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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성의 자리 - 임원 옆에 ‘여직원 배치도’···동료의 자리는 없었다

입력 : 2018.04.17 06:00:03 수정 : 2018.04.17 10:21:23

(1)여성의 자리 - 임원 옆에 ‘여직원 배치도’···동료의 자리는 없었다

여성, 차별적 지위를 거부하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가 여전히 유행하던 1988년. 김지은씨(30·가명)가 태어난 해다. 김지은씨에게는 오빠가 있었다. 아들딸 구별 없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했지만, 김지은씨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빠의 밥을 차리고 학원에 갔다. 명절에 큰집에 가면 오빠가 사촌오빠들과 어울려 노는 사이 팔을 걷어붙이고 부엌에 들어가 큰엄마와 엄마를 도왔다. 아들딸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집이 싫어서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여자라 차별받는다는 것을 다시 자각한 것은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다. 취준생들은 ‘여자 티오’ ‘남자 티오’가 따로 있다는 것을 다 안다. 김지은씨는 제조업·건설업 분야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쪽 회사들이 남자 10명을 뽑을 때 여자는 한두명만 뽑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한 건설회사 인사담당자와 취업상담을 하면서 “이 직군에 여자도 뽑느냐”고 물어봤다. 담당자가 웃으며 말했다. “여자는 사실 거의 안 뽑아요.” 돌아오며 생각했다. ‘남자라는 것이 큰 무기구나.’

대형병원 행정직 면접을 보러 갔을 때였다. 전원이 남자였던 면접관 여러명 앞에서 혼자 면접을 봤다. 한 면접관이 물었다. “직장에서 상사가 성추행이나 성희롱 같은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김지은씨는 대답했다. “그 상사에게 어떤 의도였는지 물어보겠습니다.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할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면 대화로 잘 해결하겠습니다.”

매끄럽게 대답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왜 저런 질문을 하지? 이 회사에서 그런 일들이 있었던 걸까? 성차별이나 성폭력도 참을 수 있어야 일하게 해주겠다는 뜻일까? 면접관이 다시 물었다. “대화가 안되면 외부에 말할 겁니까?” 더 이상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얼마 뒤 불합격 통보가 날아왔다.

김지은씨는 그 뒤 제조업 분야 대기업에 입사했다. 입사 동기 60명 중 6명이 여자였다. 열명 중 한명. 선배들은 “그래도 너희 기수는 여자가 많은 편”이라고 했다.

일도 잘하고 고과도 괜찮던 여자 동료가 있었다. 팀 임원은 그 동료를 마주칠 때마다 “여자가 왜 이 팀에 있느냐” “여자가 여기서 뭘 하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김지은씨는 그런 얘기를 전해 들을 들을 때마다 ‘이들은 나를 같이 일하는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 88년생 김지은의 남초직장 생존기

그 동료의 팀엔 반년 늦게 들어온 남자 후배가 있었다. 둘은 나란히 승진대상에 올랐다. 하필 여자 동료가 임신을 한 사실이 알려졌고, 인사고과는 ‘평범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승진에서 누락됐다. 평소 고과가 좋지 않았던 남자 후배는 마지막 고과에서 최상급 점수를 받고 승진했다. 출산을 한 동료는 지난 2월 복귀하려 했지만, 팀에서 복직을 미루라는 지시를 받아 7월까지 육아휴직을 할 예정이다. 7월에 돌아가면 ‘근무기간 부족’으로 올해 승진대상에서도 누락될 게 분명하다. 공장에서 밤 11~12시까지 일했던 여자 동기도 승진을 하지 못했다. 여직원은 늘 남직원들 아래였다. 다과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여사원이 없으면 남자 후배들이 몇이 있든 여성 직원이 커피를 타야 했다.

회사 안에서 어디로 눈을 돌려도 관리자급 여자 선배는 드물었다. 부장급 단 한 명, 차장급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모두의 눈에 띄게 성과가 나는 업무가 있고,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나는 업무가 있다. 여성들에게는 성과가 나는 업무를 맡기지 않았다. 이목이 쏠리는 일은 남자들의 몫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포기하는 것이 늘어갔다. 김지은씨는 영업 업무를 해보고 싶어서 영업 파트의 남자 동기에게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동기는 “우리 회사는 절대 여자에게 업체를 상대하는 일을 시키지 않는다”고 만류했다.

영업 파트는 업체를 상대해 물건을 팔아야 성과가 나온다. 여성은 업체 목록을 관리하거나 행정처리만 맡아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마음을 접었다. 이런 회사를 왜 다니는지 알 수 없었다. 화가 나는 날이 늘었지만 털어놓을 여자 선배도 없었다.

