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숨겼던 산수유 마을 할머니

2018.04.03 20:48

훌쩍 봄이 되었다. 남쪽은 온통 꽃물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구례의 봄을 떠올렸다. 구례의 봄은 노란빛이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들어간 작은 마을은 산수유로 물들어 있었다. 꽃동산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구나. 담장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긴 개울을 뒤덮은 산수유는 눈부셨다. 개울가 어디든 내려서면 꽃그늘이었다. 햇발에 너울대는 꽃에 취해 마을 고샅길을 돌아다니다 찾은 민박집은 개울가에 붙어 있었다. 툇마루에 서면 달물결이 보이고 달빛에 짙어진 꽃송이가 가물댔다.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아픔 숨겼던 산수유 마을 할머니

봄이 한창인데도 민박집은 텅 비어 있었다. 놀러 와서도 바쁜 사람들은 산수유가 늘어선 계곡을 따라 올라가 사진 몇 장 찍고는 관광버스를 타고 휘달리듯 떠나버린다고 했다. 꽃이 머무는 봄은 짧아서 그나마 줄지어 마을로 들어서는 관광버스 행렬도 오래가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 사람들 다 민박집 한다고 돈 들여 고쳤는데, 손님이 안 와. 그나마 우리 집이 자리가 좋아서 사람이 좀 있지.”

틈틈이 방문을 벌컥 열고 필요한 게 없는지 묻던 주인 할머니는 먹을 걸 가져와서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여기서 좀 떨어진 동네서 살다가 시집왔는데, 고생고생 말도 못해.”

우리 어머니들의 고생 연대기는 엇비슷했다. 1막이 끝나면 2막은 굳이 듣지 않아도 줄줄 읊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리하여 이제는 자식새끼들 공부 다 가르쳐 시집 장가 보냈으니 걱정 없다는 뻔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 하지만 주인집 할머니는 말끝에 담장 너머 산수유를 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봄꽃이 좋으면 맘이 아파. 내가 살던 동네가 여순사건 때 쑥대밭이 되었거든. 어려서 나는 잘 모르지만, 그때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내가 고생한 것도 다 그 탓인데, 누구한테 말도 못해.”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아픔은 잦아들지 않아, 할머니의 목소리는 힘없이 사그라졌다. 아픔을 감춰야 했던 이들의 아픔을 짐작키 어려운 나는 할머니를 따라 산수유만 바라봤다. 꽃나무의 옹이도 보굿도 보려 하지 않은 걸 부끄러워하면서.

제주도에 사는 친구가 보낸 동백꽃 배지를 옷에 달면서 산수유 마을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의 가슴앓이를 세상이 이제 덜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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