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의 세계읽기

트럼프의 ‘이란 핵합의 처리’, 북·미 핵 협상 약 될까 독 될까

입력 : 2018.04.06 15:45:00 수정 : 2018.04.06 22: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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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세계읽기

김진호

경향신문 국제전문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미국 최우선주의(America First)’ 대외정책이 잇달아 시험대에 서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조정이냐 확전이냐 갈림길에 선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정해놓은 이란 핵합의 파기의 마감시한이 다가오고 있기 대문이다. 오는 5월12일로 정해진 마감시한은 공교롭게 4월27일 남북정상회담과 5월 안에 열릴 북·미 정상회담의 중간 시점이다. 이란 핵합의의 운명이 올해 들어 급속하게 해결 국면으로 접어든 북핵 해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언한 대로 2015년 7월 미·러·중·영·불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독일(P5+1)이 이란과 맺은 다자간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발을 뺄 경우 북한과의 새로운 핵합의가 어려워질 가능성은 분명 있다. 미·중 무역갈등의 해소가 상당 부분 양국의 손에 달린 반면에 이란 핵합의는 국제사회 전반의 핵확산금지 공동노력에 재를 뿌리는 것은 물론, 중동 정세에 다이너마이트가 될 수도 있다. 제재에서 벗어난 이란으로 달려가던 각국 기업들의 피해 및 이에 따른 세계경제의 타격도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13일 백악관에서 이란 핵합의를 인증하지 않겠다면서 연방의회가 이란 핵합의 검증법을 강화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이란 핵합의 존속 여부를 결정하는 마감시한으로 정해놓은 5월12일이 마침 북·미 정상회담 직전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란 핵합의의 운명이 북핵 합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13일 백악관에서 이란 핵합의를 인증하지 않겠다면서 연방의회가 이란 핵합의 검증법을 강화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이란 핵합의 존속 여부를 결정하는 마감시한으로 정해놓은 5월12일이 마침 북·미 정상회담 직전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란 핵합의의 운명이 북핵 합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 이란 핵합의와 트럼프 행정부

이란 핵합의는 트럼프의 평가와 달리 국제사회가 최근에 맺은 가장 성공적인 합의로 꼽힌다. 이란이 전력생산 목적 외 핵개발을 포기하고, 서방은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이란은 2025년까지 10년 동안 △1세대 원심분리기 1만9138개를 6104개로, △저농축우라늄 7154㎏을 300㎏으로 각각 줄이기로 했다. 또 △이미 장착된 최신 원심분리기 1008개와 △중농축우라늄 196㎏을 전부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이란의 원심분리기 연구개발은 나탄즈 핵시설에서만 허용됐다.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중수로는 전력생산만 가능토록 현대화하며 남는 중수로는 시장가격으로 해외반출키로 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의심스러운 핵시설에 대한 사찰권한을 갖게 됐다. 이란은 지난해 10월까지 모두 9차례의 IAEA 사찰에서 합의내용을 준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란의 적국인 이스라엘의 가디 아세코트 육군참모총장까지 “이란 핵합의는 작동하고 있다. 이란의 핵비전을 10년에서 15년 늦췄다”고 긍정평가하고 있다.

트럼프가 문제 삼는 것은 15년 뒤인 2030년 이란의 핵활동에 대한 제한을 모두 없애기로 한 일몰조항이다. 이란이 원하면 다시 핵개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또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 및 테러단체 지원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란이 거의 확보한 핵무기 1개 분량의 핵물질과 제재 해제를 주고받은 합의 결과를 지금 와서 무시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합의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협상 당사국들이 반발하는 까닭이다.

터키를 방문중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4일 앙카라의 대통령궁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시리아 위기를 논의하기 위한 3자 정상회의를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 파기를 위협하는 것과 관련해 “이란은 마지막 순간까지 합의를 준수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앙카라 | EPA연합뉴스

터키를 방문중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4일 앙카라의 대통령궁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시리아 위기를 논의하기 위한 3자 정상회의를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 파기를 위협하는 것과 관련해 “이란은 마지막 순간까지 합의를 준수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앙카라 | EPA연합뉴스

■ 트럼프는 무엇을 원하는가

대선 유세 때부터 이란 핵합의를 두고 ‘최악의 합의’라고 비난해온 트럼프는 상당한 수준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일몰조항을 없애고 탄도미사일 개발 및 테러단체 지원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고 24시간 상시 사찰할 수 있도록 IAEA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세 중에는 이란 핵합의에 이란·북한 관계에 대한 조항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적도 있다. 미국은 국내적으로 이란 핵합의 검증법(코커-카딘법)에 따라 행정부가 매 90일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하는지 의회에 보고토록 했다. 대통령이 이란의 합의 준수를 불인증하면 의회는 60일 내 제재 재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트럼프는 지난해 10월 이란 핵합의를 불인증하면서 의회를 상대로 이란의 테러단체 지원 사실이 드러나면 자동으로 제재를 재개하도록 코커-카딘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의회가 응하지 않자 트럼프는 지난 1월12일 대이란 제재의 재개를 120일 동안만 마지막으로 유예했다. 그때까지 이란 핵합의 공동조인국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이 합의안의 ‘끔찍한 결함’을 시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트럼프는 성명에서 “이번이 (합의안을 살릴) 마지막 기회”라면서 조건이 맞지 않으면 즉각 파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시한이 5월12일로 다가온 것이다. 미국은 브라이언 훅 국무부 정책계획국장을 협상대표로 공동조인국들과 핵합의의 보충협약 형식으로 미국의 요구를 반영하는 협상을 하고 있지만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훅 국장은 미국이 파기에 따른 비상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 사이에 불인정한 이란 핵합의 운명 결정

대선 유세 때 말펀치에서 출발 파기가 실제 트럼프의 입장인지
양보 더 끌어내기인지도 불분명 100% 실행 스타일 아닌 점 유념

“이란 핵문제가 다가오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지켜보자”
말 아껴 좋은 협상가 인상 심기 내달 12일 뚜껑…북핵에도 영향

■ 생각 못할 것을 생각하라?

