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엄마와 어른들

2018.04.10 21:25

그가 미용실에 가서 겪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 머리를 깎으러 온 중년 남자는 배가 불룩한 그를 힐끔대다가 큰소리로 떠들어대더란다. 요즘에 미혼모가 많아서 큰일이라는 둥, 어린애들이 행동거지를 조심하지 않는다는 둥, 무책임하다는 둥. 그는 모른 체하다 무책임하다는 말에 뒤를 휙 돌아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그러더란다. 내가 말해봤댔자 어른들이 알아듣겠냐고요.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어린 엄마와 어른들

스스로 학교를 벗어난 그는 세상의 편견과 모멸이 얼마나 단단한지 뻔히 알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그가 혼자서 묵묵히 가시 돋친 말들을 받아냈을 것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몰지각한 어른을 향한 분노는 금방 까부라지고, 그가 겪어내야 할 고달픈 세상살이가 걱정되어서 한숨이 나왔다.

그가 남자를 만나고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는 펄펄 뛰었던 나는 선뜻 그를 만나지 못했다. 미루고 미루다가 그를 만나기로 한 날, 괜히 허둥대서 챙겨놓은 그림책을 빠트려 전철역까지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무거운 발을 떼면서 그가 고등학교 들어가 태권도부에 뽑혔다고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단단해진 허벅지를 내밀며 만져보라던 그의 해맑은 웃음이 눈에 선했다. 만나면 뭐라고 입을 떼야 하나, 그럴듯한 말을 수없이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의 맑은 눈을 마주하고 보니 입에 발린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그의 손을 잡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살이 조금 오른 그의 얼굴은 밝았다. 책도 보고, 초보 엄마 인터넷 카페도 열심히 들락거린다는 그는 출산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아기 손싸개를 만드는 데 바느질이 서툴러서 두 번이나 다시 꿰맸어요.”

나는 그가 내민 손싸개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애를 정말 낳겠다고? 몇 달 전 내가 했던 말이 가슴을 쿡쿡 찔러댔다. 그때 나는 아기를 낳을지 말지 그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별수 없는 어른이었다. 그와 해질 녘까지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가 아기를 낳고도 이렇게 짬 내서 봤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아무렴, 그래야지. 짬을 내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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