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세부사항이 '공론화 의제'? 생산적 토론 되려면 '방향'부터 물어야

2018.04.12 17:07 입력 2018.04.12 17:45 수정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전형의 적정 비율 등을 제시해달라는 내용의 ‘대학입시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을 발표 중인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카메라 뷰파인더에 비친 모습.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전형의 적정 비율 등을 제시해달라는 내용의 ‘대학입시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을 발표 중인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카메라 뷰파인더에 비친 모습.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교육부가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을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에 보낸 것을 두고, 교육계와 공론화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려가 나온다. 정책 방향을 시민에게 묻고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좋지만 교육부가 전달한 안건이 세부적이고 파편적인 쟁점을 나열한 것이어서 생산적인 토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현 중3들에게 적용되는 대입 개편안을 제시하며 공론화를 통해 결정해달라고 요청한 항목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수능 전형의 적정 비율, 정시와 수시의 선발시기를 통합할 것인가,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꿀 것인가 하는 세 가지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불신하는 학종의 공정성, 수능을 ‘자격고사’ 성격으로 바꿀 것인가, 나아가 ‘미래 사회에는 어떤 인재가 필요한가’ 하는 큰 방향에 대한 물음은 빠진 채 대학입시의 세부사항들을 정해달라고 던진 것이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4차 산업혁명같은 쓰나미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아이들이 어떤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인가부터 얘기해야 하는데 교육부 시안에서는 이런 고민을 찾을 수가 없다”면서 “앞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능력을 기르게 할 것인지, 원칙부터 정한 다음에 대입정책이나 교수법, 교과과정 등의 세부정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도 “교육을 통해서 기르고자 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 인재를 키울 교육방식을 논의하고, 그런 교육을 할 수 있게 하는 평가체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큰 틀을 잡는 공론화 의제를 설정하고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논의 폭을 좁혀놓고 공론화를 하면 어떤 선택도 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수시-정시 비율이나 선발시기 통합, 절대평가냐 원점수냐 하는 세부적인 논의에 매몰되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다방면으로 관심이 갈라져 교육의 큰 방향에 대한 공감대 없이 소모적인 논쟁만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 대표는 “눈 앞의 선택지에만 집중하게 돼 오히려 논의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중장기 대입방안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그 방향에 맞춰서 2022학년도 수능을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교육부 시안에는 순서가 반대로 돼 있다. 2022학년도부터 적용될 개편안을 중심 안건으로 넣은 뒤 그 이후의 중장기 방안은 추가과제 정도로만 적었다.

현직 교사인 이재하 전국진학지도협의회장 역시 “의제는 가치에 관한 것이어야 하는데 몇 가지 안을 던져놓고 알아서 정하라는 식”이라며 세부항목 나열에 그친 교육부 시안을 비판했다. 이혜정 소장은 “학종과 수능 비중을 놓고 싸움이 벌어지니 ‘각자 1:1:1(내신, 수능, 학종)로 나눠가져라’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말했다.

미래를 위한 ‘방향’을 국민들에게 묻고, 거기에 맞춰 정책의 세부사항을 짜는 것은 정부의 일인데 이를 방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교수는 “교육부가 그동안 의견수렴, 공청회, 정책연구를 해왔다면 책임감을 갖고 입장을 정리해서 ‘최대한 고민한 결과 이런 결론이 나왔으며 이런 부분은 국민의 의견을 묻는다’고 밝혔어야 했다”며 “과연 그런 선행작업을 충분히 했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입정책과 관련해서는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다는 점도 우려사항으로 꼽았다. 그는 “공론화할 만한 의제인지 고민하려면 ‘이해관계자 집단’을 검토해야 하는데 그런 작업도 충분히 이뤄졌는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학입시는 학생, 학부모, 대학관계자, 사교육업계, 학교현장 등 여러 집단의 이익이 얽혀 있어, 시민 대다수가 원전업계와 거리가 있었던 신고리 5·6호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공론조사를 연구해 온 서울대 이준웅 교수는 “공론화에 돌입하기 전에 전문가들이 모여 고교생 평가의 근본 원칙을 논의한 뒤 의제를 짜고 논변을 만들어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육부 시안을 건네받은 국가교육회의 관계자는 의제설정에 대해 “어느 정도 여과를 해야할 것으로 본다”면서 향후 만들어질 공론화위원회에서 더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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