■ “노력하면 바뀔 줄 알았는데”

여직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자리는 임원들이 참석한 회식이었다. 임원이 회식을 하자고 하면 관리자는 ‘참석할 여직원’을 소집하고, 임원 옆자리에 여성을 앉힌 자리배치도를 짠다. 회식 장소에 들어가면 팀장이 여자 후배를 끌어다 임원 옆자리에 앉힌다. 술은 여자가 따라야 맛있다는 이야기, 여자가 나오는 술집에 갔던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여직원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척했다.

평소처럼 임원 옆자리에 앉았던 어느 회식날, 임원이 회식 중간에 갑자기 손을 잡았다. 뿌리칠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 장면을 봤지만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문제 제기를 하면 나만 ‘유별난 미친년’이 되리라는 것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김지은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차로 노래방에 가면 남자 상사들이 춤을 추자며 여직원들 손을 잡아끈다. 상사를 피해 춤을 추는 척하며 뛰어다닌 날도 있었다.

이런 일이 싫어서 회식에 가지 않으려 하면 “여자들은 역시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말이 돌아온다. 어떤 상사는 여자들끼리 뭉쳐다니지 말라고 언짢은 듯 말했다. 추행을 피해다닌 것뿐이었는데.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지는 않았다. 지난해 한 워크숍에서였다. 한 팀장이 여성 직원들에게 ‘차마 표현하기도 싫은 짓’을 시켰다. 여성들이 따로 다른 방에 모였고, 팀장이 화를 내며 불렀지만 가지 않았다. 몇몇 직원들이 인사팀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 팀장은 보직에서 물러났지만 징계는 받지 않았고 지금도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그게 성추행이냐며, 여자들은 너무 민감하다며 남직원들이 뒤에서 수군거렸다. 그냥 모른 척하고, 그런 상황을 최대한 피해가며 사는 것이 그곳에서 김지은씨가 터득한 방법이었다.

대놓고 저항하지 않고, 남자들보다 더 일을 잘하고 더 노력하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김지은씨는 자신이 노력한다고 해서 뿌리 깊이 박힌 구태와 악습이 바뀌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회사에서 살아남기를 포기했다.

그는 결국 모두가 선망하던 대기업을 떠나 중견 기업으로 이직했다. 연봉이 많이 깎였다. 그래도 새 회사에는 여성 직원이 절반이다. 상사가 마실 커피는 상사가 탄다. 회식이 없으니 자리를 정할 일도 없다. 미투 운동을 보면서 그는 결국 떼밀리듯 떠나온 그 회사에 다니던 시절을 떠올린다. 우리 사회에는 생각보다 성차별이 심한 곳이 많고, 사람들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른다.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성차별과 성폭력은 잘못이며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최소한의 인식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 ‘배운 여자들’, 일터로 가다

성폭력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피해의 빈도나 강도가 점점 세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예전엔 더 심했지만 너희들 여자 선배들은 참았다”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왜 갑자기 유행처럼 고발하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말처럼, ‘왜 지금’ 터져나온 것일까.

왜 지금인지 알려면 한국에서 여성이 지금 어느 위치에 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여성의 지위는 지난 30여년간 크게 달라졌다. 선거에서, 출판시장에서, 여성의 정치적·문화적 영향력은 남성과 비슷해졌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일자리에서는? ‘개발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노동시장의 구조와 기업조직의 기본 틀은 여전히 그대로다. 이제 여성들은 “과거에 만들어진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일하는 여성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여성 고용률은 2015년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30년 전인 1985년 40.9%에서 10%포인트 올랐다.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라, 여성들이 하는 일의 양상도 달라졌다. 1980년에 일을 하는 여성의 81.7%는 중졸 이하였다. 전문대 이상을 나온 노동자는 2.6%에 불과했다. 반면 2017년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중 중졸 이하는 19.3%이고 전문대졸 이상이 42.6%다. 여성들도 교육에 에너지와 돈을 많이 투자했고, 일을 하고 먹고사는 걸 당연하게 여길 뿐 아니라 ‘당연히 일을 해야 하는’ 사회가 됐다.

