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왜 비핵화를 택했나?

2018.04.13 21:39 입력 2018.04.13 21:41 수정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광주과기원 석좌교수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된 4월11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기존의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 대신 ‘새로운 병진노선’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비핵화 대화를 준비하며 김정은 체제의 기본 노선인 ‘경제·핵 병진노선’의 수정을 택했다는 것을 보여준 중대한 사건이 아닌가 추측된다.

김정은이 2013년 3월 채택한 경제·핵 병진노선은 기본적으로 과도한 국방비 지출을 초래한 김정일의 선군정치 노선의 수정이었다. 김정은의 병진노선은 그가 닮고 싶어하는 김일성의 ‘경제건설과 국방건설 병진노선’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김정은 병진노선의 특징은 경제 건설에 국가자원을 집중 투입하기 위해 재래식 무기개발과 보유를 줄이면서 좀 더 비용효율적인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통해 전쟁억지력과 체제안전을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읽기]김정은, 왜 비핵화를 택했나?

김정은의 병진노선은 2016년까지는 성공적이었다. 시장을 허용하고 사적 경영을 허용하는 개혁을 통해 경제가 성장하였다. 북한식 시장인 장마당이 전국적으로 생겨나고 돈주(錢主)로 불리는 북한 부르주아지가 탄생하여 북한의 경제성장을 이끌어갔다. 2011년 김정은 집권 후 북한 경제는 연평균 3~4% 성장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성공에 힘입어 북한은 핵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핵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빨리 핵무기와 장거리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었다. 2016년초에 실시된 김정은의 연이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세계를 놀라게 했고 미국은 ‘가장 강력한’ 제재로 북한의 핵도발을 저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대북 제재는 작동하지 않았다. 대북 제재가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북한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낮아서 제재의 효과가 약했고, 북한을 ‘순망치한’의 완충국가로 여기는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를 위반해가면서까지 몰래 북한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7년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김정은의 병진노선은 자기모순을 드러냈다. 병진노선은 핵무력의 보유를 통해 체제를 안정시키고 군비를 축소시켜 경제발전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는 논리 위에 서 있으나, 핵무력의 보유가 강력한 경제제재를 불러와 경제발전을 가로막음으로써 경제성장의 단맛을 본 북한 주민들은 제재의 고통을 감수하며 다시 ‘고난의 행군’에 동참하려 하지 않을 태세였다. 여기에 더하여 ‘성공의 역설’이 일어났다. 사실상의 시장경제를 허용하는 김정은의 경제개혁이 대외의존도를 2015년 47%로 높여서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북한 경제에 타격을 가하는 효과를 내게 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트럼프가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종언을 선언하고 일방주의적 군사 조치를 암시하자 김정은은 미국의 침략에 대해서는 핵타격으로 대응하겠다고 반격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전쟁위기를 고조시켰다.

전쟁위기 국면에서 대화를 통한 평화국면으로의 전환은 2018년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시작되었다. 김정은은 ‘책임있는 핵강국으로서’ 핵무기를 방어용으로만 사용하겠다고 선언하였고 평창 올림픽의 성공을 바란다고 함으로써 평창 올림픽을 매개로 한국과 평화를 위한 대화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암시하였고, 실제로 평창 올림픽에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북한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발표한 ‘새로운 병진노선’의 내용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구체화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정은이 핵무력 보유를 고수하는 기존의 병진노선을 수정해서라도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를 수용하는 대가로 체제안전을 보장받는 평화협정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사를 보였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일종의 국시와 같은 병진노선의 수정을 필요로 하는 비핵화를 수용하면서까지 미국과의 대화에 나섰다는 것은 대담한 선택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엄격한 검증을 통해 단계적으로 상호신뢰를 쌓아 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이는 상대방의 협력에 대해 협력으로 대응하는 일종의 ‘조건부적 협력’(conditional cooperation) 게임이다. 북한이 먼저 핵 모라토리엄(중단)을 하면 미국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다음 단계로 북한이 핵동결과 검증을 수용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미국은 평화협정 협상에 착수하고 상주 대사관이나 대표부를 개설하여 대화체제를 제도화한다. 최종단계로 북한이 비핵화를 완성했을 경우 미국은 북한과 양자 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전환하여 한반도평화체제를 보장한다. 북·미 정상회담은 이러한 단계적인 비핵화 프로세스에 합의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이 이러한 비핵화 프로세스에 합의하도록 중매자 또는 길잡이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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