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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참정권을 허하라

2018.04.16 22:08 입력 2018.04.16 22:09 수정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의 빛나는 명문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의미를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땅의 현실은 법문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

[직설]청소년 참정권을 허하라

민주주의는 과정이다. 이를 협의로 구현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조차도 지난한 변태와 확장의 과정을 달려오고 있다. 1987년 직선제 쟁취 이후 30년. 대한민국 국민은 스스로의 손으로 선출했던 무능한 지도자를 광장의 정치를 통해 끌어내렸다. 역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여전히 정치는 엉망진창이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것인지, 아득하고 또 숨이 가쁘다.

그러나 달려갈 곳이 있다는 이 숨가쁨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한편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주권자의 의미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민주주의는 과정이라 할 만하다. 대의제 민주주의 초창기 ‘1인 1표’의 원칙에서 그 ‘1인’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르주아 백인 남성에 국한되어 있었다. 주권재민의 원칙을 실천할 수 있는 국민의 의미가 계급과 인종, 성별에 의해 제한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그들에게 국한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오직 그들만이 ‘인간’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가장 협소하게 민주주의가 실천되던 시대에 목숨을 건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 그 ‘인간’의 경계를 확장시켜온 것이 노동자 투쟁, 페미니즘, 흑인 민권운동, 그리고 제3세계의 독립운동 등이었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과정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역사 굽이굽이마다의 사건을 우리는 ‘혁명’이라고 부른다.

세월호 4주기를 맞이하는 2018년 4월16일의 아침. 또 하나의 혁명이 이 땅에서 진행되고 있다. 나이라는 허구적 기준을 철폐하려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2018년 3월22일, 국회 앞. 청소년들이 18세 선거권 보장을 주장하면서 삭발 기자회견을 열고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기자회견에서 청소년들은 “참정권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정치뿐만 아니라 일터, 학교, 가정 등 모든 사회 구성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존중받고 독립된 인격체로 살아가기 위해 참정권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 싸움의 의미를 세월호 4주기와 연결하여 함께 생각해 보자고 요청하는 것은, 사회의 주체적인 구성원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으로만 존재할 때 청소년들은 역설적으로 계속해서 열악한 삶의 조건과 위험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험사회’를 살고 있다. 울리히 벡에 따르면 현대인은 문명이 초래하는 위험을 전혀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같은 인재는 위험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회에서 위험은 평등하게 닥쳐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험은 권력과 자원이 분배되는 위계와 질서에 따라 분배된다. 한국 사회의 대형 참사에서 유독 10대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피해자가 많은 이유를 숙고하게 되는 이유다. 우리는 다시 한번 평등하지 않다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안전은 동등한 시민권의 다른 말이기도 한 셈이다.

청소년 참정권은 청소년들이 이 사회에서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정치적 조건 중의 하나다. 물론 역사적으로 참정권 운동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동등한 권리의 획득만으로 갑자기 청소년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들은 100년 전에 참정권을 쟁취했지만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서 동등한 권리의 획득은 그 과정 자체로 이미 의미가 있다.

청소년 참정권이라는 혁명이 하나의 결실을 맺을 때, 우리는 또 한번 민주주의가 힘겹게 스스로의 경계를 밀어내고 조금 더 커진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확장된 민주주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비청소년들에게도 더 넓은 세계를 열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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