여성이 종사하는 직종도 달라졌다.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던 1955년에는 일하는 여성 10명 중 9명이 농수산업에 종사했다. 경공업 중심으로 공업화가 진행된 1975년에는 ‘여공’이라 불렸던 생산직 노동자가 전체 여성 노동자의 16.2%로 늘어났다. 2017년 여성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직업은 보건이나 사회복지, 교육, 금융 등을 통틀어 분류한 ‘전문가 및 관련종사자’다. 사무종사자, 서비스종사자가 뒤를 잇는다. ‘남자만 있는 직장’이나 ‘여자만 있는 직장’은 과거보다 줄었다. 일터에서 남녀가 섞여 일하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됐다.

김지은씨 같은 여성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좋은 일자리를 잡는 것이 당연한, 바로 그런 시대에 태어나 자랐다. 아직도 남아 있는 차별에 마음이 상했을지언정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을 갖는’ 미래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세상은 달라졌고 여성들이 일하는 걸 뭐라 하는 분위기는 없어졌다. 멀쩡하게 대학을 나와서도 일할 생각을 않는 딸들이 오히려 부모들의 타박을 받는 시대다. 하지만 남성 중심으로 짜여진 사회구조와 문화는 바뀌지 않았다.

2014년 9월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여성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유모차를 끌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2016년 1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한 여학생들이 청와대 부근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가운데). 지난달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출 것을 요구하며 10대 청소년들이 삭발식을 했다. 서성일·이준헌 기자 centing@kyunghyang.com

2014년 9월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여성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유모차를 끌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2016년 1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한 여학생들이 청와대 부근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가운데). 지난달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출 것을 요구하며 10대 청소년들이 삭발식을 했다. 서성일·이준헌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취직했지만 승진은 못한다

‘절반이 되면 바뀐다’고들 했다. 여성이 한 집단의 절반이 되면 자연스레 남녀 모두의 감수성이 조직에 녹아들고, 가치관이 서서히 바뀌어 나갈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믿었다. 그러나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속도에 비해, 집단의 구성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조직 구조와 문화가 변화하는 속도는 너무나 느리다. 그 갭 속에서 미투 운동이 터져나왔다.

업무시간과 승진제도, 보상체계, 직장문화 등 일터에서 만나는 모든 제도와 문화들은 여성이 활발하게 노동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짜였다. 여성이 일하는 것이 예외적인 일이 아닌데도 아이는 엄마가 챙겨야 한다. 남녀의 법적 권리가 ‘완전한 평등’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지만 회사에선 다르다. 여성은 아이 때문에 일을 쉴 수 있지만 남자는 그래선 안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삶과 일의 균형’이 직장인들의 꿈이 됐지만 현실은 다르게 작동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것은 차별이자 모순이다. 대개는 여성들에게 불가해한 모순으로 다가온다.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한 남성 동료들의 삶이 하나도 바뀌지 않는 동안, 자신만 업무에서 밀려나는 것을 발견한 여성들은 당혹스러워진다. 변호사인 신모씨(31)는 2년 전 아이를 낳은 뒤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내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는데, 같은 변호사인 남편의 삶은 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신씨가 아이를 낳고 1년간 직장을 잡지 못하는 사이에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회사에 다녔다.

이런 차이가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기혼여성들의 경력단절이다. 여성 고용률은 전반적으로 올라갔지만 20대 고용률과 30대 고용률의 차이는 줄어들지 않았다. 즉 ‘경력이 끊기는 여성의 비율’은 그대로라는 뜻이다. 2000년 20~24세 여성 중에는 일하는 사람이 56.3%였는데 30~34세로 가면 그 비율이 47.3%로 뚝 떨어졌다.

10여년 뒤 그래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첫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는 나이대가 전체적으로 올라가면서 고용률의 나이 분포만 바뀌었을 뿐, 양상은 그대로다. 2016년에는 여성 고용률이 가장 높은 세대가 25~29세(69.0%)로 바뀌었다. 35~39세 연령대의 고용률은 최하점인 56.5%, 2000년보다 오히려 더 차이가 커졌다.

한창 일해야 할 직장 10년차에 경력이 끊긴 여성들에게 ‘돌아갈 옛 직장’은 없다. 이들은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린다. 남성이 1000원을 벌 때 여성은 641원을 번다. 남성 노동자 중에 비정규직은 26.3%뿐이지만 여성 노동자는 41.2%가 비정규직이다.

■ “와이프는 뭐하고?”

일터에서 밀려나 돌아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남학생들’에게 밀리지 않고 자라온 여성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여자의 역할’에 당혹감을 느낀다. 결혼 5년차인 김하영씨(30)는 결혼하고 2~3주 뒤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남녀는 평등하고 함께 돈을 벌고 책임을 나눠 갖는데 왜 가사노동과 집안 대소사를 꾸리는 일은 전적으로 내 책임일까.” 남편에게 아무리 얘기를 해도 자기 책임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아이가 먹을 우유와 기저귀가 떨어져도 남편은 모른다. 때가 되면 우유와 기저귀를 채워넣는 것도, 명절에 부모님 용돈을 챙기는 것도, 모두 여자의 일이다. 한국 남성의 가사노동 분담률은 16.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가장 낮다.

