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지 못하는 보수

2018.04.09 20:46 입력 2018.04.09 20:47 수정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여든 살 동생이 스무 살 오빠에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요즘 연구과제를 마무리하느라 다른 글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뭔가 깊은 사연이 담겨있을 듯한 제목에 끌려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묘비 앞에서 한 할머니가 오열하는 사진에 한동안 눈길을 거두기 어려웠다. “오라방, 올해가 마지막이여.” 고령의 할머니가 내년에 다시 묘소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상읽기]공감하지 못하는 보수

종조부 두 분이 4·3 때 희생되었다는 얘기를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4·3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냥 먼 옛날이야기처럼 넘기려 했던 거 같다.

그렇게 무심했던 사람이 오열하는 할머니의 사연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형제를 잃은 슬픔을 오래도록 안고 사셨을 할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아마 이런 게 ‘공감’일 것 같다.

제러미 리프킨은 800쪽이 넘는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두뇌과학과 아동발달학 분야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면서 인간이 본래 공격적이고 물질적이고 실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오래된 믿음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며 인간은 오히려 근본적으로 “공감하는 종(種)”이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가끔 공감을 전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여든 할머니가 스무 살 오빠의 묘비 앞에서 오열하던 그날, 같은 공간에 있었던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이런 논평을 하였다. “제주 4·3 추념식이 열리는 4월3일은 제주 양민들이 무고한 죽임을 당한 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이다. 따라서 4월3일을 추념하는 것은 무고한 희생을 당한 양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를 듣는 순간 인간으로서 어찌 이런 말을 할까 싶어 화를 누르기 어려웠다. 그날만이라도, 수십만의 희생자와 그 유가족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을까?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2015년 4월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마치 보란 듯이 콜롬비아로 떠났다. 대통령이 없는 서울의 광화문에서는 경찰이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물대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그리고 콜롬비아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연단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르케스의 발언을 인용하며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는 말을 하였다. 당시 이 말을 뉴스로 들었을 때, 자기 나라 국민과도 소통하지 못하면서 참 뻔뻔스럽다고 여겼다. 그가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지 못한 결과가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간 자칭 보수라고 하는 인사들이 보여준 행동과 말은 그들의 공감 능력을 의심케 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점점 잃어가는 청년들을 ‘이태백’이라고 조롱한 인사도 있었고,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적화통일에 대비한 용공세력’이라고 난데없는 비난을 퍼부은 인사도 있었다. 또 어떤 인사는 ‘진보정당은 앞으로도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 일하는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라는 말에 ‘김일성주의’라고 소리쳐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말이 공감은커녕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는 “경찰은 미친개”라는 욕설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도 있다. 보수진영이 사회문제에 관해 일반 국민과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듯하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때 압도적인 표 차이로 대통령 당선을 이끌었던 보수진영에 대한 지지도는 20%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악재가 있었음에도 특정 지역에서는 과반 이상의 지지세를 유지하고 있으니 이나마 다행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감하는 법을 찾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예전의 지지율을 얻기 힘들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보수는 그들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불행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