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의 분만실…똥 누는 법과 채제공 대감의 수염

2018.04.13 16:41 입력 2018.04.13 16:44 수정
필자 안희경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곧 할머니가 될 예순다섯의 여인과 출산을 앞두어 아기집을 힘겹게 부여잡은 여인이 함께 동네를 걷고 있다. 사흘 전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들어온 예순다섯의 여인은 짐 보따리에 꽁꽁 싸매온 기장미역 두 축을 풀며 딸에게 말했다.

“미역 한 축은 나무로 치면 한 그루야. 한 달 동안 다 먹이고 갈 거다. 나머지 한 축은 두고두고 먹고. 해묵은 미역이 더 맛나더라.” “엄마, 난 맬 밭도 없고, 카펫이라 걸레질도 못하는데, 제때 잘 낳을 수 있을까?” 모녀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은 무화과나무와 자작나무가 흐느적거리는 거리를 열 번도 더 오가는 중이다. 딸은 코르셋을 입은 것처럼 죄어오는 압박에 숨차 하면서도 ‘산기는 이보다 더한 고통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 시작이다’라는 생각에 외려 괭이를 꺼내 잔디라도 뒤집어엎을 기세다.

13년 전 나는 그랬다. 뭔가 대단한 일은 늘 거창하게 오리라 여기며 긴장했다.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별 볼 일 없는 일, 소소한 일 따위는 대강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거창하고 대단한 일은 소소한 일들이 조짐처럼 스쳐 지나간 후, 그런 일들이 하나둘 쌓여 이뤄지곤 한다는 것을. 허둥대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놓친 일상이 오히려 ‘대단한’ 일을 잡아먹기까지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일상에서 소소하게 찾아온 산기를 놓쳐, 제때 병원을 찾아가지 못했다. 해산이 어려워진 것이었다. 뒤늦게 병원을 찾은 그날 밤, 나는 나의 실존이 생소해지는 순간을 분만실에서 맞았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통증을 여러 번 보내고 나서야 에피듀럴(무통분만)주사를 맞았다. 산통은 몸을 자극하지 않은 채 모니터 위의 수치로만 나타났고, 몸에선 다른 욕구가 일었다. 변이 마려웠다. 또래의 담당 간호사에게 언제 분만실로 옮기느냐고 물으니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했다. “변 볼 시간이 되냐”고 물으니, “그럼” 하고 방긋 웃었다. 변기에 앉았지만 변이 나오지 않았다. 침대와 변기를 오가길 반복하는데, 뒤이어 들어온 수간호사가 어서 침대에 누우라며 바퀴걸쇠를 풀고는 외쳤다. “분만실로!”

하마터면 변기에 애를 낳을 뻔했다. 상냥한 담당 간호사는 불빛 아래 누운 내가 안쓰러웠는지 다가와 손을 잡았다. 나는 위로의 말이 듣고파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저… 첫아이예요.” 상기된 그녀도 호응했다. “Me too!”(저도요) 머리 뒤가 서늘했다. 수간호사가 힘을 주라 외쳤다. 사극에서 본 대로 새된 비명을 질렀다. 수간호사는 다급히 “노, 노, 노”를 외치며 소리 내면 힘이 안 들어가니 똥 누듯이 하라고 명했다.

순간 멍해졌다. 34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해온 일인데, 똥 누듯 주는 힘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근육을 써야 하는가. 새로 익힌 라마즈 호흡이라면 능숙히 해내련만, 내 몸에 똥 눌 때 쓰던 근육이 있는지조차 미심쩍었다.

그 절박한 순간, 9년 전의 일화가 떠올랐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동행 취재했던 관응 큰스님의 황산 기행에서 큰스님께서 던지신 화두 같은 이야기다. 조선 후기 채제공 대감의 수염이 아주 멋있었다고 한다. 가슴 언저리까지 가지런히 드리워진 하얀 수염이 하도 좋아 보여 누군가 물었다. “공께서는 잘 때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잡니까? 아니면 이불 밖으로 꺼내놓고 잡니까?” 대감은 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자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날이 저물고 잠자리에 든 대감은 수염을 이불 속에 넣다 뺐다 하다 그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말았다고 한다.

