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에 찢긴 9년…“MB 구속만으로는 되돌릴 수 없다”

2018.04.07 06:00 입력 2018.04.09 10:19 수정

4대강 공사로 내쫓긴 두물머리 농민... 용산참사로 아버지 잃고 복역한 철거민



[커버스토리 - 이명박이 남긴 그늘]국가폭력에 찢긴 9년…“MB 구속만으로는 되돌릴 수 없다”


지난달 22일 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뇌물수수·횡령·조세포탈·직권남용 등이 주요 혐의다. 그러나 이러한 비리 혐의를 규명하고 처벌하는 것만으로 이명박 정부의 과오가 모두 청산되지는 않는다. 구속영장에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졌던 국가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국민의 생존권을 앗아간 4대강사업, 용산참사가 대표적이다.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어도 피해자들의 훼손된 삶은 9년 전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4대강 공사로 두물머리에서 내쫓긴 농민 최요왕씨와 용산참사로 아버지를 잃고 감옥에서 4년을 복역한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9년을 ‘뒤집어씌웠다’는 말로 요약했다. 지난 9년은 국가폭력의 피해를 개인이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산 세월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여론이 반대하는 4대강사업의 명분을 찾기 위해 30년 가까이 두물머리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에게 ‘식수원 오염원’이라는 책임을 ‘뒤집어씌워’ 내쫓았다. 이 위원장과 철거민들은 용산참사 화재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4년을 복역했다. 이 위원장이 감옥에서 2009년 1월20일을 고통스럽게 곱씹고 있는 동안 당시 진압의 총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회의원까지 되며 승승장구했다.

최씨와 이 위원장은 일부 비리 혐의만을 적용해 이뤄진 이 전 대통령의 구속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에 대한 철저한 조사,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삶은 2009년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지만, 적어도 제2의 4대강사업, 용산참사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형·동생서 원수로…MB에 ‘공동체 파괴’ 손배 청구하고 싶다”

두물머리 ‘4대강 피해자’ 최요왕·방춘배씨

경기도 양수면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 최요왕씨(왼쪽)와 방춘배씨가 지난달 30일 과거 유기농지가 있던 두물머리에 서 있다. 2009년 두물머리가 4대강사업 구역으로 선정되자 최씨와 방씨는 3년4개월 동안 4대강사업 반대 및 유기농지 보전을 위해 싸웠다. 이상훈 선임기자

경기도 양수면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 최요왕씨(왼쪽)와 방춘배씨가 지난달 30일 과거 유기농지가 있던 두물머리에 서 있다. 2009년 두물머리가 4대강사업 구역으로 선정되자 최씨와 방씨는 3년4개월 동안 4대강사업 반대 및 유기농지 보전을 위해 싸웠다. 이상훈 선임기자

“막상 무덤덤하더라고요.” 최요왕씨(53)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에 대해 “그냥 그런가보다 하죠, 뭐”라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구속 결정이 알려지자 소셜미디어에 ‘경축’이라는 글을 올린 지인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최씨는 그렇게 바라던 일임에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상수원 보호 유기농 장려하다
‘오염원’ 몰아붙여 4대강 강행
한국 사회서 농민은 가장 약자
국토부·환경부 관료조직 여전

최씨는 2004년 귀농해 경기 양평군 두물머리에 터를 잡았다. 최씨의 귀농은 안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2009년 4대강 사업이 두물머리에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후 최씨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이 변했다.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된 3월22일 밤 최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구속됐다 하더라도 2009년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것이고, 지금 농지 처분해서 5억 빚을 갚고 옛날 농지로 돌아가지도 못할 것이고, 4대강 복원이 추진될 수도 있겠지만 쫓겨난 농민들을 다시 농사짓게 하지는 않을 것이고, 설사 (이 전 대통령이) 극형에 처해진다 한들 자살한 농민들, 암 걸려 돌아가신 그 형이 살아날까, 해체된 가족이 복원될까.”