연구원 유모씨(31)는 사내 부부다. 남편은 석사, 그는 박사이지만 회사가 인정하고 키워주는 것은 남편이었다. 유씨에게는 남편 대신 가정을 돌보라는 무언의 압박이 돌아왔다. 아기가 아파 남편이 조퇴하려 하자 “와이프는 뭐하고 자네가 쉬나”라고 묻는 상사도 있었다. 여자 선배들은 출산 직후 복귀해 연구에만 미친 듯이 매달려야 겨우 승진할 수 있었다. 유씨가 이를 악물고 박사과정까지 마친 것도, 아이를 낳고 왔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였다.

직장인 10명 중 4명은 여성이지만 직장을 움직일 힘을 가진 관리자와 임원으로 올라갈수록 여성 비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2016년 공공기관과 5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여성은 37.8%, 관리자 비율은 20.1%였다. 여성가족부가 그해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 사업보고서를 분석해 보니 전체 임원 중 여성은 2.7%에 불과했다. 미투 운동에 대한 대처법이라며 최근 거론된 일명 ‘펜스룰’은 여성이 직장에서 어떤 힘도 갖고 있지 못한 현실을 드러낸다. 박봉정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장은 “펜스룰이 가능한 것은, 직장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을 배제한들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여성 관리자들 혹은 정책결정자들이 많았다면, 어쩌면 미투 운동은 다른 양상으로 ‘조직 내에서’ 풀려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그런 해결사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같은 급의 ‘동료들’은 있고,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규모가 됐다. 바로 그 지점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난 셈이다.

여성이 직장에 다니는 게 당연해졌지만 일터가 제도적·문화적으로 여성을 밀어내는 현상은 여성들이 저항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반대로 남성들도 과거에는 무시해도 됐던 여성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로 인한 새로운 갈등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수자였던 집단이 일정 비율 이상을 넘어서려고 하면 다수 집단은 위협을 느끼며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소수집단이 특정 수준의 ‘위협적 지위’에 이르면 다수집단은 그 집단이 더 커지지 않도록 억제하기 위해 차별을 가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여성 비율이 높아지자 합격자 비율을 정해놓고 점수를 조작한 금융권 채용 성차별이 바로 그런 예다.

■ 투표소로 가는 여성들

(1)여성의 자리 - 임원 옆에 ‘여직원 배치도’···동료의 자리는 없었다

(1)여성의 자리 - 임원 옆에 ‘여직원 배치도’···동료의 자리는 없었다

지난해 19대 대선에서 투표한 집단을 성별·연령별로 분류해 보면, 투표율이 80%를 넘었던 집단은 4개였다. 70대 남성의 투표율이 86.1%로 가장 높았고 60대 남성이 85.2%, 80대 남성이 83.1%로 그 뒤를 이었다. 네 번째는 80.9%를 기록한 ‘19세 여성’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거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여성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여겨져온 40~60대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이 투표장에 나왔다. 이 대선에서 50대 이하 연령층에서는 여성들의 투표율이 예외 없이 남성보다 높았다.

남녀의 투표율은 2012년 처음으로 역전됐다. 그해 18대 대선에서 여성 투표율은 남성보다 조금 높았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남성과 여성 투표율이 57.2%로 같았지만 40대 이하에서는 대체로 여성이 투표를 더 많이 했다. 2016년 총선에서는 남성 전체의 투표율이 1.4%포인트 높았지만 20대 후반~40대에서는 여성 투표율이 더 높았다. 20~40대 여성 유권자는 캐스팅보트를 넘어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집단이 됐다.

미국 등에서 먼저 나타났던 남녀 표심 격차(젠더 갭)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여성 투표자의 42%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지만 남성은 39%만 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정치사의 주요 사건들도 여성이 이끌었다. 1987년 6월항쟁을 주도한 것이 남성 위주의 ‘넥타이 부대’였다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대표하는 것은 ‘여고생’과 ‘유모차 부대’였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 때는 집회 현장의 남성중심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분위기에 여성들이 처음으로 집단적인 문제 제기를 했다. ‘여자가 대통령을 해서 문제’, ‘미스박, 닭년’처럼 여성을 낮추는 말들은 연단에서 퇴출당했다.

