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9473명 “실제로 지원 배제”

2018.04.10 21:03 입력 2018.04.10 21:04 수정

60쪽 문건 원본 첫 공개

명단 토대로 ‘한·불 상호교류’ 행사 참여자 선별

“출력본 일일이 대조해가며 활용했다는 것 밝혀져”

<b>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실존했다</b>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이원재 대변인이 10일 서울 세종대로 진상조사위 소회의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로 활용된 문화예술인 9473명 문건 등 조사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실존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이원재 대변인이 10일 서울 세종대로 진상조사위 소회의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로 활용된 문화예술인 9473명 문건 등 조사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박근혜 정부가 ‘블랙리스트’로 활용한 60쪽 분량의 문건 원본이 10일 공개됐다.

원본은 세월호 시행령 폐기 촉구선언에 참여한 549인 등 문화예술인 9473명의 명단을 담았다. 박근혜 정부가 이 문건을 토대로 한·불 수교 130주년 상호교류 행사에 참여할 예술인들을 선별한 구체적인 정황도 확인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진상조사위)는 이날 오전 서울 세종로 진상조사위 소회의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해당 문건을 공개했다.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선언, 세월호 시국선언,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박원순 후보 지지선언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9473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문건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문건 전체를 실제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진상조사위는 이 문건이 공공기관의 ‘블랙리스트’로 실제 활용된 사실도 밝혀냈다.

이원재 진상조사위 대변인은 “이 명단이 지나치게 인원이 많고 단순 명단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어왔다”며 “조사 결과 실무자들이 출력본 명단을 일일이 대조해가며 지원을 배제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진상조사위가 입수한 문건은 문체부 예술정책과가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사업을 총괄한 문체부 소속 해외문화홍보원에 넘긴 것이다. 홍보원의 한 담당 공무원은 “2015년 4월쯤 홍보원의 홍보기획관에게서 ‘예술정책과 오모 서기관에게 (문건을)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가져왔다”고 진상조사위에 진술했다. 문체부 예술정책과의 오 서기관은 조사에서 “문체부 각 부서에서 지원사업 진행을 위해 필요할 때마다 9437명의 명단을 전달했고, 실제 블랙리스트로 실행됐다”고 했다.

‘한·불 상호교류의 해’ 사업은 ‘블랙리스트의 종합판’ 수준이었다. 컨트롤타워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이었다. 청와대의 ‘반정부’ 예술인 배제 지시가 문체부를 통해 홍보원에 전달됐고, 국가정보원 검증과 9473명 명단 대조작업이 이뤄졌다. ‘상호교류의 해’ 조직위원회, 조직위 사무국인 예술경영지원센터, 주프랑스 한국대사관·한국문화원 등 각종 국가기관이 총동원됐다.

외국 정부와의 교류 사업임에도 블랙리스트 적용은 ‘강박적’ 형태로 이뤄졌다. 이미 프랑스 릴시와 계약이 완료된 노순택 사진작가의 전시작품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뒤늦게 교체됐다.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무료로 열릴 예정이던 ‘한국의 해’ 폐막식도 2200여만원을 들여 장소를 바꿨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양혜규 작가 전시가 이곳에서 진행 중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문체부가 파견 불허를 통보한 ‘블랙리스트’ 작가들 일부에 대해 프랑스 조직위가 참석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김종 당시 문체부 2차관은 문제를 제기한 홍보원 공무원에게 “정부예산이 정부 비판자에게 가면 안된다”고 했고, 홍보원장은 “정부 반대 예술을 한다면 자기 돈으로 하라는 것인데 뭐가 배제냐” “영혼을 찾으려면 다른 것을 하지 왜 공무원이 되었냐”고 했다고 그는 진술했다.

이 대변인은 “국격을 찾던 박근혜 정부가 ‘공식인증사업’만 399건인 해외 교류 사업에서조차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위는 5월 중 종합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징계와 수사 권고 대상을 정리해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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