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비서’ 부각한 한국 보수언론과 야당의 수준

2018.04.12 20:40 입력 2018.04.12 20:41 수정

‘외유성 해외 출장’ 논란에 휩싸인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거취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진보야당인 정의당은 김 원장 자진사퇴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선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과반(50.5%)으로 나타났다. 우리도 ‘금감원장이 도덕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선 정상적 업무수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과 야당에서 제기해온 ‘여비서’ 프레임의 폭력성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김 원장 문제의 핵심은 피감기관 지원을 받아 해외 출장을 간 데 있다. 수행한 보좌진이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본질 호도이며 해당 비서에 대한 인권침해다.

조선일보는 지난 5일 김 원장 관련 의혹을 처음 보도하며 ‘여비서와 연구원 직원 4명 동행’이란 부제를 달았다. 5일 오후 인터넷에 출고된 기사는 주제목이 아예 <김기식, 여비서 동반 해외 출장…정치권 “이런 경우 못 봤다”>였다. 해당 기사는 ‘#여비서와 출장’이란 해시태그(게시물 검색을 돕기 위해 # 뒤에 연관 단어를 적는 메타데이터)까지 달았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9일 “해당 비서는 정책비서가 아닌 인턴 신분이었고, 이 인턴은 수행 이후 9급 비서가 되고, 6개월 만에 7급 비서로 승진했다”고 주장했다. 승진 배경에 뭔가 작용한 것처럼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한국당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선 ‘女인턴동반 황제외유 온국민이 분노한다’는 손팻말을 들었다. 이후 여비서 프레임은 다시 언론으로 넘어갔다. 문화일보는 10일자 초판에 ‘SNS에 올린 女인턴 로마 기념사진’이라는 제목 아래 비서 얼굴이 절반만 모자이크 된 사진을 실었다가 다음 판에 삭제했다.

국회 여성 보좌진은 페이스북 익명게시판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서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한 직원은 “꼭 ‘여비서와 둘이’ ‘출장 다녀와 고속 승진’ 이런 프레임 만들어야 했느냐”며 “이 직업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 야당 대표와 공인된 매체가 대놓고 성희롱을 해도 참아내야 하는 직업이 되었다”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직원은 “담당 기관 관련 출장을 가도, 승진이 남들보다 조금 빨라도 ‘여자’라는 이유로 물어뜯긴다. 남자 인턴이었으면 이렇게 더러운 이야기를 들었을까?”라고 했다. 제1야당과 보수언론의 저급한 젠더 인식이 한국 정치와 언론을 오염시키고 있다. ‘여비서’를 부각하는 행태를 당장 멈춰라. 이는 성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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