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닐·페트병은 왜 골칫덩이가 되었나

2018.04.13 21:38 입력 2018.04.18 10:46 수정

‘대란’ 이후…뒤따라가 본 재활용 쓰레기

이달 초, 수도권 아파트 단지에 버려진 비닐봉지와 페트병이 쌓이기 시작했다. 적당히 분리해 버려놓으면 알아서 사라지던 쓰레기였다. 수거가 되지 않아 갈 길을 잃고 함부로 쌓여 있는 비닐봉지와 페트병은 우리에게 지금껏 깊게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쓰고 버린 비닐봉지와 플라스틱은 어디로 가는 거지?

수도권 수거업체들의 비닐·페트병 수거거부로 불거진 ‘쓰레기 대란’은 우리에게 이제껏 주목받은 적 없었던 ‘쓰레기의 사후세계’에 환한 조명을 비추었다.

지난 식목일은 비닐로 시작해 비닐로 끝났다. 촉촉이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회사로 들어가자 입구에 우산을 포장하는 1회용 비닐이 보였다. 오후에 책을 빌리기 위해 들른 도서관 입구에도 우산 비닐이 놓여 있었다. ‘비닐 대란’으로 쓰레기 배출장은 소란스러웠지만, 일상 곳곳에는 1회용 비닐이 넘쳐흘렀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자 택배상자가 나를 반겼다. 택배 물품을 받는다는 것은 새 물건을 손에 쥐기 위해 겹겹의 포장을 뜯어야 함을 의미한다. 포장을 뜯자 도착한 물건보다 더 큰 부피의 쓰레기가 생겼다. 종이상자를 열고 세수할 때 쓰는 헤어밴드를 꺼내자 겉 봉지 안에 6개 세트를 묶어놓은 속 봉지가 나왔다. 6개의 제품은 각각 2중으로 포장돼 있었다. 총 14개의 비닐이 나왔다. 분리배출을 위해 쌓아놓은 비닐을 세어보자 어림잡아 50개나 됐다. 다행히 내가 사는 아파트는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표시돼 있는 비닐은 수거했다. 하지만 재활용 수거함에 가보자 재활용 표시가 없는 비닐까지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분리배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주전부리로 ‘쫀득한 황태’를 샀다. ‘비닐류 OTHER’라고 쓰인 겉포장 안에 PP라고 쓰인 플라스틱 내부용기가 또 있었다. 분리배출을 방금 마쳤는데, 순식간에 버려야 할 재활용 쓰레기가 두 종류나 생겼다.

이 많은 비닐과 플라스틱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동안 재활용 산업은 어떤 생태계를 갖고 우리가 함부로 버린 것들을 집어삼키고 처리해온 것일까. 재활용 시스템이 순환을 멈추고 파열음을 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버린 비닐과 페트병의 뒤를 쫓기로 했다.

이유 있는 쓰레기 대란…“비닐도 플라스틱도 돈이 안돼요”

수거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쌓여있던 폐비닐과 플라스틱 등이 담긴 쓰레기 봉지를 수거업체 차량이 집게로 집어올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쌓여있던 폐비닐과 플라스틱 등이 담긴 쓰레기 봉지를 수거업체 차량이 집게로 집어올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지난 4일 고양시 내유동의 한 버스정류장 종점. 고양재활용산업의 쓰레기 수거 차량에 올라탔다. 5t트럭에 올라타자 이용기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큰 트럭 타본 적 있어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 아파트에서 쓰레기를 수거해 오는 길이었다.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들어가니 수거장이 나왔다. 이 대표는 재활용 쓰레기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40년째 재활용 산업에 몸담고 있다고 했다. 고양재활용산업 수거장에 들어서자 재활용 쓰레기들이 알루미늄 캔, 폐지, 빈 병, 플라스틱, 봉지 등으로 나뉘어 쌓여 있었다.

“정부에서 정상화됐다고 하는데 지금도 30분 전에 비닐 안 받겠다고 연락왔어요.” 이 대표가 말했다. 전날 환경부에서 비닐 수거가 정상화됐다고 했지만, 정작 선별장에선 ‘지저분한 비닐’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깨끗하게 해서 갖다주는데도….” 이 대표는 말끝을 흐렸다. “스티로폼과 비닐은 현재도 가져올 이유가 없어요. 돈이 안돼요. 우리한테 이익이 없는 건 시에서 보조를 해주든지, 처리를 해주든지 해야 하는데. 쓰레기도 오래 쌓아놓으면 폐기물법에 걸리는데….”

