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 연루 이응노 정부사업서 제외, 황석영·한강…파리도서전 참석 막아

2018.04.10 21:03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보니

고암 이응노(1904~1989)는 20세기 한국 대표 화가로 꼽힌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지난해 미술계 전문가 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20세기 수묵화 역사에서 희귀한 근대적 개성을 구축하고 한국미술을 세계화했다” 같은 평을 얻었다.

이응노는 박근혜 정부의 배제·검열 대상, 즉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진상조사위)가 10일 발표한 분야별 블랙리스트 실행 사례를 보면, 박정희 정권의 ‘동백림 사건 블랙리스트’가 50년 후에 재현됐다. 이응노는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2년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박근혜 정부는 ‘프랑스 내 한국의 해’ 사업 중 하나로 프랑스 세르누치 박물관이 주관한 ‘이응노에서 이우환: 프랑스의 한국화가들’(원제) 사업에서 이응노미술관 이지호 관장에 대한 출장비 지원을 철회했다. 사유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이응노 작가를 위한 재단 운영”이었다. 이 관장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작성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문건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은 이응노미술관 이름을 사업 관련 모든 보도·홍보자료에서 빼라고도 했다.

전시 제목은 결국 ‘이응노’라는 이름이 빠진 ‘서울-파리-서울: 프랑스의 한국작가들’로 바뀌었다.

블랙리스트 검열·배제는 한·불 수교 130주년(2016년)을 맞아 양국 상호교류가 이뤄진 2015~2016년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실행됐다. 연극 <빛의 제국>의 프랑스 공연을 두고 정부는 원작자인 소설가 김영하 초청도 방해했다. 김영하가 정부비판 글을 쓴다는 게 이유였다.

파리도서전에서도 블랙리스트는 실행됐다. 한국문학번역원 담당자가 프랑스 전문가들의 추천 설문 결과를 포함한 작가 명단을 문화체육관광부에 보냈다. 문체부는 황석영, 김애란, 한강, 은희경, 김연수, 공지영, 임철우, 편혜영, 유은실, 김훈, 박민규, 박범신, 이창동을 배제 대상으로 표기한 문서를 첨부해 회신했다. 진상조사위는 “문체부의 파견 불허 통보에도 프랑스 조직위가 비용을 부담해 황석영, 김애란, 한강, 임철우를 초청했다”고 했다.

프랑스 방송에도 부당한 개입을 했다. 프랑스 아르테TV 다큐멘터리 <한국, 다양한 기적의 나라>를 검열하고 자막 지원을 철회한 것이다. ‘한·불 상호교류의 해 조직위’는 DVD 출시를 위한 한국어 자막 번역비 2625만원 지원을 결정했으나 청와대 지시 이후 철회했다.

어이없는 사례도 발견됐다. ‘블랙리스트’로 활용된 시국선언자 9473명 명단에 든 영화감독 김종석을 배제하려다가, ‘한국음악과 함께하는 불꽃축제’ 사업에서 동명이인을 제외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