■ 복원되지 않는 삶

지난달 30일 경기 양평군 양수면에 위치한 최씨의 딸기농장에서 최씨와 방춘배씨(45)를 만났다. 최씨와 방씨는 2009년 5월부터 2012년 8월까지 3년4개월 동안 4대강 사업 공사 강행에 맞서 싸웠다. 방씨 또한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어도 현실은 변한 게 없다고 단언했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4대강 사업을 강행했던 국토부, 환경부의 관료 조직들이 바뀔 수 있을까요. 4대강 재자연화에 대한 시민사회 논의도 있지만 수문 열고 보 철거한다고 끝날 문제는 아니에요. 그때 농민들이 입었던 피해, 공동체의 피해에 대한 정밀한 조사조차 안되고 있거든요.” 지난달 28일 경실련·녹색연합·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모여 4대강 재자연화위원회를 발족했다. 최씨와 방씨는 ‘재자연화’ 취지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여기에서도 피해 농민들은 주목받지 못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커버스토리 - 이명박이 남긴 그늘]국가폭력에 찢긴 9년…“MB 구속만으로는 되돌릴 수 없다”

“농업이 한국 사회에서 처한 위치가 그런 거겠죠.” 최씨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집단이 농민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을 강행하는 명분으로 ‘유기농업이 팔당상수원을 오염시킨다’고 몰아세울 수 있었던 것도 농민들이 약자였기 때문이다. 최씨는 “농민들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말했다. 팔당의 유기농업은 물관리 정책 때문에 시작했다. 상수원의 수질 관리를 위해 토지 이용이 엄격하게 규제됐고 지역주민들의 불만은 컸다. 지역 개발과 상수원 수질 보호라는 정책목표를 조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주목받은 게 유기농업이었고 정부에서도 이를 장려했다. 4대강 사업이 추진되자 정부는 농민들을 땅에서 내보내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지원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며 여론전을 시작했다. 삼보일배, 도보순례, 단식 등 몸을 던져 3년4개월간 싸웠으나 결국 농민들은 두물머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싸운 두물머리 4가구 앞에 3억원의 비용 청구를 명시한 행정대집행 계고장이 날아왔을 땐 더 버틸 수가 없었다.

정부 여론 몰이에 찬반 갈려
농토 읽자 마을공동체도 깨져
‘마은의 간극’ 이젠 복구 힘들어

물론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방적인 정부안을 막고 ‘생태학습장 조성’이라는 당시 종교계의 중재안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졌죠. 지긴 졌는데 그래도 싸우다 졌으니까 덜 억울하긴 해요. 처음부터 그냥 져버렸으면 비참했을 테니까요.” 최씨는 말했다.

■ 빚과 사라진 공동체

투쟁의 성과는 있었지만 농민 개개인에게 남은 건 감당할 수 없는 빚이었다. 점용허가를 받으면 두물머리 하천 부지에서 국가에 저렴한 임차료만 내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제가 귀농할 때만 해도 없는 사람도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부모에게 땅을 물려받지 않은 이상 농사짓기 어렵죠.” 최씨가 말했다. 두물머리를 떠나면서 새로 농사지을 땅을 구입해야 했던 최씨에게는 지금 5억원이 넘는 빚이 있다. 매출이 연 3000만~4000만원인 최씨는 700만~800만원의 대출 이자를 내기도 힘들다. “5년 후부터 원금을 갚아 나가야 합니다. 사실 대책은 없어요. 원금 갚을 때 되면 아무래도 땅을 다시 팔아야겠지요.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우리는 곧 망하겠죠.”

쫓겨난 농민들과 빼앗긴 농토
MB가 처벌 받는다고 돌아오나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던 땅이 사라지자, 그 땅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마을공동체도 사라졌다. 규제가 심한 지역이었기에 ‘(상수원이 옮겨질 수 있도록) 팔당댐에 제초제를 타고 싶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였다. 정부는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의 갈증을 파고들었다. 4대강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주민들 사이도 갈라졌다. “공동체가 거의 깨졌다고 보면 돼요. 이런 국책사업이 있을 때마다 형·동생 하던 사이가 찬반으로 갈려 완전히 원수가 됩니다.” 방씨가 말했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정부는 관변단체나 지역토호들을 중심으로 4대강 찬성 여론을 조성했고 마을은 ‘4대강 반대’와 ‘4대강 찬성’으로 갈라졌다. “우리 되게 재미있었어요. 풍물도 하고, 축구모임, 족구모임, 당구리그전 다 했죠. 이젠 그게 안돼요. 마음에 간극이 생겼거든요. 어쩌다 한번씩 길 가다 마주치면 ‘어떻게 살아’ ‘그냥 살지 뭐’ 반갑게 인사는 주고받지만 다시 복구가 안돼요. 나는 그걸 정말 이명박한테 손해배상 청구하고 싶어요.” 최씨가 씁쓸하게 말했다.

