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4·27 합의문 간단명료해야”

2018.04.16 23:42 입력 2018.04.17 16:41 수정

정상회담 릴레이 인터뷰 ② 박재규 경남대 총장

“최고 책임자들, 비핵화와 북·미수교 직접 다루는 게 가장 큰 의의”

박재규 경남대 총장이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박재규 경남대 총장이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박재규 경남대 총장(74·사진)은 오는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토론은 치열하게 하되 합의 문건은 간단명료해야 한다”면서 “(정상회담 합의 문건에) 비핵화와 평화정착 문제에 대해 재론의 여지가 없도록 명확한 표현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2000년 통일부 장관으로 6·15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는 등 회담에 깊숙하게 관여했다.

박 총장은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박 총장은 “정상 간 핫라인 구축까지 합의되었기 때문에 상시 정상회담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므로 한번에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협상 스타일과 관련해 “상대방의 입장을 수용하거나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탈권위적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협상의 주도권 잡기 위해
애썼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탈권위적 모습

박재규 경남대 총장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과거 정상회담에 비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사안을 직접 다룬다는 점이 가장 큰 의의”라고 평가했다. 박 총장은 “연이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북·미수교 문제 등을 직접 논의한다는 점도 과거와 다른 점”이라고 덧붙였다.

박 총장은 북한 비핵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를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미 간) 핵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경우 남북관계마저 유지되지 않는다면 한반도 정세는 다시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박 총장과의 일문일답.

-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된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체제보장을 가장 큰 요인으로 본다. 북한은 1990년 서독의 동독 흡수통일을 목격하면서 핵개발을 시작해 27년 만인 지난해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했으나 경제정책은 실패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제적 제재, 외교적 압박, 군사적 억지 등이 강화되면서 체제 생존이 임박한 문제로 대두했다. 또한 도발과 공포정치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정상적 국가의 비정상적인 지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체제보장하에 경제난을 극복하면서 정상국가의 정상적인 지도자로 나아가기 위해 선대의 유훈을 명분으로 비핵화라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 4·27 남북정상회담 의의를 과거 남북정상회담과 비교한다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남북한 화해·협력의 물꼬를 텄다면, 2007년 정상회담은 평화번영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보수정부를 지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상황이 악화됐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핵심적이고 복잡한 문제들을 남북한 최고 책임자들이 직접 결정한다는 점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북·미수교 문제 등을 직접 논의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협상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협상 관점에서 보자면 김정일 위원장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본질과는 무관하고 예상치 못한 의제 또는 내용을 돌연 제기해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다가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없었던 것으로 하고, 잘 안되면 이를 다시 제기해 상대방을 불안하게 함으로써 회담을 주도하려는 양상을 자주 보였다. 2000년 정상회담 당시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일부 대학가의 인공기 게양 사건에 대한 남한 당국 조치에 불만을 나타내며 회담을 잠시 중단했다. 자신의 결단과 양보를 강조하면서 최고 권력자 위상을 보여주려는 권위적 태도로 회담을 운영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를 비롯한 서방국가와 직접 협상 경험이 없기 때문에 평가는 아직 이르다. 다만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과정, 우리 특사단과의 만남, 북·중 정상회담 등을 보면 상대방의 입장을 수용하거나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탈권위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정부는 회담의 주요 의제인 비핵화와 평화정착, 남북관계 발전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먼저 치밀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북한을 설득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의지를 보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핵 이외 재래식 군사력과 관련된 군사적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 군비통제 등 상호 적대관계 해소 조치들도 논의해야 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단계적 조치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의 길라잡이 성격도 있기 때문에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에 비핵화에 대한 미국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정상회담 후에는 체제보장에 대한 북한 입장을 미국에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와 함께 남북관계 발전 로드맵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

- 정부가 경계해야 할 부분은.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되새겨야 한다. 토론은 치열하게 하되 합의문건은 간단명료해야 한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의 통일방안 공통성 문제와 적절한 시기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 문제, 2007년 10·4 선언에서 3자 또는 4자의 종전선언 문제와 같이 모호한 표현은 차후에 논쟁을 유발시킬 뿐이다. 따라서 비핵화와 평화정착 문제는 재론의 여지가 없도록 명확한 표현이 들어가야 한다. 또한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정상 간 핫라인 구축까지 합의됐기 때문에 상시 정상회담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한번에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

- 북한이 비핵화 조건으로 언급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라고 보나.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체제보장은, 첫째로 자주권을 인정하고, 둘째로 불가침을 약속하고, 셋째로 경제발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조건이 갖춰진다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할 수 있고 미국이 핵불사용을 포함한 불가침을 법적으로 확약한다면 비핵화할 용의가 있음을 수차례 밝힌 것으로 안다. 구체적으로는 대화교류, 경제제재 완화, 군사적 신뢰구축, 종전선언, 불가침 협정, 남북기본협정 등이 있고 나아가 평화협정, 관계정상화, 군비통제, 경제제재 해제 등을 들 수 있다.”

북·미 협상 난관 봉착 때
양측 중재할 수 있도록
남북관계 유지 노력해야

- 김정은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밝힌 비핵화의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두고 북한이 대화 테이블을 마련한 다음 시간끌기 전술로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오면서 기존에 국제사회와 약속했던 비핵화를 지키지 못했고, 이로 인해 큰 불신을 받아 왔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최고 책임자가 직접 비핵화 가능성을 언급하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까지 제안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한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지난 북핵 문제 역사를 돌이켜보면 비핵화에 관해 큰 틀의 합의는 단번에 하더라도 신고하고, 사찰하고, 검증하는 이행과정은 단계적으로 긴 시간이 소요된다. 북한은 단계적 폐기 수준을 밟아가면서 이에 상응해 체제 보장 조치도 단계적·동시적으로 해나가자는 것이다. 물론 이행 과정이 길어져서 동력이 떨어지면 과거와 같이 북한에 시간만 벌어줄 수 있다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우리가 당사자이자 중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 비핵화 이행 과정에서 남한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남북관계 진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핵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경우 남북관계마저 유지되지 않는다면 한반도 정세는 다시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우리가 남북관계를 유지·발전시키고 있어야 북·미 간에 어려운 일이 생겨도 양측을 중재할 수 있다. 중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듯한 인상을 양쪽에 주지 않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조급증을 버리고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냉랭했다.

“분단 및 6·25 전쟁 이후 남북한 사이에 적대감과 불신이 지속됐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남북관계 단절로 상호불신과 대립이 강화되고,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추진 등으로 인해 한반도 위기 고조 국면이 상시화되면서 대북 인식에서 피로가 누적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에서 한반도 평화정착,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 등이 큰 틀에서 약속되고 이것이 현실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남북 및 북·미 간 신뢰가 공고화되는 등 큰 방향이 전환되면 국민들의 대북 인식도 많이 바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야, 보수·진보가 진지한 협력을 통해 남남갈등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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