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성차별 채용, 여성행원 승진 발목 잡던 ‘전환고시’의 21세기판”

2018.04.05 21:52 입력 2018.04.05 22:21 수정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을지로 장교빌딩의 서울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을지로 장교빌딩의 서울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미투(#MeToo) 운동은 일상화된 차별을 딛고 젠더평등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새겨들으려면 일상의 권력을 성찰해야 한다. 고용과 노동은 여성이 일상의 권력을 실감하는 현실이다. 그간 여성 노동은 어떤 모습이었나. 경력단절, 일·가정 병행, 저출산, 독박육아 등이 그려진다. 고용갑질의 문턱을 넘어도 불평등한 노동현실과 부딪힌다. 사회적으론 ‘돌봄 노동’이 우선이라는 규범을 요구받고, 직업적으론 일에 몰두하는 노동을 요구받는다. 이처럼 노동과 젠더 사이엔 차별과 평등이라는 양극단이 엄존한다.

미투 운동은 여성 노동과 남성 노동이 평등한 사회로 이끌고 있다. 고용노동부 역할이 크다. 김영주 장관(63)은 여성 최초 노동부 수장이다. 김 장관은 ‘도서관보다 체육관과 가까웠던 농구선수, 고졸 학력의 은행원, 방송통신대를 졸업한 3선 국회의원, 장관’이라고 소개했다.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김 장관의 인생은 덤불투성이다. 여성 은행원, 노동운동, 여성 최초 금융노련 상임부위원장을 거쳐 문재인 정부 첫 노동부 장관까지 그가 덤불을 헤치고 만들어낸 길은 덜 알려져 있다. 평등으로 가는 직항로를 한번도 걸어본 적 없는 삶.

미투 운동 한복판에서 김 장관을 만났다. 3월23일 첫 인터뷰 이후 더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젠더평등과 노동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놓고 갑론을박도 오갔다. 인터뷰는 현안 문답이라기보다 하루에도 수차례 차별과 평등을 오가는 여성 기자와 여성 장관의 대화록에 가깝다.

- 최근 금융권의 성차별 채용비리가 드러나고 있다. 한마디로 고용갑질이다.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고용주들이 아직도 여성을 고비용 저효율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용 후에도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에 시달린다.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폭력이자 불평등의 민낯이다. 1970년대 서울신탁은행 재직 시절 전환고시라는 게 있었다. 당시 여성 은행원(여행원)은 그 자체로 직급이었다. 여행원들은 논문, 영어, 상식 등 4과목 중 하나라도 과락이면 승진은 엄두도 못 낼 전환고시를 치러야 했다. 성전환고시라고 불렀다. 금융기관의 성차별 채용비리는 21세기판 전환고시다.”

- 성별화된 노동시장에서 임금격차 문제도 심각하다. 실제 남녀 임금격차의 최대 50%가 ‘차별’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수치자료를 보이며) 우리나라 남녀 임금격차가 36.7%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프랑스 9.9%, 일본 25.9%,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5.6%다. 임금격차는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노동시장 차별, 근속중심 임금체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하는 문제다. 여성 경력단절 이후 재취업 일자리도 대부분 비정규직·단시간 위주라는 근본 문제가 있다. 여기에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노동문화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여성은 고과나 승진에서 항상 유리천장과 부딪혀야 한다.”

- 임금격차의 주원인은 지적처럼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15일 장관 임명장을 주면서 세 가지를 당부했다. 여성 경력단절, 임금체불, 산업재해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 딸도 경력단절이라는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훈련과 구직활동에 정부 지원이 늘어야 한다. 남성 육아휴직 독려를 위해 출산휴가를 10일(현재 3일)까지 늘릴 계획이다. 두 번째 육아휴직 인센티브 상한을 150만원에서 오는 7월부터 200만원까지 인상하기로 했다.”

- 최근 인천 남동공단에 거점형 직장어린이집이 문을 열었다.

“경력단절 여성들이 재취업해도 비정규직이 많다. 여성 노동자 10명 중 4명(41%)이 비정규직이고 30대부터 비중도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 현재 직장어린이집 943곳 중 중소기업 직장어린이집은 전체의 11.2%인 106곳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론 국공립 직장어린이집을 확대하는 게 가장 좋다고 본다. 그러나 300인 이상 사업장에 설치하도록 돼 있다. 거점형 직장어린이집은 영세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선 지원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다.”

