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전형의 불공정 압박

2018.04.09 20:55 입력 2018.04.09 20:56 수정

며칠 전 교육부 차관이 몇몇 대학 총장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내년도 입시에서 정시 모집인원을 늘려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후 연세대와 몇몇 대학들에서 수시 모집인원을 줄이고 정시 인원을 늘린다는 발표를 했다.

[학교의 안과 밖]대입전형의 불공정 압박

이 소식을 접하고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원래 대학입시 전형방법은 대학들이 결정하는 것이었고, 정부에서는 재정지원 등과 같은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정도에 그쳤는데 뜬금없이 ‘직접 압박’이라는 방법이 동원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학입시는 최소한 3년 전에는 자신이 지원할 대학과 학과에 대한 전형방법을 알 수 있도록 해왔고, 이번 정부에 들어서는 그 기간을 6개월 더 늘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3년도 아닌 내년의 입시에 대해 각 대학들의 대교협 통보 마감 하루 전에 차관이 총장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직접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일이 그렇게도 급한 것이었던가?

그런데 이런 절차적 문제보다도 더 큰 문제는 앞으로 2년 뒤부터 시행되는 대학입시가 ‘2015 개정 교육과정’이라는 큰 틀 안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은 과거의 교육과정과는 달리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들도 크게 늘어나고, 교육과정·수업·평가에서 교사들의 재량 범위가 확대된다. 그래서 몇 개의 학교들이 함께 운영하는 연합캠퍼스 수업을 시행하고 있고, 내년부터는 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가 하면 조만간 온라인 심화과목이 운영되는 등 학교 현장의 변화가 엄청난 상황이다. 이렇듯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더 이상은 지금과 같은 상대평가 방식의 수능시험만으로는 대학입시를 치르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대학들에서는 정시 모집인원은 일부 늘리지만 동시에 학생부종합전형의 인원도 약간 늘리거나 수시에서 수능 최저등급을 삭제하는 내용을 동시에 발표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이렇듯 절차도 문제이지만 내용적으로도 갑작스러운 압력 행사는 공교육 전반에 걸친 모순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이전 정부에서부터 일해 이러한 큰 틀의 변화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교육부 차관의 이번 행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절차와 규정도 무시하고 윗선에서 압력을 가했던 이번 사건은 얼마 전 진행되었던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 재판정에서 보았던 것들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차관 개인의 의지였든, 또 다른 누군가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였든 ‘절차와 규정’이라는 정의로운 방법을 무시하면서 공정을 말한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서점에 나가보면 교사들이 쓰거나 교사들을 위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와 있는데, 이전에는 무기력한 교육현장 비판의 목소리가 주를 이루었다면 요즘에는 새로운 교육과정과 수업 그리고 평가를 위한 다양한 방법론의 공유를 위한 책들이 대세다. 학교가 변하고 있고, 그리고 수많은 교사들이 그 변화를 위해 애쓰고 있는데 이렇게 찬물을 끼얹는 것은,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의 일촉즉발 위기상황에서도 VIP(대통령) 보고를 위한 사진과 현장 영상부터 보내라고 해경에 독촉한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를 연상케 한다.

지금 가는 길이 맞다면 당당하게 설득하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가라. 아니라고 생각되면 뒤돌아 가면 된다. 적폐의 시작은 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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