‘별거’ 다 들어있는 비닐, 갈 곳 없어 ‘골칫덩이’…값 떨어진 폐지도 수북

입구엔 알루미늄 캔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5t트럭에 달린 집게가 트랜스포머 같은 손을 활짝 벌려 알루미늄 캔더미를 집어 트럭에 실었다. 햇살이 비치자 캔이 촤르르 눈부시게 빛났다. 재활용업체에서 캔을 가져가는 차였다. 맞은편에는 프라이팬, 냄비 등이 쌓여 있었다. 코팅이 조금 벗겨져 보일 뿐 멀쩡한 프라이팬들이 따로 모여 있었다. 프라이팬은 필리핀 등 동남아로 수출돼 재사용된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쓰레기를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플라스틱을 정리하는 간이 컨베이어벨트에 세 명의 직원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제일 앞선 직원이 재활용이 불가능한 못 쓰는 전화기 등 이물질을 걷어냈다. 다음엔 두 명이 페트와 PE, PS 등을 종류별로 구분하고 있었다. 생수통으로 많이 쓰이는 페트, 세제통으로 많이 쓰이는 게 PE, 요구르트통으로 많이 쓰이는 얇은 재질이 PS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플라스틱을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노동자 세 명은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빠르게 굴러가는 컨베이어벨트 위의 플라스틱을 능숙하게 골라냈다.

“우리는 종류별로 분류해서 깨끗하게 갖다주죠, 더 영세한 곳도 많아요.” 고양재활용산업은 서울 영등포, 경기 고양시·파주시 등 100개 단지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고 재분류해 선별업체에 가져다준다. 하루에 30t 정도를 수거해온다.

갈 곳이 없어 골칫덩이가 된 비닐이 쌓인 곳을 갔다. 비닐 봉지를 뜯자 음식물이 묻은 비닐, 신문 등 쓰레기가 든 비닐 등이 나왔다. 이 대표는 “음식, 통닭 뼈, 기저귀 등 별게 다 들어있다. 이렇게 해선 재활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옆에는 폐지더미가 높게 쌓여 있었다. “폐지도 받는 데가 없어서 쌓아놓고 있어요. 지금 폐지값도 4분의 1로 떨어졌어요. 적자를 많이 봐요. 도산하는 업체가 많이 나타날 겁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면 몇 개월 안에 3분의 1이 도산하지 않을까요.”



선별

수거품 35%는 폐기물…처리 비용이 더 들어 “수익 날 수 없는 구조”

고양재활용산업과 같은 수거업체에서 분류된 비닐과 플라스틱은 다시 선별장으로 간다. 고양시 외곽에 위치한 ㄱ업체는 고양재활용산업을 비롯한 1차 수거업체 30개로부터 폐비닐과 플라스틱을 납품받는다. 같은 날 ㄱ업체 입구에 들어서자 달짝지근한 음료가 적당히 부패해가는 달고도 시큼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새벽까지 내린 비로 질척한 바닥에 널린 플라스틱 병과 곳곳에 층층이 쌓인 압축품들의 광경이 압도적이었다. 수거장에서 쓰레기를 싣고 온 5t트럭, 선별된 압축품을 싣고 재활용 업체로 나가는 25t트럭, 지게차 등이 수시로 왔다갔다 했다. ㄱ업체의 이모 대표가 “조심해야 한다. 차에 치여 사고를 당하기 쉽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외곽의 한 쓰레기 선별업체에서 직원들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옮기고 있다. 이상훈 기자 doolee@kyunghyang.com

경기 고양시 외곽의 한 쓰레기 선별업체에서 직원들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옮기고 있다. 이상훈 기자 doolee@kyunghyang.com

ㄱ업체는 모든 플라스틱과 비닐을 받아 선별한다. 5t트럭에 달린 집게가 쓰레기 봉지를 바닥에 떨궜다. 우비를 입은 노동자가 갈퀴로 비닐을 잡아채고 칼로 푹 찌르자 플라스틱들이 흩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플라스틱은 자동장치를 타고 2층 선별장으로 이동했다.

