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행원’ 꼬리표에 아직 고통받는 여성들

2018.04.10 21:00
강진숙 | 서울 용산구

나는 1970년대 말에 한 국책은행에 고졸로 취직했다. 우리 직장의 정규 채용자 전체가 그러하듯 나 역시 서울에서 당시 상위권에 속하는 학교에서 성적 최상위권의 자격으로 입사했다. 남녀차별이 뭔지도 모르고 입사했지만 우리는 ‘여자행원’이라는 2등 직급이었다. 바로 최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말한 그대로이다. 같은 상고 출신이지만 남자들은 ‘행원’이었고 우리는 여자행원이었다. 여자행원은 여자라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직급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입사 때부터 ‘남자’ 행원들의 보조적인 업무만 하거나 단순 반복적인 업무만을 하도록 직무가 주어졌다. 훈련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우리는 10년쯤 후에는 진짜 2등 직급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1980년대 말, 우리에게도 노동조합 설립이 허용(?)되면서 여자행원에게 전환고시를 볼 기회를 회사가 할 수 없이 부여하게 되었다.

이후 우리는 원하던 ‘행원’이 되었지만, 계속 ‘전환행원’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그것은 마치 ‘용(=행원)이 되지 못한 이무기’와 같은, 내부 규정에도 없는 이름의 ‘유사’직급명이다. 그러나 아무리 눌러도 당시 여자행원들의 상승욕구는 지속되어 매년 시험에 응시했고 소수지만 지속적으로 그 숫자가 늘어났다. 회사에서는 전환과 함께 젖먹이 어린아이를 가진 젊은 전환행원들을 포항, 울산, 구미, 광주 등 가능하면 서울에서 먼 곳으로 발령을 내면서 퇴직을 종용했으며, 실제 많은 전환행원들이 퇴직했다. 다음 관문인 책임자고시는 전환고시보다 차라리 쉬운 것이었지만 합격해도 승진 발령을 매우 제한적으로 냈기 때문에 우리 회사에는 아직까지도 고졸 출신 여성 고위직은 단 한 명도 없다. 최근까지 고과권자 전부가 남성이었고 그들은 소리 없는 카르텔을 형성하여 집단으로 전환행원들의 고과를 빨아들여 남성에게 퍼부어 주었다.

최근 불거진 여성차별 채용을 보면서, 나와 동시대를 겪은 선배 여자행원 출신 김영주 장관의 분노의 표현을 보면서, 오랫동안 눌러온 나의 분노가 조용히 분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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