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비핵화·붕괴론…북한에 대한 편견에 답하기

2018.04.06 21:23 입력 2018.04.06 21:43 수정

선을 넘어 생각하다

박한식·강국진 지음 | 부키 | 320쪽 | 1만6800원

지난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 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북측 관람객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지난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 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북측 관람객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봄이 온다.’ 지난 1일과 3일 진행된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 제목이다. 정말 한반도에 봄이 오고 있을까. 보수 정부 9년간 단절됐던 남과 북의 관계가 경이로운 속도로 빠르게 복원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분단 70여년, 남과 북 사이에는 단기간에 메울 수 없는 인식의 간극이 존재한다.

이 책의 저자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북한에 대한 흔한 오해와 편견들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북한 붕괴론, 인권 문제, 대북 퍼주기 논란, 통일의 당위성, 비핵화, 중국의 셈법 등 폭넓은 주제들을 다루는데, 핵심은 ‘우리가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50여차례 북한을 방문했고,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들의 방북을 중재한 북한 전문가다. 2010년 예비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받았다.

[책과 삶]비핵화·붕괴론…북한에 대한 편견에 답하기

‘북한이 곧, 또는 언젠가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은 미국 매파나 한국 보수의 사고에 깔려 있는 기본 전제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이 같은 인식이 북한 체제를 오해한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그는 “북한 체제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단 한 번도 정통성의 위기를 겪지 않았”다며, 북한의 시스템이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고 있어 설령 김정은이 암살된다고 해도 끄떡없다고 주장한다.

민중봉기나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도 낮게 점친다. 북한 인구의 약 14%인 360만명의 조선노동당 당원과 그들의 지인들을 포함하면, “4분의 1은 북한 체제에 충성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장마당 등 일부 시장경제적 요소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철저히 통제되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시장화가 북한 체제를 흔들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지나치다. 저자는 “‘북한 붕괴’의 결말은 ‘독일’이라기보다 ‘시리아’에 더 가깝지 않을까”라며 북한 붕괴론이 대북정책에 악영향을 줄 뿐이라고 비판한다.

북한에 대한 인식을 지배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김정은이 ‘미친놈’이자 ‘포악한 독재자’라는 시각이다. 김정은 집권 후 벌어진 장성택 처형, 김정남 암살,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 등은 이 같은 시각을 강화시켰다. 저자는 이 역시 북한 내 권력 작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북한은 ‘1인 독재’가 아닌 “조선노동당이 지배하는 일당 독재국가”라는 것이다. 또한 김정은을 ‘미치광이’로 보는 것은 “주어가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바뀌었을 뿐 사실 매우 익숙한 줄거리”라며 “김정은은 ‘북한의 덩샤오핑’이 되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북핵 문제를 두고 “본질적으로 북·미 적대관계가 낳은 어두운 유산”이라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애틀랜타에 머물고 있는 박 교수는 지난 5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중국, 러시아를 포함해 다자간 평화조약과 불가침협정을 체결해 북한에 평화를 보장하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정치적 제스처로 비핵화 선언이 나올 수도 있다”면서도 “실제 북한 비핵화 이행은 매우 어렵고,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는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책에서 그는 트럼프의 ‘장사꾼’ 기질로 인해 북한과의 거래로 얻는 이익이 크다고 판단하면 북·미관계가 전격 개선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들어 베일 속에 가려진 북한을 바로 알리겠다는 의도로 쓴 책들이 제법 나왔다. 탈북자들이 격정적 어조로 쓴 책들을 빼면, 주로 외신 기자나 외국인 학자, 국제기구 활동가들이 필봉을 휘두르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박 교수는 이 책에서 학자적인 균형 감각을 유지하며 북한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고자 한다. 그는 “북한은 이른바 김일성 주체 종교가 지배하는 국가이고, 끊임없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찬송가를 만들어 내는 체제”이자 “김일성 ‘왕국’”이라고 일갈한다. 조선노동당은 “배타적 민족주의 정당”이고, 단군 신격화나 고조선 도읍 ‘평양설’에 집착하는 북한 역사학계가 “국수주의적 경향에 사로잡혀 있다”고도 지적한다.

다만 북한을 악마화하지 않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의문을 갖게 만드는 주장들이 더러 있다. 저자는 장성택이 개인주의와 사익 추구 등 북한 체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태도를 보였기에 당이 처형을 결정했다고 주장하는데, 어쨌든 김정은이 이를 승인 또는 묵과했을 것이고, 처형 자체는 반인권적·반근대적 행위다. 북한 인권 문제 역시 탈북자의 증언이 부풀려지고 인권 이슈가 정치화되는 현실을 감안해도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책 전체에는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나 분단, 한국전쟁, 4·19 혁명을 겪고 1965년 도미해 정치학자로 살아온 그의 내공이 흐른다.

책의 각 장을 언론인 강국진이 짧은 질문으로 열면, 박 교수가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한 맥락과 역사를 술술 풀어낸다.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은 미국이 덧씌운 프레임이라거나, 한국 정부가 “자기 머리로 생각 않는 외교” 때문에 이를 따라갔다고 보는 지적은 응당 타당하다. 이제는 ‘안보 접근법’이 아닌 ‘평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박 교수는 통화에서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된다는 것이 대통령의 좌우명이어야 한다. 한·미 안보체제에 금이 가더라도 트럼프에게 선제공격은 안된다고 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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