밀어친 홈런. 강백호의 약점은 바깥쪽 낮은 코스였다. 몸쪽 공은 강한 회전력으로 거침없이 장타를 날렸지만 바깥쪽 공은 툭툭 건드리기만 했다. 채종범 타격코치는 “특톡(talk) 효과”라고 했다. 캠프 때 강백호는 채 코치 방을 찾아 4시간씩 야구 얘기를 했다. “이승엽처럼 되려면 바깥쪽 공을 넘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특톡에 따른 결론이었다. 강백호는 다음날 바깥쪽 낮은 코스에 타격 훈련용 티를 세워놓고 휘둘렀다. 겨우 3~4번 공을 때리고 힘을 주는 방법을 알았다. 좌익수쪽 타구에 힘이 실렸다. 첫 홈런부터 밀어쳤다. 게다가 개막 1호 홈런이었다.

2번째 홈런은 3월27일 인천 SK전에서 터졌다. 김주한의 바깥쪽 체인지업을 또다시 밀어때려 넘겼다. 신인 타자가 약하다는 변화구를 노렸다. 조금 몰리기도 했지만 체인지업을 밀어때려 넘기는 기술은 쉽지 않다. 안치용 KBS N 해설위원은 “도대체 19살짜리가 어떻게 그런 테크닉을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안 위원은 “레그킥을 하고 몸통 회전이 시작됐는데도 마지막 순간 타이밍을 조절할 줄 안다”고 했다.

28일 나온 2루타 역시 천재성을 증명했다. 첫 타석에서 SK 선발 박종훈의 커브에 루킹 삼진을 당했다. 김 감독의 “커브가 눈에 보이냐”라는 질문에 “네 보입니다. 다음 타석에서는 커브 한 번 들어올려 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실제 다음 타석에서 117㎞ 커브를 거침없이 들어올렸고, 중견수를 넘어 펜스를 맞히는 대형 2루타를 만들어냈다.

30일에는 3호 홈런을 만들었다. 두산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의 몸쪽 꽉 찬 141㎞ 속구를 칼 뽑듯 방망이를 휘둘러 125m짜리 대형 홈런으로 연결했다. 헥터를 상대로 뽑은 홈런과는 완전히 반대 스타일이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더스틴 니퍼트에게 “홈런 하나 치고 오겠다”고 한 뒤 정말 홈런을 때렸다.

31일 장원준으로부터 뺏은 4호 홈런은 “말도 안되는 홈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볼카운트 3-1에서 좌완 장원준의 잘 제구된 백도어 슬라이더를 잡아채 넘겼다. 유한준은 “19살짜리가 볼카운트 3-1에서 속구가 아니라 슬라이더를 확신을 갖고 노렸다”면서 “지금까지 본 선수 중 이 정도 멘털은 딱 한 명이었다. 한창 때 강정호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산 좌익수 김재환은 “우리 편이 홈런을 맞는 상황인데도 ‘우와’ 소리만 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재환은 “저렇게 잘 제구된 공을 왼손타자가 때려서 넘긴다고? 정말 그 순간 믿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강백호에게도 슬럼프가 올 수 있다. 하지만 천재의 이야기는 이미 만들어졌다. KBO리그 역사에 또 하나의 스토리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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