ㄱ업체는 규모가 큰 편이다. 하루에 85t 정도의 쓰레기가 들어온다. 60t이 플라스틱, 25t가량이 비닐이다. 이 가운데 35%는 폐기물이어서 돈을 주고 버려야 한다. 이 대표는 “페트병을 갖다주고 받는 수입은 줄어드는데, 35%의 쓰레기 처리비용은 올라간다.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페트병 가격이 지난해보다 30%가량 내렸다. 중국이 수입을 금지하고, 일본과 유럽 등에서 깨끗하고 투명한 페트병이 수입되면서 국산 페트병 가격이 더 떨어졌다”고 말했다. 폐비닐은 압축돼 고형연료(SRF)를 만드는 공장으로 간다. 하지만 최근 고형연료 시장이 축소되고, 미세먼지 악화로 고형연료를 필요로 하는 열병합발전소, 시멘트 공장 등의 시설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비닐을 받겠다는 곳이 줄었다. “1년에 10번 검사를 받는데, 한 가지만 불합격돼도 정지를 당한다. 이래서 정지, 저래서 정지를 당해서 가동을 못하니 폐비닐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꺼내든 고형연료 회사 명단 상당수가 납품을 받을 수 없는 상태로 가로줄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그는 “맨 위(재활용업체)에서부터 쭉쭉 빠져나가야 하는데 위에서 막히니까 아래까지 계속 막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층 선별장으로 올라갔다.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올라오는 플라스틱들 가운데 이물질 등을 걸러내고 기계가 자동으로 페트와 PE, PS 등의 플라스틱을 선별했다.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직원 33명이 1차적으로 이물질을 제거하고, 기계를 오가며 쓰레기를 치웠다. 냄새와 먼지, 소음 등으로 이야기하기도 힘들었지만 이곳에도 생활이 있었다. 기계 한쪽에 아이들이 버린 플라스틱 장난감을 붙여 장식해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 대표는 “우리는 기계로 하지만 규모가 작은 곳은 손으로 일일이 작업한다.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직원을 구하기 힘들다. 대부분 이주노동자를 구한다”고 말했다.

1층으로 다시 내려와 압축 플라스틱 더미로 향했다. 플라스틱 압축품 옆에 쓰레기 압축품이 쌓여 있었다. 나무, 스펀지, 고무신발, 쇠와 플라스틱이 섞여 있는 쓰레기, 화장품 병, 청소솔 등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한쪽에는 재활용이 어려운 PVC(폴리염화비닐) 제품들이 따로 쌓여 있었다. 패널, 파이프 등에 많이 쓰이는 PVC는 플라스틱 가운데서도 악명이 높다. PVC는 생산부터 폐기 때까지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을 방출하고, 딱딱한 PVC를 말랑하게 가공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프탈레이트는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부는 재활용돼 전선피복, 호스 등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선별장에서도 비닐은 골칫덩이였다. 비닐을 담은 봉투를 가르자 빨간 음식물이 선명히 묻은 비닐, 비닐로 만든 지갑 등이 나왔다. 이 대표는 “이런 것들은 다 못 쓴다. 비닐 안에서 나오는 것들은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라고 말했다. 납품 자체가 힘든 더러운 비닐은 쓰레기로 버려진다.

쓰레기로 분류된 것 가운데 커피숍에서 주는 테이크아웃용 아이스커피 컵이 나왔다. “이건 재활용되는 거 아니냐”고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 대표는 “다 버린다. 쓰레기”라고 말했다. 분명 페트병인데, 버린다고? 놀라웠다. 그에 대한 답은 페트병 재활용 공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판로마저 막히는데…답 없이 버리기만 하면 우린 어쩝니까”

폐비닐 업체의 한숨

지방의 한 폐비닐 재활용업체에 쌓여 있는 폐비닐 압축품들. 폐비닐에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잘게 자른 뒤 열을 가해 굳힌 다음 순대 모양의 고형연료(SRF)로 만든다. 이영경 기자

지방의 한 폐비닐 재활용업체에 쌓여 있는 폐비닐 압축품들. 폐비닐에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잘게 자른 뒤 열을 가해 굳힌 다음 순대 모양의 고형연료(SRF)로 만든다. 이영경 기자

수전 프라인켈은 <플라스틱 사회>에서 “비닐봉지는 방수가 되고, 깃털처럼 가볍고, 자신의 무게보다 수천배는 더 나가는 것도 거뜬히 담을 수 있는 놀라운 물건”이라고 썼다. 이 놀라운 물건의 평균 사용시간은 25분이며, 분해까지 걸리는 시간은 100~500년이다. 비닐봉지는 현재 낭비와 과잉, 자연 파괴의 상징이 됐다.

