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울어예는

2018.04.16 22:11 입력 2018.04.16 22:16 수정
박민규 | 소설가

[박민규 칼럼]기레기 울어예는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언젠가 이 나라가 망한다면 나는 그 이유가 언론 때문일 거라 확신한다. 당연히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이 나라가 망한다면 그 과정은 커다란 배가 침몰하는 풍경과 흡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침몰하던 그 배의 마지막 언론… 그러니까 선내 안내방송을 우리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고 이후 나는 이 나라의 언론을 눈곱만큼도 믿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기레기’라는 명사는 그때 한국 언론이 보여준 비굴함과 역겨움의 마땅한 부산물이자, 역사적 기록이다.

[박민규 칼럼]기레기 울어예는

명사의 탄생이 늦었을 뿐 기레기들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아니, 애초부터 한국의 언론은 왜곡되고 뒤틀린 현대사의 공범이자 앞잡이였다. 국가수반이 야반도주하고 한강인도교를 폭파해버린 1950년 서울에는 ‘안심하고 민생에 전념하라’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고, 1980년 광주에서 학살이 자행되던 그 순간에도 언론은 침묵했다. 숱한 간첩조작사건은 정부의 지침 그대로 발표되었고 진짜 기자, 진짜 언론인들은 해직되어 투옥을 당하거나 고문당하고… 거리로 내몰렸다. 언론은 없었다. 애초부터 이 나라는 권력과 돈의 잡새 철새 기레기들의 서식지였다. 허문도라는 이름도 떠오른다. 언론통폐합이란 전대미문의 언론학살극도 그래서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른다. 비굴한 것들이 살아남아 예컨대 ‘땡전 뉴스’ 같은 걸 만들었다. 매일 만들었다. 하도 열심히 만들어서 또 예컨대 ‘참 잘했어요’ 같은 소릴 들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마에 콩콩 도장도 받았을 것이다. 진급을 하고 상전이 되면서 그 비굴한 것들이 또 자신의 하수인을 키웠을 것이다. 족보도 생기고 파벌도 생겼을 것이다. 비굴한 것들이 또 동기간 정은 많아 서로의 치부와 약점은 절대로 들추지 아니했다. 누가 떠들면 매장하고 여론을 갖고 노는 게 일도 아니었다. 보수연 진보연 해대며 정적(政敵)은 있어도 언론의 적은 없어 이보다 좋은 장사가 세상에 없어보였다. 그래서 그, 비굴한 것들이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지게 된 상황… 나는 이것이 대한민국의 언론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결코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다. 오랜 세월 정경과 유착하여 만들어 온 대한민국, 자체가 그들의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44년 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외쳤던 동아투위 해직언론인들의 삶은, 그래서 마치 해방 후 이 땅에 남은 독립운동가들의 고단한 삶과 닮아 있다. 끝내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113명의 언론인들은 결국 복직하지 못했고, 투옥과 고문후유증, 생활고 등에 시달리며 빛나는, 그러나 쓸쓸한 생을 마감 중이다. 언젠가 동아투위의 중심이셨던 성유보 선생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작고하시기 얼마 전이었으므로 내겐 마치 유언과도 같은 인터뷰였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겠지만 ‘독재가 스스로 물러가지 않듯, 언론도 절대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오직 깨어 있는 시민의 힘만이 이를 바꿀 수 있다’고도 말했다.

40년이 지나도록 끝내 복직하지 못한 진짜 기자의 이 말은,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을 우리에게 일러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겨우 정권을 바꿨을 뿐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임기 5년의 대통령을 우리는 얻었을 뿐, 기레기 울어예는 하늘이 구만리다.

별 희한한 일들이 다 있을 것이다. 늘 그랬듯 갑자기 큰 이슈들은 사라지고 느닷없는 프레임이 뉴스를 지배한다거나, 죽기 직전 노망난 늙은이의 벽에 똥칠 같은 뉴스들도 보게 될지 모르겠다. 10년의 모진 세월을 보내면서, 하지만 시민들도 너무 많은 경험치를 쌓아버렸다.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건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건 맘대로 해라. 그 하늘이 장장 구만리라 해도 어느날 어느 순간, 이제 시민들이 기레기 전원을 구조했다는 오보를 트윗으로 날려주겠다. 11시까지 잠 푹 자고 일어나 날려주겠다. 다시 4월의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제 누구도 언론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언론을 찾고, 판단하고, 구할 것이다. 이들이 찾은 언론만이 언론이 될 것이고 뭐, 그게 아니라도 전원 구조 되겠지 뭐.

사실 기레기는 성립될 수 없는 명사이다. 기자라는 명사는 기레기와 가장 거리가 먼 위대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보다 진실을 말하자면 기자의 가장 큰 적이 기레기였고, 기레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기자들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1980년 신군부가 언론통폐합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이비 기자 척결’이었다.

어쩌면 지금 가장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기레기 언론 환경 속에서 끝끝내 자신의 펜을 지키고 있는 진짜 기자들일 것이다. 기레기란 말에 상처받을 기레기들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간 오직 기자들만이 기레기란 말에 상처받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이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지지해주는 것까지가 성유보 선생이 말한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힘과, 진짜 기자들의 힘이 만나는 그 순간이 이 나라의 언론이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 힘들더라도 그 길을 가야만 한다. 그것이 44년 전 우리가 단 한 사람도 지켜주지 못했던 113명의 언론인들에 대한 역사적 보답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비로소 우리의 언론을 가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판단하기 바란다.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그리고 식별하기 바란다. 누가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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