하지만 실제로 법과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정하는 자리에는 여성이 없다. 20대 총선에서 여성 국회의원이 51명 당선돼 역대 최다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전체 300명 중 17%에 불과하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50%를 여성으로 의무배정해야 하는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지역구 의원 중에서는 10.3%만 여성이다.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여가부 장관 1명만 구색 맞추듯 여성을 임명했던 관행이 깨지고 이번 정부에서는 국가보훈처장을 포함해 장관 6명을 여성으로 지명했다. 임기 내 남녀 동수 내각도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정부부처에서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 중 여성은 전체의 6.1%뿐이며 중간관리자인 과장급 이상으로 늘려 잡아도 14%에 불과하다. 여성 고위공무원이 너무 적다 보니 정부 출범 초기 관가에서는 차관으로 발탁할 여성 고위공무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여성의 목소리를 정책에 담는 것은 양적인 성평등을 넘어서는 일이다. 정책을 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생활에 밀착한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이 지난해 20대 국회의원들의 ‘정치대표성 인식’을 조사해 보니 남성 의원들은 경제나 외교안보 분야에 관심을 많이 보인 반면 여성 의원들은 여성, 복지, 노동 이슈에 대한 관심이 컸다. 돌봄 문제와 빈곤 해결, 고용차별 줄이기, 여성에 대한 폭력 없애기, 소수자 권익 늘리기 등 인권과 직결된 이슈에 대해서도 여성 의원들의 관심도가 남성 의원보다 높았다.

■ 미투, 공통의 ‘언어’를 찾다

2000년까지만 해도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남성보다 5%포인트가량 낮았다. 2009년을 기점으로 이 수치가 역전됐고, 점점 격차가 벌어져 2016년 대학진학률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7.2%포인트 높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도 여학생의 성적이 남학생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영화와 공연에 돈을 가장 많이 쓰는 계층은 30~40대 여성이다. 도서시장의 ‘헤비리더’도 여성이다. 지난해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판매된 책들 중 55%를 여성이 구매했다. 4권 중 1권(24.5%)을 40대 여성이 샀다. 페미니즘 열풍까지 맞물리면서 지난해에는 페미니즘 서적만 78종이 출간됐다. 페미니즘 도서 열풍은 <82년생 김지영>처럼 구조적 여성차별을 환기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고, ‘된장녀’나 ‘김치녀’ 같은 낙인을 향해 “이것은 혐오표현이다”라고 지적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경제적·정치적 기반을 갖췄음에도 그에 걸맞은 지위를 얻지 못한 채 여전히 차별을 겪는 여성들은 이런 지적·문화적 토양을 등에 업고 폭력의 경험을 털어놓는 ‘미투 혁명’을 폭발시켰다. 성폭력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가시화된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폭력’일 뿐 아니라 명백한 피해사실을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경아 교수는 “보통의 차별은 정황만 있을 뿐이지만 성폭력은 스스로가 경험한 것이기에 누구든 말로 옮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6년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난 ‘문단 내 성폭력’ 폭로 운동, 지난해 미국 문화계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이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고발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 됐고 피해자들에게 언어를 만들어줬다.

아직도 2차 피해 문제가 심각하긴 하지만,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한층 진전된 것도 미투 운동의 확산을 뒷받침했다. 1992년 역사상 처음으로 법정에 선 성희롱 사건인 ‘서울대 신모 교수 성희롱 사건(일명 우조교 사건)’ 이후로 흔하게 벌어지던 성차별적이고 모욕적인 언행을 ‘직장 내 성희롱’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됐다.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직장 내 성희롱을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됐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던 제도도 고쳐지고 있다. 1995년 형법이 바뀌면서 ‘정조에 관한 죄’는 ‘강간과 추행에 관한 죄’로 바뀌었다. 대법원은 “강간죄가 보호해야 할 법익이 배우자인 남성을 전제로 한 ‘여성의 정조’ 또는 ‘성적 순결’이 아니라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여성이 가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남성들이 ‘농담 따먹기’라고 부르는 행동들이 피해자들에겐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모두가 안다.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2016년 여가부 실태조사에서 성폭력 피해자 10명 중 1명이 “성폭력당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말을 들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1999년부터 의무화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이나 학교에서의 성교육과 꾸준한 인식 개선은 피해자에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내줬다.

이런 노력들이 켜켜이 쌓인 끝에서야 서지현 검사는 지난 1월 뉴스 스튜디오에 앉아 자신이 겪은 성폭력 피해를 증언할 최소한의 언어와 기틀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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