한국인이 매년 쓰는 1회용 비닐봉지는 2015년 기준으로 216억장, 1인당 420개에 이른다. 핀란드의 100배, 아일랜드의 20배 사용량이다. 2008년 정부는 폐비닐을 고형연료(SRF)로 만들어 에너지로 쓰기로 했다. ‘폐자원 및 바이오매스 에너지 대책’을 내놓고 가정에서 나온 폐비닐을 성형해 고형연료로 만들었다. 정부 정책과 지원금을 보고 많은 업체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시장 악화로 업체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폐비닐은 갈 곳을 잃었다.

[커버스토리]폐비닐·페트병은 왜 골칫덩이가 되었나

“잘나가던 고형연료, 미세먼지 규제로 사용 감소…재활용 지원금, 처리량 15%뿐…문 닫는 수밖에”

“폐비닐은 중국 수출과 관련이 없습니다. 폐비닐 문제는 100% 정부의 정책 실패입니다.” 고형연료업체를 운영하는 ㄱ대표가 말했다. 지난 6일 지방의 한 고형연료업체를 찾았다. 공장을 찾아가는 길에 서울에서 버리는 재활용 쓰레기의 3분의 1이 비닐이라는 뉴스를 봤다. 내가 버린 비닐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공장 입구엔 폐기물이 가득 담긴 컨테이너가 두 대 있었다. 40t 규모라고 했다. 모두 폐비닐 압축품에서 나온 쓰레기들이다. 선별장에서 쓰레기 및 이물질을 걸렀다지만 이곳에도 쓰레기가 가득했다. “인건비를 들여야 이물질을 골라내는데, 폐비닐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그렇게 안돼요. 하루에 들어오는 비닐 중 30%가 이물질입니다.” 이물질 가운데엔 신발, 플라스틱, 캔, 타이어, 담배꽁초 등이 있었다. 선별장에서 본 쓰레기를 그대로 재활용업체에서 마주했다.

창고엔 폐비닐 압축품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포클레인이 폐비닐을 퍼서 파쇄기에 넣었다. 폐비닐은 파쇄기에서 150㎜로 잘린 뒤 강한 바람을 쏘여 비닐만 날리고 이물질은 아래로 떨어뜨린다. 거대한 자석으로 철을 골라낸 뒤 다시 50㎜ 크기로 분쇄한다. 그다음 고온으로 압축해 고형연료로 만든다. 기계에서 가래떡같이 뽑혀 나오는 고형연료가 마치 순대 같았다. 이 공장에선 하루에 80t의 ‘비닐 순대’가 만들어진다. 고형연료는 열병합발전소, 시멘트공장, 제지공장 등 열을 필요로 하는 사업장으로 간다.

ㄱ대표는 정부의 정책을 보고 2010년 고형연료 사업을 시작했다. 2010년 t당 8만원 정도 하던 고형연료는 2014년 13만원까지 올랐다. 유가가 비싸 저렴하게 고형연료를 쓸 수 있으니까 업계는 활황이었고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하지만 2014년 정부가 사업장에서 나오는 폐비닐을 성형하지 않아도 연료로 인정해주는 비성형 제도를 도입하면서 업계는 휘청대기 시작했다. 비닐을 모아서 파쇄한 수준의 비성형 연료가 싼 가격에 공급되면서 고형연료 가격은 t당 5만원까지 떨어졌다. 아울러 미세먼지 완화를 위해서 고형연료 사용 시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중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1~2년 버티던 업체들이 3년째에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고형연료를 생산하는 82개 업체 가운데 26개 업체가 가동을 중단했다.

ㄱ대표는 “사업장에서 나오는 비성형은 싸기 때문에 시설에서 거의 공짜로 받는다. 사업장 폐기물 처리비용이 비싸니까 적당히 파쇄해 발전소 등에 갖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폐비닐 가격이 낮아지면서 ㄱ대표가 운영하는 업체도 타격을 입었다. 그나마 지원금이 있어서 유지해왔지만, 폐비닐 처리 물량 중 3000t에 대해서만 지원금을 받으면서, 나머지 물량의 수익성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ㄱ대표는 “연간 처리하는 폐비닐이 2만t인데, 3000t만 지원금을 받는다. 폐비닐을 처리할 시설과 역량이 있지만, 수익이 나지 않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지난해 처리한 38만2000t의 폐비닐 가운데 16만t을 8개 업체에서 처리했다. ㄱ대표는 “지원금을 주는 물량 제한 때문에 여력이 있는 업체도 물량을 처리할 수 없다. 지원금을 노리고 3000t만 처리하고 가동을 중단하는 업체들도 많다”며 불합리한 지원금 제도가 폐비닐 재활용의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했다.



