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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가부 ‘댓글부대’ 성과 나오자 박근혜 정권 때 문체부 ‘댓글 감시시스템’ 구축

2018.04.16 06:00 입력 2018.04.16 06:01 수정

박, 보좌관 회의서 직접 지시…2016년 총선 여론 동향 파악

국정원 특활비 지원 업체에 포털·SNS 실시간 분석 맡겨

문화체육관광부가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실시간 동향을 파악하는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한 후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를 받은 업체에 온라인 여론분석 작업을 맡긴 사실이 드러났다.

여성가족부도 조윤선 장관 시절 용역업체를 통해 ‘댓글부대’를 운영했고 시험가동 결과가 나온 직후인 2013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 부처에 SNS 신속대응 시스템 구축을 지시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 댓글부대 조직이 발각된 후 새로운 형태의 댓글부대 구축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15일 경향신문은 박근혜 정부 당시 문체부가 빅데이터를 활용한 실시간 정책 여론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2016년 총선을 앞두고 2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만든 일명 ‘정책여론수렴 시스템’의 매뉴얼을 입수했다.

이 시스템이 1~30분 단위로 수집·분석하는 하루 정보량은 포털 뉴스 2만5000~2만9000건, 커뮤니티 7000~9000건, 트위터 20만~25만건, 블로그 2000~3000건, 페이스북 800~1000건 정도로 제시돼 있다. 내부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2013년 12월30일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구축됐다. 박 전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SNS를 통해 퍼져 나가는 잘못된 유언비어를 바로잡지 않으면 개혁의 근본 취지는 어디 가고 국민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며 선제적 대응을 주문했다.

문체부 담당직원 ㄱ씨는 “누가 박 전 대통령의 유언비어 대응 지시를 추진 배경으로 설명했는지 모르지만 정책여론수렴 시스템은 국정과제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정책 관련 키워드 1000여개를 중심으로 정보를 가져오는 구조로 개인 사찰이나 정치적 목적을 갖고 여론을 통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체부 해명은 경향신문 취재 결과와는 차이가 있었다. 매뉴얼에 소개된 검색 키워드 중에는 ‘교과서 국정화’ ‘사드’ ‘테러방지법’ ‘위안부’ ‘개성공단’ 등 정책 관련 단어도 있지만 ‘민주당’ ‘김종’(당시 문체부 2차관) 등 정책과제 수행과는 거리가 먼 단어들도 눈에 띄었다. ㄱ씨는 “실시간 급상승 키워드 중에 정책과제와는 상관없는 게 올라올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민주당’ ‘김종’의 경우 실시간 급상승 키워드가 아니라 모니터링 키워드였다. 해당 키워드에 대한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입력한 것이다.

‘개인을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2016년 상반기 시스템 운영실적 보고서에는 “녹색당 공약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트위터 이용자에 국민권익위가 직접 감사하다는 내용의 멘션을 작성해 소통했다”는 문구가 나온다.

‘블랙리스트’건, ‘화이트리스트’건 개인을 모니터링하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 운영 사례다.

■매뉴얼에 “이슈 발생 땐 포털 활용 대응” 포털 통제했나

문체부 측 “특정 키워드 정부 구축 사이트 연결 협조만 구해”

야간 용역 맡은 업체 “외부 접속 안돼 시스템 본 적도 없다”

개발 업체 “접속 가능케 변경”…접속 기록도 안 남게 설정돼

모니터링 결과 오보·루머 등 이상조짐이 발견될 경우 대응 방법은 더 의심스럽다. 시스템 매뉴얼에는 실시간 대응이 필요한 이슈가 발생한 경우 즉각 ‘일일이슈’ 메뉴를 클릭하고 팝업창에 간단히 이슈 내용, 중요도, 처리 방법, 처리 결과 등을 메모하게 돼 있다. 매뉴얼에 제시된 5가지 이슈 처리 방법에는 ‘해명자료 배포’ ‘자체 채널 활용’과 함께 ‘포털 활용 홍보’라는 메뉴도 포함돼 있었다.

불리한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포털까지 통제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낳게 하는 부분이다.

문체부 담당직원 ㄴ씨는 “포털 활용 홍보는 뉴스펀딩이나 네이버 지식인 검색 등을 활용해 정부정책을 홍보한 것”이라며 “메르스나 지진 등 긴급 사태 발생 시 이용자들이 관련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제대로 된 정보를 안내하기 위해 정부에서 구축한 사이트에 연결되도록 협조를 구한 적은 있다”고 해명했다.

포털에 정부가 특정한 기사나 콘텐츠를 올려라 내려라 지시하거나 협조를 구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 포털을 통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광범위한 ‘블랙리스트’를 관리했던 문체부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빅데이터 여론분석 시스템을 구축한 것 자체가 오해를 낳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문체부는 해당 시스템을 구축한 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여론조사 담당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이상일씨가 설립한 아젠다센터에 야간 온라인 여론분석 용역을 맡겼다. 아젠다센터는 이씨가 2015년 3월 만든 업체로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고 정치목적의 여론조사를 수행하기도 했다. 문체부는 2017년부터는 온라인 여론분석을 외부 용역업체에 맡기지 않고 자체 인력으로 진행하고 있다.

참여정부 국정홍보처에서 여론분석 작업을 했던 ㄷ씨는 청와대, 국정원과 유착 의혹이 있는 아젠다센터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온라인 용역을 맡았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국민여론을 살핀다는 차원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여론분석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국정원이나 민간 댓글부대들에 연결된 세력이 시스템을 사용했다면 공작적 의도로 악용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우리는 문체부가 구입한 민간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받아 SNS 여론동향을 분석했고 문체부 정책여론수렴 시스템은 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체부에 정책여론수렴 시스템을 쓰게 해달라고 했는데 해당 시스템은 공무원 인증서(GPKI)를 가지고 행정전산망에 연결된 컴퓨터로 들어가야만 사용할 수 있어 외부에서 접속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문체부 요청으로 해당 시스템을 개발한 다음소프트 반승욱 부사장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처음에는 행정전산망에 연결된 PC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 개발됐는데 나중에 이동 중에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와서 외부 PC나 휴대폰으로도 접속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변경했다”고 말했다.

또 해당 시스템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접속시간대만 표시하고 IP(컴퓨터 접속 주소)나 작업 과정은 로그파일에 남지 않게 했다. 외부에서 누군가 공무원 인증서와 아이디를 빌리거나 도용해 시스템에 접속한 후 공작적 목적으로 시스템을 이용해도 전혀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이다. 강장묵 남서울대 빅데이터산업보안학과 교수는 “국민의 세금으로 구축한 빅데이터 시스템을 사용해 누가 어디서 어떤 작업을 했는지 검증 방법이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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