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탓 다양해진 고산지대 생물종···그럼 만년설에 핀 꽃은요?

2018.04.15 16:38 입력 2018.04.15 16:42 수정

스위스 알프스산맥의 피츠리나드산 정상에서 식물학자가 식물상 조사를 하고 있다. 해발 3410m로 1835년에는 식물종이 알프스고산봄맞이 하나만 발견됐던 이 산에서는 16종의 식물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새로 발견된 종들 중 다수는 이전에 피츠리나드산 정상과 같은 높이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는 것들이라고 밝혔다.  네이처·스위스눈사태연구소 제공

스위스 알프스산맥의 피츠리나드산 정상에서 식물학자가 식물상 조사를 하고 있다. 해발 3410m로 1835년에는 식물종이 알프스고산봄맞이 하나만 발견됐던 이 산에서는 16종의 식물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새로 발견된 종들 중 다수는 이전에 피츠리나드산 정상과 같은 높이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는 것들이라고 밝혔다.  네이처·스위스눈사태연구소 제공

‘거대한 가속(Great Acceleration).’

20세기 후반 이후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 인류 사회의 영향으로 지구 환경의 변화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서식지의 급변이나 멸종 등 ‘거대한 가속’에 따른 생태계 변화를 알리는 보고서 역시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인류는 생태계의 변화가 장기간에 걸쳐 가속화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넓은 범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물다양성의 변화에 대한 장기 연구자료 자체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발간된 네이처 최신호 표지에 게재된 유럽 전역 산 정상의 식물상 연구는 ‘거대한 가속’에 따라 벌어지는 장기적인 생태계 변화에 대해 인류가 처음으로 확보한 연구 결과물로 평가된다. 독일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학, 덴마크 오르후스대학 등 유럽 11개국 공동 연구진은 145년 동안 알프스산맥을 포함한 유럽 내 산 정상 302곳의 식물상 변화를 조사한 결과 식물종의 다양성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 산악의 절반가량에서 식물종의 다양성이 급격히 증가했고, 최근 10년 사이(2007~2016년) 생물종 증가 속도는 50년 전인 1957~1966년에 비해 5배가량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1957~1966년 이들 302곳의 산정에서 증가한 식물종의 수는 평균 1.1개 정도였지만 최근 10년 사이에는 평균 5.5종이 산 정상부로 서식지역을 확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중 하나가 빙하 미나리아재비이다. 노란 수술을 흰 꽃잎이 둥글게 에워싼 꽃을 피워내는 이 풀은 보통 화강암·편마암 같은 산성을 띤 암석 위에서 자라는 극지방 식물이다. 과거에는 조사대상 산정 113곳에서만 발견됐으나 이번에는 대부분의 지역으로 서식지를 확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꼭대기에 새로 오른 식물종이 기존의 종의 서식 영역을 얼마나 차지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분석하지 않았으나, 이 같은 현상이 현재진행형 또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라고도 지적했다.

알프스산맥의 봉우리들에 서식하는 알프스고산 봄맞이.  스위스눈사태연구소·독일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학 제공

알프스산맥의 봉우리들에 서식하는 알프스고산 봄맞이.  스위스눈사태연구소·독일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학 제공

생물 다양성이 증가하는 건 꼭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새로 유입된 식물은 기존 식물들을 위협하게 되고, 생태계의 기존 균형은 깨지게 된다. 논문의 주저자인 독일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학 교수 마누엘 슈타인바우어는 “춥고 바위가 많은 산꼭대기의 환경에 적응해온 기존 식물종들은 장기적으로 새롭게 산 정상부에 나타난 종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새로 산 정상부에 나타난 종들은 더 키가 크고, 산꼭대기의 기온 상승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장은 긴박한 상태가 아니더라도 2100년까지 더 급격한 기후변화가 예상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인류가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전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특히 산악지역은 더욱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유럽식물종변화

유럽식물종변화

연구진은 산꼭대기 식물종의 다양성이 늘어나는 속도가 온난화 속도와 정비례 관계라고 분석했다. 강우량이나 질소 유입 등 식물의 생장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소로는 이 같은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처럼 유럽 전역에 걸친 산 정상에서의 종 다양성 증가는 인간의 거주지로부터 떨어져 있는 공간에까지 기후변화를 겪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생물다양성뿐 아니라 생태계 기능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증명됐다고 덧붙였다.

독일과 덴마크 외에도 노르웨이, 스위스 등 11개국의 다양한 과학자들이 참여한 이번 연구가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장시간에 걸친 기후변화의 생태계 영향을 분석한 최초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총 145년에 걸쳐 여러 세대의 과학자들이 302곳에 달하는 산의 정상을 일일이 직접 확인하고, 식물의 종과 분포에 대한 방대한 조사 결과를 함께 분석·비교했다. 개별 연구진만으로는 이뤄내기 어려운 성과다. 연구진은 산마다 두 명의 연구자가 따로 산 정상부에 대한 조사를 수행해 서로의 조사 결과를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연방산림·눈·경관연구소 소냐 위프 박사는 “산 정상에서의 연구는 해당 지역이 어디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덕분에 선대의 학자들이 조사한 것과 정확하게 동일한 장소에서 식물종을 조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의 302개 봉우리 가운데 145곳에서 확인된 자주범의귀.<br /> 스위스눈사태연구소·독일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학 제공

유럽의 302개 봉우리 가운데 145곳에서 확인된 자주범의귀.
 스위스눈사태연구소·독일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학 제공

이번에 유럽에서 확인된 기후변화로 인한 식물상은 이미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열대 지역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야자수의 경우 가장 추운 달의 평균 기온이 2도 이상인 지역에서도 생장과 번식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지난달 19일 미국 라몬트도허티지구관측소 연구진이 사이언티픽리포트에 게재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 역시 가까운 미래에는 야자수가 번식 가능한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 알프스 지역의 고원에서도 야자수가 발견된 바 있다고 한다.

국내의 경우도 주요 과일의 주산지와 북방한계선이 빠르게 북상 중이다. 지난 10일 통계청이 펴낸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현황’에 따르면 사과와 인삼의 재배가능지역은 강원 산간으로 확대됐고, 복숭아와 포도의 재배면적은 충북, 강원 지역에서 확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제주도에서만 재배했던 감귤은 바다 건너 고흥, 진주, 통영에서도 재배가 가능해진 상태다. 강원도 산간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 지역이 21세기 후반 아열대기후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식물의 북방한계선은 계속해서 북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유럽과 달리 국내의 경우 생태계의 장기적인 변화 추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부터 자료를 축적해놔야 10년, 20년 후에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가 가능하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 영향에 대한 연구조차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유럽의 획기적인 연구가 1870년대부터 축적된 자료 덕분에 이뤄질 수 있었음을 감안하면 국내에서도 수십년 후, 백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 생태연구를 지금이라도 시작할 필요가 있다. 1913년 자신의 저서에 이번과 같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스위스의 식물학자인 요시아스 브라운 블랑케(1884~1980) 같은 선구자들이 조사해놓은 자료들이 없었다면 145년에 걸친 연구결과 분석은 불가능했다고 이번 연구를 내놓은 과학자들은 말한다. 관련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정리해 오랫동안 남겨놓은 자료가 존재하는 지역이 유럽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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