페트병 업체의 한탄

경기도 김포의 한 페트병 재활용업체에서 직원들이 컨베이어벨트 위 페트를 색상별로 분류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경기도 김포의 한 페트병 재활용업체에서 직원들이 컨베이어벨트 위 페트를 색상별로 분류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대책을 세운다면 원인 제공자가 나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시민들에게 쓰레기를 깨끗하게 버리라고 호소하고, 수거업자에게는 수거해달라고 호소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포장재 쓰레기의 원인이 된 제조사 대기업들에는 왜 책임을 묻지 않나요.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원칙적으로 책임을 져야지, 왜 그게 분리배출 잘 못하는 국민들 탓이냐는 거죠.”

“재활용 어려운 ‘유색 페트병’ 막무가내 생산…원인 제공한 제조사에는 왜 책임 안 묻나요”

경기 김포시에 있는 페트병 재활용업체의 ㄴ대표가 말했다. 10년 전 아버지가 운영하던 페트병 재활용업체를 넘겨받았다는 ㄴ대표는 “요즘은 예전에 하던 페트병 물량 두 배를 처리해야 같은 양의 재활용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장 인근에는 PS 재활용 공장, 알루미늄 캔 재활용 공장 등 재활용업체들이 모여 있었다.

공장 마당에는 거대한 페트병 압축품이 쌓여 있었다. 그중 유독 하얀색 비율이 높아 보이는 페트병 압축품 더미가 있었다. “거래하던 중국 공장이 수입을 중단하면서 영국에서 들어온 수입품을 처리해달라고 우리 공장에 보낸 거예요. 보세요. 확연히 다르죠. 옆에 알록달록한 게 국산 페트병입니다.”

가까이서 보자 차이가 났다. 영국에서 온 페트병 압축품에도 유색이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뚜껑이나 라벨이었다. 반면 한국산 페트병 압축품 색상은 알록달록 다양했다. 녹색병, 갈색병, 형광색 음료병까지 현란했다.

“지금 수거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재활용 시장이 살아나야 문제가 해결돼요.”

분류된 페트는 분쇄한 뒤 세척해 플레이크로 만든다. 김영민 기자

분류된 페트는 분쇄한 뒤 세척해 플레이크로 만든다. 김영민 기자

ㄴ대표는 제조사들이 재활용이 잘되고 고가품을 만들 수 있는 투명 페트병을 적게 생산하고, 알록달록한 색상의 유색 페트병을 많이 만들면서 페트병 재활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ㄴ대표는 “과거에는 70%가 투명이었는데 요즘은 절반가량밖에 안된다. 유색으로 만들 뿐 아니라 아예 제품명이나 그림을 페트 표면에 인쇄해버린다. 재활용되든 말든 그냥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페트병이 점점 경량화되면서 같은 양의 페트병을 처리해도 나오는 플레이크(작은 플라스틱 조각)의 양이 줄어들었다. 최근 나오는 페트는 종이처럼 얄팍하고 하늘하늘한 재질도 많다. 페트 이외의 부분품도 늘었다. “재활용에 쓸 수 없는 부분품 비율이 15% 정도 됩니다. 그런데 샴푸 통을 보세요. 펌핑기를 포함한 부분품 비율이 105%인 것도 있어요. 버리는 게 너무 많은 거죠.”

페트병은 라벨과 뚜껑 등 이물질을 제거한 후 색상별로 나눠 분쇄한 후 세척해 플레이크 형태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플레이크는 인조솜, 섬유 등을 만드는 데 쓰이며 최상품은 딸기 포장갑 등에 쓰이는 페트통으로 만들어진다. 2010년 월드컵 유니폼도 재생 페트를 재활용한 섬유로 만들었다. 이 공장은 색상별로 분쇄한 플레이크를 중국으로 수출하던 1차 업체다. 최근 중국 수출길이 막히자 대신 동남아시아로 수출하고 있다. ㄴ대표는 “유가 하락으로 재생 페트와 신제품 간의 가격 차이가 작아지면서 재활용 페트 가격이 하락해 재활용 시장이 휘청대고 있다”며 “재활용 페트 판매가가 2014년 대비 30% 떨어졌다”고 말했다.

