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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묵은 영화 이제 개봉 “쪽팔린 거다, 우리”

2018.04.16 21:00 입력 2018.04.16 21:01 수정

세월호 다룬 영화 ‘눈꺼풀’ 오멸 감독

독립운동도 그때 해야 독립운동…많은 상징으로 주제 표현

목적이 정확해야 예술…세월호 영화 몇 편 더 만들고 싶어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영화 <눈꺼풀>로 돌아온 오멸 감독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재동의 한 카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영화 <눈꺼풀>로 돌아온 오멸 감독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재동의 한 카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영화였다. 이 영화를 틀면 감독이나 제작사가 문제가 아니라 ‘극장’에 피해가 간다는 얘기가 돌았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오멸 감독(47)의 <눈꺼풀>은 그렇게 3년간 잠들었다. 정권이 바뀌고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밝혀졌다. 오 감독 역시 리스트의 한 줄에 이름을 올린 채였다. 세상이 바뀐 것일까. <눈꺼풀>이 지난 12일 극장 개봉했다. 비록 약 20개관의 상영이 전부지만, 사람들은 얘기했다. “감독님, 2016년에 개봉했으면 더 피해를 입었을 테니, 차라리 지금 개봉하는 게 낫지 않아요?” 오 감독이 단호하게 말했다. “쪽 팔린 거다, 우리.”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재동의 한 카페에서 오 감독을 만났다. 몇 년을 기다린 영화의 개봉을 하루 앞두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엔 설렘보다는 부끄러움과 아쉬움의 감정이 엿보였다. 지난 3년간 <눈꺼풀>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언제나 동시대의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독립운동은 그때 해야 독립운동이지 후에는 무슨 의미인가. 부산 상영 이후 최종 개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괴감이 컸다. 예술가로서 창피한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에 너무 속상했다.”

영화는 죽은 자들이 마지막으로 들른다는 섬인 미륵도에 사는 노인에 관한 얘기다. 노인은 손수 절구에 쌀을 빻아 떡을 만들어 죽은 자들에게 전한다. 노인이 유일하게 세상과 통하는 라디오를 통해 어느 날, 세월호 사고 소식이 들려온다. 이후 젊은 선생님과 학생 두 명이 미륵도를 찾아온다. 노인은 이들에게 떡을 지어주려 한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쥐로 인해 절구가 깨지고 우물물도 썩고 만다.

영화엔 다수의 상징이 등장한다. 졸음을 쫓으려 눈꺼풀을 도려냈다는 달마대사의 이야기, 노인에게 걸려오는 수십 통의 전화, 그 전화를 휘감는 뱀, 짝이 맞지 않는 신발들, 검은 염소, 쥐, 분홍색 트렁크 등이다.

이 중 버리고 버려도 노인의 집으로 되돌아오는 ‘분홍색 트렁크’는 특히 영화의 큰 주제 의식과 맞닿아 있다. 오 감독은 “섬의 무미건조한 색상과 트렁크의 진분홍색은 크게 대비된다. 그 색에서 오는 욕심과 욕망 등을 담아보고 싶었다”며 “실제 영화엔 넣지 않았지만, 노인의 대사 중 ‘내가 지금 이걸 취하지 않지만, 마음이 머물렀다면 취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수행하는 노인이지만, 물질에 대한 욕망과 미련을 버리기는 힘들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사건에서 중요한 열쇠 역시 바로 물질에 대한 우리의 욕망이라 봤다”고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까지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세월호를 직접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많다. 특히 라디오에서 ‘세월호’가 언급될 때 그렇다. <눈꺼풀>은 홍보 단계부터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씻김굿 같은 영화’라고 알려졌다. 일부에선 이 같은 직접성이 영화의 예술성을 해치는 것 아니냐고 조언했다.

그는 “세월호라는 단어를 뺐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럼 영화가 더 예술적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는데, 그건 도피라고 생각했다”며 “사회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사실은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적이 정확하지 않은 예술은 허영이라 본다. 300년 후에도 이게 세월호와 관련된 영화라는 것을 관객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이날도 차기작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무슨 영화냐고 묻자 ‘세월호 관련’ 영화라고 했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몇 편 더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유가족이나 운동을 하는 분들만큼은 아니지만, 작가적 관점에서 세월호를 4년째 부여안고 있다. ‘언제까지냐’고 묻는다면 혁규군(당시 6세·세월호 미수습자)에 관한 얘기를 할 수 있을 때라고 말하고 싶다”며 “그 어린아이가 돌아오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지금도 매일 휴대폰에 저장된 혁규군의 사진을 본다. 혁규가 위로가 돼야 세월호가 풀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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