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닥노닥 기워도 마누라 장옷

2018.04.09 20:55 입력 2018.04.09 20:56 수정

조선시대 여성들은 멀리 외출하거나 할 때 쓰개치마나 장옷, 혹은 삿갓보다 훨씬 커서 상반신을 다 덮는 부녀삿갓을 썼습니다. 쓰개치마는 반가의 여성이, 장옷은 양민 여성이나 기녀가 썼고, 부녀삿갓은 비싼 장옷을 마련하기 어려운 가난한 여성들이 썼습니다(후기로 갈수록 신분에 따른 쓰개치마와 장옷의 착용 구분은 점차 희미해집니다). 특별한 외출용이니 쓰개치마와 장옷은 혼수로 해 오는 일이 많았고, 혼수품이니 당연히 고급 옷감으로 만들었지요. 오래 입다보니 아껴 입어도 세월을 타서 낡고 바래졌지만, 워낙 좋은 감으로 만든지라 여전히 그럭저럭 쓸 만합니다.

그래서 나온, 좋은 것은 낡거나 헐어도 어느 정도 제값을 한다는 ‘썩어도 준치’와 같은 속담이 ‘노닥노닥 기워도 마누라 장옷’입니다(‘노닥노닥’은 ‘누덕누덕’의 작은말입니다). 지금은 여기저기 기워야 할 만큼 낡았지만 고왔던 예전 느낌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속담에는 또 다른 맥락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남편이 보고 있는 것은 장옷이 아니라 그것을 깁고 있는 ‘마누라’입니다. 모처럼의 나들이에 들뜬, 그러나 한숨 숨기며 낡은 장옷을 수선하는 아내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이 속담에 담겨 있습니다. 꽃다웠던 새색시는 혼수로 해 온 장옷이 낡은 그만큼을 늙었습니다. 단장하는 아내의 주름진 얼굴에 그간의 세월과 사랑스러웠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동고동락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이 사람, 나 아니면 누가 챙겨’ 측은한 마음이 들겠지요. 그렇게 보니 단장한 그 얼굴이 다시 사랑스럽고 은근하게 예쁩니다.

‘어른’은 혼인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어른이 다시 철드는 건, 부부로 함께 헤쳐 온 얼굴에서 애잔한 꽃 그림자를 볼 수 있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생활에 지쳐 비록 퇴색은 됐다지만 애틋했던 처음 사랑이 아주 가치 없이 사라진 건 아닐 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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