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남녀가 일·가사 함께…반세기 만에 역할 급변”

2018.04.09 06:00 입력 2018.04.09 16:25 수정

70대 반예가 전하는 스웨덴의 과거·현재

부모 세대엔 여성이 육아 전담

공보육·경제 혜택 등 늘면서 우리 세대부터 변화 시작돼

[라테파파의 나라에서 띄우는 편지](4)“남녀가 일·가사 함께…반세기 만에 역할 급변”

“한두 세대를 거치며 극적 반전이 이뤄졌다는 걸 느껴요. 1950~1960년대 스톡홀름에서 자랄 때만 해도 엄마가 일하는 친구는 나까지 10명 중 2명이었어요. 1970년대 내가 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여자 친구들 상당수가 일했지만 대부분 파트타임이었죠. 지금 자녀 세대에선 외벌이는 10명 중 한 명도 찾기 힘들 정도예요.”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나라, ‘라테 파파’의 나라 스웨덴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남녀의 ‘부모권’과 ‘노동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 시작되고 이를 위한 사회 시스템이 대폭 정비된 시기는 1960~1970년대였다. 1970년대를 전후로 불과 한두 세대 만에 사회는 훨씬 ‘가족친화적’으로 변했다. 부부 중 한 명이 벌고 한 명은 아이들을 돌봐오다 두 명이 함께 벌고 같이 돌보는 형태로 가족 생활 모습이 달라졌다.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불어 등을 가르치다 2년 전 은퇴한 비르기타 반예(73·사진)는 불과 50~60년 사이 사회 전체가 ‘바깥일’도 ‘집안일’도 남녀 모두가 함께하는 문화로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어머니는 은행에서 풀타임으로 일했는데, 당시엔 이례적이었어요. 보육시설이 없어 내가 12세 될 무렵까지 보모가 날마다 우리 집에 와서 요리와 청소 등을 도맡았죠.”

어머니는 퇴근 후엔 육아와 가사 대부분을 담당했다. 그때도 아버지는 집안일에 그리 관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반예는 기억하고 있다. 대체로 여성이 가사·육아를 전담하던 시대였다.

반예가 아이들을 키우며 일하던 1980~1990년대는 이미 맞벌이가 급증하며 공보육도 상당 부분 확장됐다. 1980년생과 1982년생인 아들 둘을 키울 때는 요즘처럼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여가활동센터를 오후 5~6시까지 이용해 육아엔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남편도 교사여서 나는 풀타임으로 일했지만 동료 여교사, 여자 친구들 대부분이 파트타임으로 일했다”며 “아이들을 다 키우고 일을 시작한 친구도 몇 명 있었다”고 기억했다.

반예 세대엔 여성들이 주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가사를 도맡았다. 평등을 중시했던 반예 부부는 예외적인 사례였다. 부부가 둘 다 교사로 똑같이 일했기 때문에 집안일도 차별할 이유가 없다고 합의했다. 요리는 대부분 반예가 맡고, 다림질은 남편이 전담했다. 반예는 남편 셔츠를 다려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무엇이 집에 있던 주부들을 밖으로 끌어냈을까. 반예는 질 높은 공보육이 확대됐고 부부 분리과세라는 경제적인 요인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꼽았다. 부부 합산과세를 할 경우 여성이 일하면 누진세가 적용되기 때문에 세금이 너무 많아져 여성 취업을 억제했다면, 1971년 부부 분리과세가 도입돼 맞벌이가 가정 경제에 훨씬 보탬이 되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취업에 뛰어들게 됐다는 것이다.

은퇴 후에도 2개의 독서모임과 사회봉사 활동으로 바쁜 반예에게 최근 한 가지 일이 추가됐다. 일주일에 두세 번 세살배기 손녀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는 일이다. 토목기사로 일하다가 의대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는 큰아들이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공보육 시스템이 부족해 조부모가 손주를 돌봐주는 집이 많다고 하자, 반예는 “매일 돌봐주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놀라워했다. 그는 “이 정도로 도와주는 것도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현재의 스웨덴 사회는 외부의 도움 없이도 부모가 충분히 자녀를 돌보며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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