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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2018.04.16 22:03 입력 2018.04.16 22:05 수정

[이굴기의 꽃산 꽃글]개나리

네모난 유리식탁에서 1식3찬의 아침을 받는다. 보리를 섞은 쌀밥, 된장을 푼 쑥국에 무깍두기, 머위나물 그리고 고등어 한 토막. 보름달 같은 접시에 골고루 담긴 것들의 이름을 전혀 모르고 먹는다면,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 혀가 제대로 맛을 알겠는가. 매일 반복되는 이 행위를 거룩한 식사(食事)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젓가락 왕복운동과 어금니 저작운동이 연속되는 행동(行動)에 불과하지 않을까.

며칠 전 한식이라 고향으로 향했다. 대진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무주에서 내려 국도로 접어드니 느낌이 달라진다. 벚나무 가로수가 내 속도에 맞추어 다투어 피어나는 건 아닐 테지만 구천동 지나 덕유산 빼재터널을 지나면서 거창으로 가까워질수록 꽃들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아예 꽃터널인 곳도 있다. 벚꽃구경 하겠다고 여의도 갈 게 아니네요! 큰형수님이 한마디 던지는데 벌써 오무마을 동청이다. 농사가 아직 본격 시작되기 전이라 조금 여유가 느껴지는 시골내음을 흠씬 들이마셨다. 사과향도 조금 섞인 듯 달콤한 벚나무 꽃공기!

비 부슬부슬 내릴 때의 산소는 그 어딘가로 연결되는 장소이다. 무덤은 식물과 곤충들에게도 명당이다. 그늘 하나 없고 통풍과 배수가 잘된다. 또한 물은 이렇게 직방으로 들이쳐 공급된다. 양지꽃, 민들레가 잔디 사이에 숨어 있다. 두리번거려 보지만 아쉽게도 할미꽃은 없다. 그간 잘 계셨나요? 어머니 보내신 고들빼기, 뽀리뱅이가 무덤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아버지 따라주시는 첨잔인가. 음복하는 제주(祭酒)에 빗물이 섞인다. 두 해 전 꽂아둔 개나리가 이제는 대가족이 되었다. 눈으로 왕창 들어오는 노란 개나리.

외가로 가는 길에 폐교된 지 오래된 허전한 공터에 잠깐 차를 세웠다. 부산으로 전학 가기 전 3학년까지 다닌 곳이다. 우람했던 플라타너스는 그루터기만 남았다. 운동장에서 반짝거리던 모래들은 힘을 잃었다. 겨우 발등 높이의 풀이 심심하게 놀고 있다. 애기똥풀, 뚝새풀, 고깔제비꽃. 학교는 없어져도 이름은 남는다. 완대초등학교. 돌담 바깥으로 축축 늘어져 텅 빈 완행버스를 물끄러미 배웅하는 개나리, 개나리, 노오란 개나리.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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