- 성별 권력관계도 차별로 얼룩져 있다. 현재 여성 고위 공무원 비율은 6.1%, 공공기관 임원 비율도 11.8% 수준이다. 여성 관리직 비율은 10.5%로 미국 43.4%, 영국 35.4%, OECD 평균 37.1%와 비교해도 턱없이 낮다.

“취임 후 6급 이하 승진 대상자 중 여성은 20%대였다. 고과 해당자가 없더라. 그래서 담당자에게 고과 중심 관행을 깨고 능력과 실적 중심으로 평가 틀을 바꾸라고 했다. 그랬더니 6급 이하 여성 승진 비율이 40%대로 늘었다. 지난해 11월 광주고용노동청장에 비고시 7급 공채 출신인 김영미 서울고용센터장을 임명했다. 장관 의지가 중요하다.”

- 지난달 19일 펜스룰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행정지도 강화 등 대증요법에 치우친 느낌이다.

“성차별을 관대하게 보는 사업장이 많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부처 차원의 익명신고센터(www.moel.go.kr)를 운영하고 있는데 신고된 사업장이나 위반 사항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는 등 실효적 조치를 강화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은 증가했지만 절반 정도가 권리구제를 중도에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시정조치가 완료된 사건은 11%에 그쳤다. 노동부가 실질적으로 권리구제를 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방증한다.

- 차별은 폭력을 정당화하게 마련이다. 직장 내 미투 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이유도 이런 명제와 무관치 않다.

“피해자들은 생존과 기본권이 침해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크다. 실제 대부분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마주할 일이 없어진 이후 피해 사실을 밝힌다. 피해자 인접지로 가해자를 발령낸 서울교통공사 경우만 봐도 이런 인식조차 없는 것 아니냐. 신고 당사자를 가해자와 분리시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할 경우 사업주 책임을 강하게 물어야 한다. 직장 내 성희롱이 노동재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 남녀고용평등법이 있다 해도 정부가 적극 적용해야 하지 않나. 고용평등감독관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논란이 적지않다.

“앞으로 누구든지 피해 사건을 신고할 수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를 5월부터 실시한다. 엄중한 조치가 될 수 있게 위반할 경우 벌금형을 강화(현행 2000만원에서 3000만원)한다. 또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용평등감독관을 여성으로 의무 배치할 계획이다.”

- 미투 운동을 뿌리내리기 위한 정부 대응이 안이하다는 비판이 있다. 여성가족부만 화살을 맞는 현실(국가재정 0.8% 비율)이다. 종합대책이 필요하지 않나.

“여성 장관들은 여성 문제가 여성가족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모든 부처가 여성 문제를 다루는 부처라는 인식은 아직 약하다. 모든 부처가 협력해야 하고 그 컨트롤타워가 여성가족부여야 한다.”

- 대다수 노동정책이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지위 개선보다 노동력 활용에만 치우쳤다는 지적에 동의하나.

“남성은 노동, 여성은 가사라는 성별분업에 치우친 인식으로는 여성을 당연히 남성의 보조 노동력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다. 여성 노동을 아직도 부가적 노동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 임금, 일자리의 질 등을 소홀하게 접근한다. 그간 여성 일자리가 질보다 양에 치우쳐 숫자 늘리기에 급급했던 이유다. 여성들이 일하는 권리를 누리게 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 문재인 정부는 성평등 사회 실현을 주요 국정과제로 강조하고 있다. 잘 구현되고 있다고 평가하나.

“일단 여성 국무위원 30% 임명부터 시행해 내가 노동부 사상 첫 여성장관으로 임명됐다. 외교·국토교통부 등 국정 전반에 참여하는 핵심 부서에도 여성 장관을 기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각종 회의에서 한번도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게 여성 차별 문제다. 특히 여성 경력단절, 승진 차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한다. 대통령의 의지와 철학이 국정으로 연결된다고 볼 때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 미투 운동 시대 여성 노동부 장관이다.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있나.

“노동부는 갈등이 대립하는 최일선 부서다. 노사, 승진, 임금 등 노동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첫 관문이 노동부다. 여성 장관 임명은 여성 관점에서 이런 문제를 풀어가라는 의미 아니겠나. 책임을 무겁게 느낀다. 나는 흔히 말하는 ‘출세 자원’을 못 가졌다. 주어진 기회 속에서 치열하게 노력했다. 금융노조 부위원장 하면서 노동경제학 석사를 받았다. 항상 서 있는 자리가 최선의 자리라고 믿었다. 여성이 노력하다 보니 장관도 될 수 있었단 건 대단한 일이지만, 수혜가 아니라 여성이든 남성이든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게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미투시대 여성 노동부 장관은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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