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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목소리 반영과 언론 공정성

이준웅 |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입력 : 2018.04.08 21:01:02 수정 : 2018.04.08 21:05:05

당사자 목소리 반영과 언론 공정성

다들 우리 언론이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흥하는 면도 있다. 중앙일간지나 공영방송 뉴스를 보면, 과거 찾아보기 어려웠던 기사 쓰기 양식 하나가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기사 내용에 당사자 목소리를 반영하는 일이다.

당사자 목소리를 기사에 담아낸다는 일은 예컨대 이런 거다. 한 신문사가 정부 정책의 잘못을 고발하는 뉴스를 준비 중이라고 하자. 정책으로 이미 피해를 본 주민들로부터 인터뷰를 따고, 정책을 진단한 전문가 의견도 인용해서 기사를 준비했다고 하자. 그러나 이 기사에 해당 정책을 추진한 정부부처 책임자의 견해를 빠뜨리면 안된다. 기사 발행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기사를 내보내는 일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안은 언론 공정성의 한 축을 이루는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우리 언론에 이런 기사 쓰기가 증가한 현실을 격려해야 한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아쉬운 점도 있어 논의를 덧붙인다.

첫째, 당사자 의견을 구했지만 응답을 얻지 못했다고 쓰고 마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당사자가 아예 할 말이 없거나, 언론을 기피하거나, 심지어 연락을 끊고 도주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때는 당사자 이해관계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제3자의 의견을 구해서라도 그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언론은 할 수 있는 한 공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당사자 의견을 구하는 데 지속적으로 실패하는 기자는 애초에 그들이 왜 접촉을 피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언론사에 말해봐야 손해라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편향적이고, 오보를 양산하고, 정보원을 부당하게 취급한다고 소문난 언론사에 속한 기자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청해 듣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당사자 목소리를 구하는 데 거듭 실패하는 기자는 그 자신이 무능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실은 악명이 높은 언론사에 속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둘째, 당사자 목소리 반영을 일종의 반론 기회 보장으로 간주하는 언론이 있다. 당사자를 고발하는 그 뉴스가 아닌 후속 뉴스에 담기로 미루거나, 아예 나중에 문제가 되면 별건으로 다루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아마도 일단 터뜨리고 당사자 문제는 나중에 수습할 문제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당사자 목소리를 반영할지 말지는 ‘편집국의 균형 잡기’로 제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기사 자체가 공정한가’의 문제다. 당사자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최초의 뉴스란 불균형하기도 하겠지만, 이보다 일단 공정하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 하나의 완성된 담론체로서 윤리적 결함을 가진다는 뜻이다. 특히 인터넷 시대의 뉴스 이용자는 뉴스를 언론사 단위가 아닌 기사 단위로 소비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때문에 이 결함은 쉽게 증폭해서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셋째, 우리 언론은 강력한 권력자를 고발하는 기사일수록 당사자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청와대나 재벌기업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뉴스에서 청와대 대변인의 반론이나 기업 공중관계 책임자의 해명을 발견하기 어렵다.

물론 여기에는 납득할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력자를 고발하는 기사를 준비하면서 당사자 확인을 거치는 순간부터 기사 발행까지 무릅써야 할 위험요인이 많다. 예컨대, 권력자는 어떻게든 문제의 기사를 ‘킬’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기자는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압박을 받기도 한다. 편집국 간부를 통해, 광고국을 통해, 심지어 경영진으로부터 직접 내려오는 압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편집국장이 갑자기 취재보강을 지시하며 기사 발행을 멈추는 경우는 오히려 이해하기 쉽다. 기자의 입장에서도 대응하기 쉽다. 더 확인한 후 편집국장을 설득해서 기사를 발행하거나, 아니면 작게라도 다시 쓸 수 있는 기회를 노리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의 진짜 문제는 기자, 부장, 국장이 함께 당사자 의견을 무시하고 고발기사를 터뜨리기로 착착 준비한다는 데 있다. 편집국 전체가 불공정해도 좋다고 작심한 경우라 하겠다.

나는 언론이 이념적으로 편향적일 수는 있어도 내용적으로 불공정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이념적 편향이란 노력하더라도 불가피하게 범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수반한다. 완벽한 불편부당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치다. 신문사 중에는 아예 편집방침으로 이념적 편향을 인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언론의 자유 문제이며 따라서 시비 걸 일도 없다. 그러나 불공정한 기사를 쓰는 언론은 실패한 언론일 뿐이다. 이는 담론 생산자로서 마땅히 져야 할 도덕적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다.

공정할 수 있는 언론이 진짜 실력 있는 언론이다. 당사자에게 해명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고도 기사를 유지해서 발행하는 언론이야말로 훌륭한 언론이란 뜻이다. 따라서 더 긴급하고, 중요하고, 사회적 파장이 크리라 예상하는 기사를 쓸수록 사실 확인은 물론 당사자 의견을 반영하는 데 힘써야 한다. 불공정한 특종이란 결함을 내재한 성공이며, 이는 당착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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