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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생의 자기소개서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입력 : 2018.04.16 22:00:03 수정 : 2018.04.16 22:01:58

어느 대학생의 자기소개서

사람이 태어나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떤 나라, 어떤 시대,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우리는 선택할 수 없다. 나의 노력으로 선택할 수 없는 외부적이고 선천적인 요인들로 인해 우리 삶의 큰 줄기가 결정된다. 매 학기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에게 ‘역사 속의 나’라는 주제로 자기소개서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이것이 과제가 아니라 부탁인 이유는 나와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이자 누군가의 삶에 점수를 매길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과제가 아니기에 학생 대부분은 자신의 생애를 투박하지만 정직하게 반추한 짤막한 글을 제출한다. 나는 그들의 삶을 하나씩 읽고 이들을 학번 대신 존재로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힘겨웠을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생각한다.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 대부분은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 태어났다. 어떤 학생은 국가 경제 붕괴로 가족이 해체되는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서 배 속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의 빛을 보게 해준 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적었다. 누군가는 부채 때문에 갈라선 부모 이야기를, 또 누군가는 어린 시절 뇌리에 박힌 압류 딱지의 기억을 토로한다. 이들에게 외환위기가 경제적 고민을 상징한다면,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은 역사와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든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생애사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기억되는 사건은 2014년 4월16일에 겪은 세월호 참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들을 ‘세월호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나는 한 부모당 한두 명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마음껏 풍요를 누리며 자랐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들에게는 검소함과 경제감각이 몸에 깊숙이 배어 있었다. 그중 한 학생은 자신의 짧은 생애를 ‘알바’라 부르는 비정규직 시간제 노동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그가 자신의 시간을 최초로 팔 수 있었던 곳은 유명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안산의 작은 부품 공장이었다. 2013년 당시 최저시급이 4860원이었는데, 이보다 140원을 더 쳐주어 시간당 5000원을 받았다. 함께 일하는 외국인 이주 여성은 그보다 못한 시급이었지만, 해고당할까봐 최저임금제도에 대해 제대로 알려줄 수 없었다. 2013년 그는 비굴함을 배웠다고 적었다.

2014년 모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뷔페식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최저시급은 350원 올라 5210원이었지만, 3개월 수습 기간 동안 자체규정이란 명목으로 최저시급에서 500원을 떼어 시급 4710원으로 계산되었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외모를 단정하게 하려고 15분 일찍 출근해야 했지만, 출근 등록 지문만은 정시에 찍도록 했다. 복장 규정에 따라 검은색 구두, 립스틱, 머리망이 필요했지만, 자비로 샀다. 3년이 지나 미지급된 임금이라며 30만원이 입금되었다. 누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당한 업무규정에 맞서 투쟁한 결과였다. 2016년 최저임금은 6030원이었지만, 동네 편의점 사장은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시급 5000원을 제시했고,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그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대한민국 주정뱅이 아저씨들의 취미가 여자 알바생 괴롭히기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물주란 사람은 자신과 데이트해주면 대학 졸업까지 시켜준다는 제안을 건네기도 했다.

2017년의 최저시급은 6470원이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평일엔 호프집, 주말엔 약국에서 알바를 했고, 성실함을 눈여겨본 교수가 일감을 주어 한 주에 3가지 일을 하기도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 몸이 붓고, 피곤하여 좋아하는 책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학생이지만 강의시간엔 졸고, 일터에선 억지로 웃으며 버텨야 했다. 2018년 올해 최저시급은 7530원이다. 세월호 사건 이전과 세월호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고, 변했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4년, 대한민국은 변했는가? 살아남은 세월호의 아이들은 여전히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힘겨운 분투를 이어가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야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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