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 이끌어내고, 정권까지 갈아치운 ‘낙태 이슈’

2018.04.16 22:40 입력 2018.04.16 22:47 수정

아일랜드 ‘낙태 금지’ 헌법 내달 25일 폐지 여부 판가름

코스타리카·시에라리온 등 대선 좌우하는 쟁점 떠올라

<b>아르헨 여성들 “낙태 허용 법안 만들라”</b> 아르헨티나 여성들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회의사당 앞에서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 로이터연합뉴스

아르헨 여성들 “낙태 허용 법안 만들라” 아르헨티나 여성들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회의사당 앞에서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 로이터연합뉴스

다음달 25일 아일랜드에선 낙태 허용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산모와 태아의 생명에 대한 권리는 동등하다”고 규정해 거의 예외 없이 임신 중절을 금지시킨 수정헌법 제8조의 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다. 낙태 허용으로 결론이 나면 아일랜드 여성들은 임신 12주까지 조건 없이 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는 2012년까지 모든 임신 중절 수술은 범죄였다. 성폭행에 의한 임신이나 산모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도 예외가 없었다. 현재 다소 완화됐다지만 현행법은 불법 임신 중절에 대해 최고 14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아일랜드의 낙태금지법을 두고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며 굴욕적’이라고 표현했다.

■ “내 몸은 내가 선택해야”

여성의 임신을 중단할 권리에 대한 논란과 변화 요구는 전 세계적 현상이 되고 있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폴란드도 낙태 이슈로 시끌시끌하다.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집권당 법과정의당(PiS)이 최근 낙태의 전면 금지를 추진하면서다. 현행법은 산모 생명이 위협받거나 강간 등에 따른 원치 않은 임신일 때만 낙태를 허용한다. 정부가 이 예외마저 없애려고 하자 지난달 시민 수천명이 바르샤바에서 “내 몸은 내가 선택한다” 등 구호를 외치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유럽연합(EU)은 이 낙태 강화 법안이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폴란드 정부에 경고했다.

독일도 이른바 ‘낙태 광고 금지법’으로 홍역을 치렀다. 독일은 임신 초기인 12주까지 낙태를 허용하지만, 이에 대한 광고는 범죄로 규정한다.

최근 논란은 ‘낙태는 합법, 광고는 불법’인 모순에서 나왔다. 지난해 11월 한 산부인과 의사가 낙태 수술 정보를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벌금 6000유로(약 780만원)를 선고받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4기 임기를 시작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변화는 느리지만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가톨릭 국가가 많아 여성의 낙태권을 엄격하게 제한해 온 중남미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8월 칠레 헌법재판소는 예외적 경우에 한해 부분적 낙태를 허용했다. 성폭행에 의한 임신이거나 산모 생명이 위험한 때, 태아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 등이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는 지난해 1월 주헌법을 제정하며 여성의 낙태권을 포함시켰으며, 최근 아르헨티나 의회도 낙태 합법화 법안을 두고 논의를 시작했다.

국민투표 이끌어내고, 정권까지 갈아치운 ‘낙태 이슈’

■ 대선 핵심 이슈로도 부각

낙태 이슈는 선거판을 좌우하는 주요 정치 이슈가 되기도 한다. 최근 치러진 중남미 코스타리카 대선이 이런 사례다. 지난 1일 결선투표에서 낙태 허용은 동성결혼 합법화와 함께 최대 쟁점이었다. 낙태와 동성혼 합법화를 약속한 중도좌파 시민행동당(PAC)의 카를로스 케사다 후보(38)가 60% 넘게 득표하며 차기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난달 실시된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대선에서도 낙태가 주요 이슈였다. 낙태 허용 법안 통과를 두 차례 좌절시키고, 임신한 학생들이 학교에 못 다니게 하는 등 여성 인권을 탄압한 어니스트 바이 코로마 전 대통령에 대한 반발심이 10년 만의 정권교체로 이어졌다고 현지 여성운동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샤릴 셰티 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최근 가디언에 “낙태 범죄화는 여성에 대한 극단적 형태의 폭력”이라고 말했다. 법적 제한이 낙태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여성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생식 건강을 연구하는 미국 쿠트마허연구소의 최근 보고서도 “낙태가 합법인 국가일수록 낙태율 감소가 뚜렷하다”며 “낙태 반대는 피임 등 여성 권리에 대한 반대를 동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