분만실에서, 나는 이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똥 누던 나를 찾으며…. 하지만, 이도 잠시, 수간호사가 아랫배를 꾹꾹 누르는 바람에 그 이야기를 잊게 됐다. 2년 후, 출산이 임박했다는 성당 자매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오늘부터 똥 눌 때를 잘 관찰하세요.” 멀뚱히 날 쳐다보던 자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분만실에 폭풍처럼 찾아왔던 노스님의 화두는, 2014년 ‘문명, 그 길을 묻다’를 연재하던 중에 어렴풋한 해답으로 다시 돌아왔다. 당시 나는 우리 문명의 현재를 드러내고자 세계의 지성 11인과 대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자원의 한계, 지정학적 군사력 대치의 변화, 신자유주의의 민낯, 식량의 위기와 농업의 대안 등 여러 이슈 속에서 교차하여 드러나는 자본과 무력의 지형을 밝히려고 했다. 이 힘에 얽혀 버둥대는 지역 정치의 한계를 개인들이 각성과 선택으로 뚫고 나가길 바라며 독려했다. ‘개인의 힘은 있다!’라는 메시지를 지성의 육성으로 전하고자 때론 은유적으로, 때론 직접적으로 묻고 또 물었다. 여러 번 확인하는 나의 속내엔 아마도 떨치지 못한 불안이 있었기 때문일 테다. 잔멸치 한 움큼 사면 꼭 섞여 있는 잔새우처럼, 세계화된 자본의 힘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만 할 것인가에 대해 내 안의 의심을 모두 솎아낼 수는 없었다.

영국 리즈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을 만나고 스위스 제네바로 이동해 장 지글러를 인터뷰하기 전 날이었다. 캄보디아에 있는 H&M 공장이 현지 노동자들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렸다는 보도를 접했다. 여성과 아이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면서도 더 싼값으로 쥐어짜고자 세계 일류 브랜드의 기업들은 프놈펜의 공장으로 몰려들었다. 더 속상한 점은 공장의 주인들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이곳의 노동조건은 알려진 대로 최악의 상황이고 한 푼의 돈에 벌벌 떠는 자본가들이 몰려있는데, 유독 북유럽의 스웨덴 자본가만은 그렇지 않다는 말인가? H&M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낸 주역은 자본가가 아니었다. 스웨덴 국민이었다. 코펜하겐에서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고 한다. 캄보디아 노동자를 착취하여 만든 옷을 스웨덴 노동자가 입을 수 없다며 노동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지구 반대편의 정치와 문화가 출렁였다. 그렇다. ‘우리는 시장 속 소비자이자 유권자다.’ 아무리 기업이 우리가 소득에 맞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들로 상점을 채워놓았다 하여도, 그래서 우리가 손발에 줄 달린 인형처럼 자본의 힘에 조종받고 있다 하여도, 우리 각자의 사려 깊은 선택이야말로 세계 최고 권력의 이윤까지도 관여할 수 있는 기본단위인 것이 분명했다. 새로울 것 없는 자각이지만, 전보다 더 깊게 뇌리에 새겨지는 경험은 ‘깨우침’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깨우침은 ‘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마음 전문가와의 대담’을 통해 21세기를 사는 우리 개인의 마음에 작동하는 다양한 힘의 실체를 드러내는 기획(2015년 경향신문 연재)으로 이어졌고, 또 나의 일상으로도 들어왔다.

채제공 대감이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자는지 아닌지 아리송했듯, 내가 그렇게 자주 누던 똥이 대체 어떤 힘으로 나왔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자각은 일상에서 무심결에 지나쳐온 무수한 시간을 불러냈다. ‘사려 깊게 선택하도록 깨어 있자’를 말과 글로 옮기면서 정작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시간은 책상 앞에서일 뿐이지 않았나 직시하게 되었다.

그제야 내 주위를 맴도는 아이들에게 내가 얼마나 자주 웃음으로 마주하는지 챙겨보았다. 본능적으로 사랑을 쏟고 함박웃음을 지었겠지만, 더 많은 시간 동안 짜증을 흘리고 다녔을 것은 뻔하였다. 세상에 조금은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거라 여기며 석학을 찾아가 묻고 머리를 통째로 갈아낼 듯 일을 기획하고 글을 쓴다고 하여도, 마주하는 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않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다. 모두가 잠든 밤까지 일하던 잠 못 드는 일상을 멈춘 것도 아마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내일 흘릴 수 있는 짜증의 여지를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나의 소소한 시간을 단속했다.

▶필자 안희경

[안희경의 일상과의 대화]13년 전의 분만실…똥 누는 법과 채제공 대감의 수염


재미 저널리스트. 불교방송 PD 출신으로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서구의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2014), 놈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2013),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을 엮은 <문명, 그 길을 묻다>(2015) 등을 냈다. 지난해에는 경향신문에 마사 누스바움, 레베카 솔닛 등과의 대담을 기록한 <세계여성지성과의 대화>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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