페트병 재활용 공장은 굉음과 연기, 냄새로 가득했다. 1차적으로 톱니바퀴가 압축물을 묶은 철사를 끊고 해체하면 2차로 작은 부속품을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컨베이어벨트에서는 노동자 5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물질을 걸러내고, 색상별로 페트를 구분했다. 이를 분쇄한 후 색상별로 물에 담가 가라앉는 페트만 모아 말리면 수출용 플레이크가 완성된다. ㄴ대표는 “영국산 페트병을 처리할 때는 직원 두 명이 골라내도 충분했다. 그만큼 유색이 거의 없으니까. 근데 국산을 처리하려면 5~6명이 작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세한 플레이크가 색상별로 쏟아졌다. 투명한 플레이크는 자르르 쏟아지는 반면, 갈색 플레이크는 눈송이 내리듯 떨어졌다. 갈색 페트병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갈색은 생산량이 별로 없고 가격도 낮지만 그래도 색상이 섞이면 안되니 라인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척까지 마친 최종 재활용 플레이크를 만드는 인근 준영산업에 갔다. 규모가 큰 이 공장은 자동화된 설비로 페트병을 처리했다. 기계로 라벨을 긁어내고 광선을 이용해 페트병 색상을 구분해 선별했다. 따뜻한 물로 페트를 세척해 내놓는다. 맹성호 대표는 “라벨을 제거하는 과정이 7~8단계 있고 색상별 페트병 선별도 세 번을 거친다”며 “일본은 시스템이 단순하지만 우리는 불필요한 물질을 걷어내기 위한 설비가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장 곳곳에 긁힌 라벨이 넝마처럼 널려 있었다.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완제품은 대부분 국내 공장에 판매된다.

두 공장에서도 일회용 아이스커피컵은 보이지 않았다. ㄴ대표에게 아이스커피컵을 재활용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1회용 커피컵 가운데 간혹 PS가 섞여 있다. 페트에는 아주 조그만 이물질만 들어가도 반품된다. 육안으로 쉽게 구분되지 않다 보니 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 생산자가 부담금을 지급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대상이 아니어서 지원금 대상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이스커피컵엔 분명 재활용 마크가 찍혀 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커버스토리]폐비닐·페트병은 왜 골칫덩이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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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중 3중 과대 포장 줄이고, ‘재활용하기 쉬운’ 제품 만들어야

‘쓰레기 대란’ 대책은

[커버스토리]폐비닐·페트병은 왜 골칫덩이가 되었나

비닐과 플라스틱은 재활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완벽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고유가 시대, 상대적으로 저렴한 재활용 플라스틱은 한때 활활 타오르는 시장이었다. 돈이 되니 너도나도 수거해 갔고, 재활용 시스템은 수익성을 기반으로 굴러갔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전반적인 재활용 시스템의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마구 만들고 버려도 되는 시절은 갔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재활용산업이 양적 성장에 치중하면서 분리배출의 질적 관리에 실패했다”며 “민간에 의존한 구조 개선이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0년대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재활용품 수요가 급증했고, 가격 급등에 따라 재활용 경기가 불붙었다. 이에 민간업체가 쓰레기 처리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홍 소장은 “영세업체 위주로 되어 있는 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시장구조를 잘 만들어야 한다”며 “재활용산업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자의 책임을 강화하거나, 생산자가 책임질 수 없는 영역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는 식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10일 대책을 내놓고 선별업체들이 재활용할 수 없어 소각하는 쓰레기 처리비용을 줄여주고, 폐비닐로 만드는 고형연료에 대한 규제를 일부 완화하기로 했다.

또한 페트병 생산자에 대해 재활용 용이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재활용이 어려운 페트병에 대해선 생산자에게 분담금을 더 물리기로 했다.

정부는 아울러 장기적인 재활용 대책도 마련할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생활폐기물과 관련한 생활문화와 생태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근본적인 중장기 종합계획을 범부처적으로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중요한 것은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들을 줄이는 것이다. 2016년 전국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하루 5만3772t으로 2014년 대비 4.9% 증가했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2015년 690만t이었다. 수전 프라인켈은 <플라스틱 사회>에서 페트병이 재활용된다는 믿음이 ‘죄책감 지우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제품의 설계, 생산, 사용 전 과정을 재활용 친화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은 “고형연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다”며 “전체 생활폐기물의 40%가 포장재인데 과도한 포장을 줄여 최대한 쓰레기를 감량하고 재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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