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한국 사회의 새 규범을 세우는 과정

2018.04.08 21:01 입력 2018.04.08 21:04 수정

한 검사의 증언으로 촉발된 미투(#MeToo·나는 고발한다) 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미투 이후 여성들은 한결같이 옛날 기억들이 떠오른다고 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삶 곳곳에 놓여 있던 설명할 수 없었던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겪고 있고 깨달음은 말하기로 이어지고 있다. 상담 현장에 폭주하는 전화, 온·오프라인을 통한 수많은 증언들이 그것이다.이는 비단 여성들만의 경험은 아닌 듯하다. 얼마 전 지인이 택시에서의 경험을 전해줬다. 택시기사가 “미투를 보며 나도 젊었을 적 기억이 떠올랐고 잘못된 행동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도 얘기를 나눴다”고 하더란다.

[NGO 발언대]미투, 한국 사회의 새 규범을 세우는 과정

지난달 22일부터 23일까지 2018분 동안 여성들의 ‘이어 말하기’가 있었다. ‘나는 평범하고 가해자도 평범한데 난 어디 가서 말할 수 있냐’는 여성들의 호소로 마련된 자리였다. 만연한 성차별·성폭력을 2018년에는 끝내자는 의미로 2018분 동안 해보자 했지만 과연 그 시간이 채워질까 걱정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193명의 이야기로 2018분은 채워졌다. 시간이 모자라 순서를 기다리다 돌아가거나, 현장에 오지 못하니 대신 읽어달라고 보내온 많은 글들이 읽히지 못하고 남았다. ‘이어 말하기’를 통해 확인한 놀라운 사실은 10대에서 70대까지 세대와 사회·경제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경험은 너무나 비슷했다. 연루된 사람도 너무 많았다. 이는 한국 사회에 성차별과 성폭력이 생활방식으로 공고화되었으며 이 단단한 구조 속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 전 구성원이 연루된 기억투쟁이며 한국 사회의 새로운 규범과 정의(justice)를 세우는 의미투쟁의 과정이다. 그래서 몇몇 개인을 ‘괴물’을 만들어 ‘나’와 분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차별과 성폭력이라는 부정의에 우리 모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미투를 지지한다면서 “그 피해자는 좀 이상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투 운동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피해자상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증명했다. 오늘까지 멀쩡하게 일상생활을 잘하던 내 옆의 친구가, 딸이, 동생이 성폭력 피해자였음을 증언함으로써 사회가 이미지화해 놓은 ‘그런 피해자’는 없다는 것을 밝혔다. 그렇기에 “그 피해자는 좀 이상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이제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나의 인식은 어디서 왔는가, 나의 말이 어떻게 부정의를 강화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너무 가혹한 것 아냐,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제3자적 태도도 위험하다.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규범과 정의를 세우는 과정이다. 이전의 기준은 부정의를 유지한 낡은 틀임을 인정하고 우리 사회가 미투 이후에 어떻게 달라지고자 하는지 함께 토론하고 합의하며 새로움 규범과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 우리 모두 주체로서 함께할 때 진정한 미투 이후의 세상이 열릴 수 있다.

그래서 이 과정은 길고 지난할 수밖에 없다. ‘이어 말하기’를 들으며 ‘빼앗긴 꿈’이란 단어가 마음에 박혔다. 정말 많은 여성들이 차별과 폭력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는 걸 알았다. 그 꿈을 다시 찾고 다시는 여자라는 이유로 ‘빼앗긴 꿈’이 없는 세상, 그것이 미투 이후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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