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근혜 징역 24년, 역사의 심판이다

2018.04.06 21:03 입력 2018.04.06 21:06 수정

“박근혜 피고인을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원에 처한다.” 6일 오후 3시50분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김세윤 부장판사가 판결 주문(主文)을 낭독한 순간, 한국의 법치와 민주주의는 다시 새로운 장(章)을 열어젖혔다. 법원은 1심에서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인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나이(66세)를 고려할 때 사실상 종신형에 가까운 중형이다. 신임해준 주권자를 배신하고, 헌법이 명시한 원칙과 가치를 유린하고, 국가 기강을 문란케 한 데 합당한 심판으로 평가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 선고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비롯한 대다수 공범들이 앞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박 전 대통령과의 공모 관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18개 혐의 가운데 16개를 유죄로 판단했다. 국정농단 사태의 발단이 된 미르·K스포츠 재단 후원금 출연 압박(직권남용·강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최씨 딸 정유라씨 승마훈련비를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 핵심 공소사실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문화예술계 특정 인사들을 정부 지원 사업에서 배제한 ‘블랙리스트’ 및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공무원들에 대한 부당인사도 유죄로 인정했다. 징역 24년은 검찰이 구형한 징역 30년보다 낮지만 최순실씨에게 선고된 징역 20년보다는 높다. 국가 최고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청렴성과 도덕성을 훼손한 만큼 사인(私人)인 최씨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이나 공천 불법개입 혐의 공판이 남아 있는 만큼 형량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국민 전체의 자유와 행복, 복리 증진을 위해 행사할 의무가 있었다”며 “그럼에도 자신과 오랜 사적 친분을 유지해온 최서원(최순실)과 공모해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등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질서가 큰 혼란에 빠지고 결국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까지 이르게 된 주된 책임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있다”면서 “다시는 대통령이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범행을 모두 부인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주변에 전가하는 태도를 보인 점도 양형 사유에 포함시켰다.

유감스러운 점은 박 전 대통령의 불출석이다. 지난해 10월 구속기간이 연장된 이후 재판을 거부해온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건강상 이유’를 대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TV 생중계로 온 나라가 지켜본 선고공판마저 궐석재판으로 진행되는 파행이 빚어졌다. 대통령 재임 중 그토록 법치를 강조하던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사법 심판의 대상이 되자 법치를 부정하고 모욕하는 쪽으로 돌변했다. 국가 형사사법 절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오만한 태도는 공소사실과 별개로 비판받고 응징되어야 마땅하다. 박 전 대통령이 향후 상급심에서도 이 같은 태도로 일관할 경우, 심리를 맡게 될 재판부는 강제구인 절차를 통해서라도 그를 반드시 법정에 세워야 한다. ‘법 앞의 평등’에 예외란 있을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재판이 유죄 선고로 끝나면서 길었던 국정농단 사건은 이제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를 직간접적으로 방조한 정치인과 검찰 등에 대한 심판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한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명박)이 조만간 구속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된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단죄는 그들 개인과 일가를 형사처벌하는 차원에 머물러선 안된다. ‘이명박근혜 9년’의 종언을 넘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져야 한다.

‘촛불’을 통해 불의한 권력을 합법적·평화적으로 끌어내린 시민들은 과거에서 탈피한, 완전히 다른 공동체를 갈망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이 살아 숨쉬는 나라, 부와 힘과 명예가 특정 계층·세력에게 독점되지 않는 나라를 바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재벌개혁을 통한 정경유착의 근절, 검찰과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의 환골탈태, 직장·학교·가정 등 일상공간에서의 민주화를 요구한다. 위정자들은 이러한 시민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담아낼지 숙고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권자의 상처가 서서히 치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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