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만 포수는 아니다

2018.04.16 21:51 입력 2018.04.16 21:52 수정

[베이스볼 라운지]‘백두산’만 포수는 아니다

오랜 야구팬들에게 포수는 ‘백두산’이다. 혹은 ‘조봉구’다. 덩치가 산처럼 크다. 마스크를 쓰고 보호대를 가슴에 차면 큰 덩치가 더욱 커 보인다. 야구 만화 속 주인공 포수들이 대개 그랬다. 현실 야구의 포수들의 이미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프로야구 원년 스타 포수 이만수가 대표적이다. 별명이 헐크였다. 해태 왕조를 함께한 장채근도 커다란 덩치를 지녔다. 큰 덩치의 포수들은 우승의 순간, 만만치 않은 덩치의 투수들을 번쩍번쩍 들어올렸다.

덩치 큰 포수는 투수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꽉 찬 느낌으로 홈플레이트 뒤에 앉아 있으면 어떤 공도 뒤로 빠뜨릴 것 같지 않다. 투수가 편안하게 공을 던질 수 있게 돕는다. 큰 덩치로 홈런까지 펑펑 때려주면 더할 나위 없다. 이만수의 이미지는 만화 주인공들로 옮아갔고, 덩치 큰 포수 4번타자는 야구 만화의 ‘클리셰’가 됐다. 물론 현실 야구에서 포수 4번타자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포수는 꼭 덩치가 커야 할까.

류현진이 지난 11일 오클랜드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6이닝 동안 안타 1개만 내줬고,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삼진을 무려 8개나 잡아냈다. 루킹 삼진이 이 중 4개였다. 쳐다보기만 한 스트라이크가 수두룩했다. 20명의 타자를 만나 14번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1개만 파울이었고, 13개가 루킹 스트라이크였다. 오클랜드 타선은 좌완 류현진에 대비해 우타자 8명을 세웠다. 류현진은 우타자 바깥쪽 존을 공략했다. 백도어 커터가 기막히게 파고들었다. 주심의 손이 번쩍번쩍 올라갔다.

다저스 중계진은 류현진의 호투와 함께 이날 마스크를 쓴 오스틴 반스에 주목했다. 반스는 키 177.8㎝, 몸무게 86㎏의 포수다. 메이저리그에서 ‘덩치 작은 포수’다. KBO 기준으로도 그리 크다고 보기 어렵다.

덩치 작은 포수라고 단점만 있는 게 아니다. 되레 장점이 크다. 다저스 중계진은 “오스틴 반스의 덩치가 작기 때문에 심판의 눈에 공의 궤적이 잘 보인다”고 설명했다. 류현진의 우타자 바깥쪽 커터가 많은 스트라이크가 된 것은 반스의 작은 덩치가 주심의 시선을 가리지 않은 덕분이라는 해석이다.

SK 박경완 배터리 코치는 마무리 캠프 때부터 태블릿을 끼고 살았다. 이재원, 이성우 등 SK 포수들의 포구 장면을 촬영, 편집해서 태블릿에 담았다. 함께 보고, 고치고, 다시 찍고, 편집하고 함께 살펴보는 일이 반복됐다. 박 코치는 “예전에는 안되면 될 때까지 연습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해가 먼저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코치가 집중한 것은 “투수의 공을 가능한 한 팔을 쭉 뻗어 받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포수들의 포구 동작을 촬영해 편집했고, 이를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포구 동작을 세밀하게 조정했다. 박 코치는 “심판이 잘 볼 수 있는 곳에서 받는 게 프레이밍(스트라이크 선언을 더 많이 받게 하는 포구 기술)의 기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덩치가 큰 백두산만 포수는 아니다. 작은 덩치는 또 다른 곳에서 장점을 지닌다. 데릭 지터는 “야구가 매력적인 것은 크건 작건,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스트라이크 판정은 포수와 심판의 속고 속이기 기술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반스가 그랬고, 박경완 코치가 말했듯 좋은 판정은 오히려 솔직하고 투명한 포구에서 나온다. 심판 판정을 두고 KBO리그가 시끌시끌하다. 원칙과 불신 사이를 뚫고 나오는 길은 서로를 인정하는 솔직한 포구와 투명한 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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