‘생각 못할 것을 생각하라(Think the Unthinkable)’는 것은 트럼프 시대의 새로운 상식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등 FTA에 대한 반감, 멕시코와의 국경장벽, 무슬림 입국금지 조치 등 설마했던 트럼프의 공약들이 잇달아 실현됐거나 실현되는 과정에 있다. 군사퍼레이드까지 계획하고 있다. 트럼프가 펼쳐 보여주는 ‘증강현실’이다. 트럼프의 ‘미국 최우선 외교정책’에는 3가지가 없다. 우방과 가상적국의 피아 간 구분이 없고, 전통적인 다자간 외교의 틀과 제도는 물론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외교적 상식도 없다.

지난 3월21일 이란의 새해인 노우루즈를 맞아 이란 종교도시 마샤드에 모인 주민들이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축사를 듣고 있다.   마샤드 | AFP연합뉴스

지난 3월21일 이란의 새해인 노우루즈를 맞아 이란 종교도시 마샤드에 모인 주민들이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축사를 듣고 있다. 마샤드 | AFP연합뉴스

댓바람에 펀치부터 날리고 대화는 나중에 한다는 점에서 ‘권투(Pugilism) 외교’라는 말도 쓰인다. 이란 핵합의는 대표적으로 트럼프가 2016년 대선 유세 과정에서부터 일방적으로 펀치부터 날리고 해결을 떠넘겨온 사안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의회에, 올해 들어서는 유럽 3국에 각각 해결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최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후임에 내정한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존 볼턴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강경파를 보강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말을 100% 행동에 옮기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말을 그대로 믿어서도 안된다. 이란 핵합의 파기가 실제로 트럼프의 입장(position)인지, 아니면 이를 토대로 새로운 양보를 받아내려는 태세(posture)인지도 불분명하다. 트럼프에게 ‘최악의 합의’는 이란 핵합의뿐이 아니다. NAFTA는 여전히 ‘사상 최악의 합의’이고, 최근 재협상을 한 한·미 FTA도 ‘끔찍한 합의(horrible deal)’였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이러한 합의를 모두 파기한 것은 아니다. 2015년에는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는 대신 강화할 것”이라고 공개 발언한 적도 있다.

■ 이란 핵합의 처리는 북핵 합의의 전조

우리의 관심은 이란 핵합의에 대한 트럼프의 결정이 과연 북핵 해결에 먹구름을 드리울 것인가에 쏠린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핵에 대한 단호한 입장이 언젠가 있을 북한과의 핵합의 때문이라고 강조해왔다.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는 작년 10월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불인증은 북한에 대한 완벽한 메시지”라면서 “(향후) 북한과의 나쁜 합의에 결코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상식적으로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은 말이 안된다. 무엇보다 핵능력이 다르다. 이란은 단 1개의 핵탄두도 보유하지 못했지만 합의까지 이르는 데 수개월의 대화와 2년여에 걸친 기술적, 정치적 협상이 필요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북한이 0.5개에서 1개 분량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던 1994년 제네바합의 당시와 비슷하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합의문 서명까지 1년7개월이 걸렸다. 평가 주체에 따라 다르지만 20~60개 정도의 핵무기는 물론 폐연료봉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시설을 갖고 있는 북한 핵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미지수다. 이란이 고작 핵무기 1개 분량의 핵물질을 거의 확보한 상태에서 협상에 나섰다면, 북한은 핵탄두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실어 미국을 공격할 능력을 거의 확보한 상태다.

여기에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의 비핵화(CVID)는 물론, 즉각적인 비핵화가 트럼프 행정부가 갖고 있는 결코 소박하지 않은 목표다. 트럼프는 주요 외교안보 이슈에서 선거 유세 때부터 일관된 입장과 태세를 취해왔다. 하지만 이란 핵합의와 달리 북한에 대해서는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둔 발언을 더 많이 내놓았다. 일반적 논리로는 비교가 안되는 이란과 북한 핵 문제도 트럼프를 주어로 재배열하면 맥락이 연결된다. 트럼프는 이전 대통령들이 잘못 해결했거나 오랫동안 해결을 미뤄 결국 자신에게 떨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FTA에서부터 이란이나 북한 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좋은 협상가’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기존의 이란 핵합의는 재협상의 대상이지만 북핵 합의는 첫장부터 써나가야 하는, 미답의 영역이라는 점일 뿐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20일 백악관을 찾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과 만난 자리에서 “이란 핵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면서 말을 아꼈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어려운 이슈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수없이 반복해온 표현이다. 트럼프가 과연 좋은 협상가인지는 이란 핵합의에 대한 처리 과정에서 그 일단이 드러날 것 같다. 보다 구체적인 면모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첫 대좌에서 나올 것 같다. 그의 말대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 남북한 지도자가 과연 좋은 협상가인지와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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