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대란’에 대처하는 자세

2018.04.11 20:52 입력 2018.04.11 21:00 수정

[기자칼럼]‘택배 대란’에 대처하는 자세

신문을 봉 모양으로 말아접은 뒤 허벅지에 ‘탁’하고 쳐서 가지런하게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다음은 속도다. 손목, 팔목을 쓰지 않고 어깨 힘으로 허벅지부터 풍차 돌리듯 빠르게 들어올린 뒤, 목표각에 도달하면 신문을 쥔 손을 놓는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다른 집으로 날아가고, 너무 느리면 날아가던 신문이 펼쳐지면서 쏟아져 내린다. 초등학생 시절 신문 배달을 시작하면서 선배들에게 핀잔을 들어가며 터득했던 기술이다. 잘만 활용하면 3층은 물론 빌라 4층까지도 계단을 오를 필요 없이 베란다에 신문을 안착시킬 수 있어서, 체력은 물론 시간 절약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어렵사리 2·3층까지 꾸역꾸역 신문을 던져 넣을 만큼 익숙해졌을 무렵 문제가 생겼다. 빌라 3층에 사는 한 구독자가 하루가 멀다하고 보급소로 전화를 걸어 불평을 늘어놨다. 1면이 반듯하게 펼쳐진 신문이 현관 앞에 놓여 있기를 바라는데, 접힌 흔적이 남은 신문을 받아보는 것이 영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스포츠 신문을 서비스로 넣어준다는 제안도 통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툴툴거리며 계단을 올라 신문을 배달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요구였는데, ‘그 정도도 이해 못해주냐’며 어린 마음에 꽤나 야속해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택배 대란’ 사진 한 장으로 온·오프 세상이 동시에 요동치고 있다. 한 신도시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막아서자 택배 기사들이 배송을 거부, 택배 상자가 단지 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는 모양이다.

주민들은 자동차의 지상 출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만큼 택배 차량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안전을 이유로 들었다. 택배 차량에 아이들이 다칠 수 있으니 카트나 수레에 실어 배송하거나 아예 지하주차장에 진입할 수 있는 택배 차량으로 바꿔 배송을 하라는 요구다. 실제로 이 아파트는 지상에 아예 차도가 없다. 아이들이 뛰노는 단지 내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차량들이 오간다는 사실은 충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일관성이다. 차량 지상 통행 금지라는 해당 아파트 단지의 원칙에는 몇 가지 예외가 존재한다. 소방차는 당연히 들어올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량도 진출입이 가능하다. 이사 차량과 가전제품 배송차량도 드나들 수 있다고 한다. 주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서비스 차량에는 예외를 다수 붙여둔 셈이다. 여기에 “우리 아파트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로 시작하는 단지 내 ‘택배 차량 통제 협조 안내문’은 집값을 염두에 두고 택배 기사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단 이 아파트 단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더 좋은 아파트를 표방하며 지상을 공원으로 꾸미는 아파트들이 늘면서 이 같은 사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더 좋은 주거 환경을 갖추고 싶은 욕망을 지적할 대목은 없어 보인다. 다만 더 나은 환경이 누군가의 더 많은 수고와 노력,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거기에 대한 정당한 값을 치러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이 문제다. 쾌적하고 더 안전한 주거 환경을 유지하는 대가로 관리사무소에서 각 가정이 택배를 직접 수령하는 방법이 먼저 떠오른다. 이게 불편하다면 택배비를 조금 더 받는 방법도 있겠다. 많은 택배 회사들이 배송에 어려움이 있는 도서·산간지방에 추가 배송비를 받는다고 하니 그 비용을 참조해보면 어떨까.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무인택배함이나 단지 입구에서 집 앞까지 배달을 하는 아르바이트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소식도 들리니 고려해 볼 만하다.

혹시라도 이도저도 다 싫고 지금처럼 누군가 문 앞까지 짐을 옮겨다 주길 바란다면 그건 지하주차장 층고나 택배 회사 이전에 이기심의 문제라는 지적을 들어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