농민들의 삶과 뒤바꾼 4대강 공사는 두물머리를 어떻게 바꿔놨을까. 생태학습장이라고 조성된 곳은 이름만 내걸었을 뿐 마구 자란 잡풀만 무성했다. “여기가 정말 작물이 잘됐어요. 저쪽에 형 농지가 있었나.” 방씨가 가리킨 곳은 황량하기만 했다.



재자연화위 발족…환경과 함께 피해 농어민의 삶도 ‘복원’해야

감사원, 4대강사업 재조사

검찰이 청구한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에는 이 전 대통령이 4대강사업과 관련해 대보건설 최등규 회장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도 적시됐다. 4대강사업과 관련한 문제점이 이뿐일까. ‘종합비리백화점’ ‘4대강 게이트’라는 말이 나올 만큼 4대강사업은 시작할 때부터 의혹투성이였다. 지난해 6월 감사원이 4대강사업에 대한 네 번째 감사를 시작하고 환경부 환경정책제도개선위원회가 4대강사업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킬지 논의 중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예비타당성 문제

4대강사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졸속으로 시행령을 개정해 4대강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서 면제한 것은 4대강사업과 관련한 감사나 국민소송에서 늘 쟁점이 됐다.

이명박 정권 초인 2009년 3월 당시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재해 예방 지원을 목적으로 시급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는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에 추가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대형 신규 공공투자사업의 타당성을 미리 조사하는 제도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제대로 실시했다면 4대강사업은 실행될 수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이는 국민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2009년 1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국민소송단’에 참여해 4대강사업의 위법성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1심 법원은 적법하다고 판결했고 감사원은 이 판결을 근거로 제시하며 2011년 첫 감사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 6개월 만에 끝난 환경영향평가

예비타당성 조사뿐만 아니라 환경영향평가와 문화재 조사 또한 제대로 진행하지 않아 환경영향평가법, 문화재조사법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있다. 보통 환경영향평가는 1년이 걸리지만, 4대강사업은 6개월 만에 마쳤다. 공사현장에서 문화재보호법 위반도 만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유은혜 의원이 문화재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4대강 공사 과정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지표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등의 혐의로 220곳의 공사 관계자를 형사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감사원 감사와 국무조정실의 조사 결과에 따라 이뤄졌다.

■ 대형 건설사 담합, 공정위의 봐주기

대형 건설사의 담합행위와 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솜방망이 처벌 또한 재조사 쟁점이다. 2012년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4대강사업에 참여한 건설사들이 14개 공구를 사전 합의에 따라 배분하는 등 담합행위를 했다. 이들이 담합행위로 거둔 부당이득에 비해 공정위 처벌이 경미해 ‘봐주기’ 의혹도 제기됐다. 2016년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질의에서 “4대강 공사 입찰 담합 사건에서 건설사들이 1조6630억원의 부당이익을 올렸는데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규모는 1115억원에 불과하다”며 “1조5000억원이 남는 장사인데 누가 법을 안 어기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국토부 등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건설업체 담합에 대해 방조했는지도 조사 대상이라는 지적이다.

이 밖에 한국수자원공사가 4대강사업 관련 기록을 무단으로 파기했다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 환경 복원과 피해자들의 삶 복원도 과제

감사원은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을 피하기 위해 감사 결과 발표를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고 있다. 환경정책 제도개선위원회에서도 4대강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에서는 4대강사업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을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달 28일 시민단체들이 연합한 4대강 재자연화위원회가 발족했다. 환경 복원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피해를 입은 농민이나 어민들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강 특위 부위원장은 “국가권력에 의해 발생한 피해가 개인화되고 있다. 전문가나 시민사회단체들이 자연환경 훼손에 대해 심도 있게 접근했지만 사회적 피해 확산에 대해서는 제대로 문제가 다뤄지지 않았다”며 “제2의 4대강사업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사회적 성찰의 한 과정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제도적인 복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