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식 항해사의 남극편지

사랑·관심·친밀·평화·이해··· 펭귄이 가르쳐준 것들

2018.04.15 14:36 입력 2018.04.15 15:35 수정
김연식 그린피스 항해사

펭귄이 좋습니다. 까닭 모르게 좋습니다. 작고 통통한 몸집, 날개를 어정쩡하게 펴고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앙증맞은 모습, 단언컨대 이 녀석들을 보고 사랑이 샘솟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펭귄 뒤를 따라 걸으면 느낌이 또 다릅니다. 세상 급한 일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분주히 가는데, 막상 조금 걸었다 싶어 돌아보면 얼마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펭귄의 요란한 수고는 어디로 홀연히 사라진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녀석들은 보는 사람의 속을 간질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냉큼 안아다 멀리 옮겨주고 싶습니다. 펭귄의 분주한 성실함이 마냥 기특합니다.

남극 젠투펭귄 <그린피스 제공>

남극 젠투펭귄 <그린피스 제공>

그 마음은 우리가 반려동물에게 품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때로는 서슴없이 다가오는 펭귄에게서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정서적 유대를 느낍니다. 남극 도둑갈매기는 긴 부리로 사람을 위협하고, 제비갈매기는 머리 위에서 요란스레 짓다 사납게 달려들어 머리며 어깨를 마구 쫍니다.

펭귄은 배척하지 않습니다. 호기심 많은 강아지처럼 다가와 반기는 것 같아 기껍습니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편으로 순진함이 걱정스럽습니다.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던 고래는 남극에서만 150만마리가 작살을 맞았습니다. 남아프리카 파란 영양, 모리셔스 도도새 등 사람을 믿었다가 멸종 또는 위기에 놓인 동물이 한둘이 아닙니다. 세상을 의심하지 않는 순수함, 경계 아닌 관심, 두려움보다 큰 호기심을 보이는 펭귄에게서 그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눈을 맞고 있는 아델리 펭귄 <그린피스 제공>

눈을 맞고 있는 아델리 펭귄 <그린피스 제공>

인간도 순수를 추구합니다. 관심과 친밀감, 열린 마음, 호기심, 보호, 연대, 평화, 다가감, 반김, 이해, 화해, 보듬음. 우리 마음을 어루만지는 건 이런 긍정적인 감정들입니다. 남극의 펭귄에게서는 배척과 경계, 착취, 부정, 폭력, 다툼, 갈등, 위협, 공격, 비난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서 인간 내면의 본질을 봅니다.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아틱 썬라이즈호를 타고 보낸 남극에서의 시간은 펭귄과 함께 할 때처럼 늘 따뜻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정반대의 감정을 지난 3월23일 크릴어선을 만날 때 겪었습니다. 우크라이나 크릴어선 ‘모르 소드루체스토호’는 비폭력 직접행동으로 어업을 막으려는 그린피스 활동가들을 위협했습니다.

폭력 대신 비폭력, 간접이 아닌 직접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고 그린피스는 믿고 행동합니다. 이런 방침 하에 활동가 로니 크리챤센(Ronni Christiansen)과 조이 버클리(Zoe Buckley)가 어선 뱃머리에 매달려 어업을 평화적으로 저지했습니다. 그러나 어선은 두 활동가의 목숨을 위협하는 항해를 강행했습니다.

“모르 소드루체스토호, 저희는 귀선을 해하려는 게 아닙니다. 남극을 보호하기 위해 비폭력적 방법으로 귀선의 어업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그린피스 남극 캠페인을 이끈 틸로 마아크(Thilo Maack)가 어선에 무전했습니다. 어선 선장이 답합니다.

“방해하지 마세요. 저는 상관하지 않고 크릴을 잡으러 떠납니다.”

“당신은 사람을 매달고 달리려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말입니다.”

“분명히 경고합니다. 저는 15분 뒤 엔진을 전속으로 돌릴 겁니다. 이에 따른 피해는 그린피스에서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을 매달고 전속으로 가겠다는 겁니까. 사람을?”

“거듭 경고합니다. 저희는 엔진을 돌릴 겁니다.”

우리는 설마하며 지켜보기로 했고, 어선은 정말 엔진을 돌려, 사람을 달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활동가들이 매달린 뱃머리는 파도를 받아 출렁이는 바닷물에 잠기기 시작했고, 우리는 서둘러 물러섰습니다. 활동가의 안전이 먼저니까요.

“모르 소드루체스토호, 두 사람이 위험합니다. 활동가들이 배에서 내릴 수 있도록 즉시 배를 세워주세요.”

크라이나 크릴 어선 모르 소드루체스토호에 평화적 시위를 진행하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그린피스 제공>

크라이나 크릴 어선 모르 소드루체스토호에 평화적 시위를 진행하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그린피스 제공>

조이와 로니는 다급하게 바다로 뛰어들었고,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아틱 썬라이즈호로 돌아왔습니다. 이날 우리는 크릴어선으로부터 안타까운 감정을 느꼈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린피스는 관심과 보호를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내면의 따뜻함만이 지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바다 곳곳을 보호구역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런 계획은 펭귄의 걸음처럼 느리게, 그러나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몬테레이만(Monterey Bay)은 1992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해달과 바다사자, 사다새(펠리컨) 같은 멸종 위기종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으로 넘친 이 곳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연학습장이 됐습니다. 인도양 차고스(Chagos) 제도는 2010년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위기에 처한 산호초와 거북이, 각종 특이 종이 번식해 지금은 해양생물 연구중심지로 거듭났습니다. 2006년 보호구역이 된 하와이 파파하나노무구아키아에는 현재 해양생물 7000여종이 사는데, 넷 중 하나는 이곳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종입니다. 이 밖에 남극의 로스해(Ross Sea), 스코틀랜드 람라쉬 베이(Lamlash Bay) 등이 생명의 터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린피스는 올해 10월에 열리는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에서 남극해 일대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보호구역에 지정되면 어류 개체수가 늘어나 남극 바다가 살아날 것입니다. 크릴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후변화를 막는 데 기여합니다. 저희는 남극 웨델해를 시작으로 전 세계 바다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남극 웨델해 <그린피스 제공>

남극 웨델해 <그린피스 제공>

이를 위해 연대하려 합니다. 배척과 반대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려 합니다. 지구를 사랑하는 시민들과 목소리를 합치려 합니다. 남극은 너무 멀고, 아무도 소유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반향이 있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4월 현재 국내 5만명, 전 세계 140만명이 남극해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달라는 서명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연대는 연대를, 희망은 희망을 낳는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관심과 친밀감, 열린 마음, 보호, 호기심, 연대, 평화, 다가감, 반김, 이해, 화해, 보듬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 말들을 작은 행동으로 실현할 수 있습니다. 펭귄이 먼 길을 뒤뚱뒤뚱, 그러나 성실하게 걷는 것처럼 우리도 서명운동 같은 작은 행동으로 지구를 지키려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바로 서명으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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