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박, 최순실 사적 요구 알고도 대기업에 출연금 압박”

2018.04.06 21:45 입력 2018.04.06 21:47 수정

‘안종범 수첩’ 정황증거 채택…미르·K재단에 774억원 출연 ‘강요’

문화계 블랙리스트 ‘공범’ 책임…‘노태강 사직’ 등 직권남용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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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66)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내내 “최순실에게 속은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가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을 선고한 내용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최씨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최씨가 사적인 요구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알면서도 대기업들에 이를 전달해 압박했다고 판단했다. 핵심 증거인 ‘안종범 수첩’은 ‘정황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 “박근혜, 최순실 부탁 적극 요구”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774억원을 내도록 대기업들을 압박한 혐의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재단을 설립하는 것으로 알았을 뿐”이라며 “재단이 최씨와 관련된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재단 이름과 이사장, 임원 명단을 내려주며 그대로 임명하도록 했다. 그 재단 명칭은 최씨가 정한 것이고, 임원진도 최씨가 채용을 결정한 사람들”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씨로부터 KD코퍼레이션이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현대차에 요구한 혐의(직권남용·강요)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최씨가 자신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회사에 대해 사적인 부탁을 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현대차에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의 공모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가 기술이 좋은 중소기업이라고 하기에 현대차에 알아보라고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해왔지만 재판부는 “최씨는 기술력이 좋은지, 아닌지 추천할 전문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 삼성·롯데·SK 뇌물 232억원 인정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준 뇌물은 73억원이 인정됐다. 삼성이 최씨가 설립한 코어스포츠에 정유라씨 승마 훈련비용 명목으로 송금한 36억원과 말 3필 등이 포함된 액수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승마협회 운영에 대해 질책하면서 임원 교체를 요구하는 등 직접 관여를 했고, 박 전 대통령이 원하는 게 정씨 승마 훈련비용 지원인 것을 파악한 삼성 측이 돈을 최씨에게 보냈다고 봤다. 이 혐의는 ‘부정한 청탁’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뇌물죄가 적용돼 뇌물수수자와 공여자 사이에 대가관계만 있으면 죄가 성립한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기업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었다”며 “은밀한 방법으로 최씨를 통해 거액의 돈을 받았기 때문에 뇌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승인과 관련해 편의를 봐주는 대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하남 체육시설 건립비용 명목으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강요·제3자뇌물)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은 “나는 몰랐다”며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한 일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혐의 역시 박 전 대통령이 주도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신 회장과 면세점 이야기를 나눈 뒤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안 전 수석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89억원의 K스포츠재단 지원금을 요구한 혐의(제3자 뇌물요구)도 유죄로 인정됐다.

■ “블랙리스트 알고도 중단 지시 없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문화예술인에 대해 보조금 지원을 배제하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운용한 혐의(직권남용·강요)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은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며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책임을 떠넘겨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문제 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등 종합적 보고서뿐만 아니라 책임심의위원·문제 상영 영화관 배제 등 구체적인 사항도 보고받았고, 중단하라는 별도의 지시를 한 적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지위를 종합하면 박 전 대통령이 구체적인 행위마다 인식하지 않았더라도 범행 전체에 대해 공범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헌법과 문화기본법에 반하는 조치”라고 했다.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과 문체부 1급 공무원 3명에 대한 사직강요 혐의도 재판부는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들에 대한 사직서 제출 요구는 위법한 블랙리스트 집행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자의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직권남용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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