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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단체가 ‘대항로’에 모인 까닭은

2018.04.17 15:57 입력 2018.04.17 23:05 수정

장애 인권운동 시작한 대학로에 ‘진지’ 구축

“차별 철폐에 힘쓸 것”

장애인 인권단체들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옆 ‘대항로’에 모여 오는 20일 장애인의날 행사 준비 회의를 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장애인 인권단체들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옆 ‘대항로’에 모여 오는 20일 장애인의날 행사 준비 회의를 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지난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9개의 장애인 인권단체들이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옆의 한 빌딩으로 속속 이사를 왔다. 원래부터 이 건물에 입주해 있던 노들장애인야학까지 포함하면 장애인 인권단체 10개가 대학로의 한 건물에 모인 셈이다. 이들은 오는 20일 이 빌딩을 ‘대항로’라 명명하고 현판식을 열 예정이다. ‘대항로’라는 명칭은 장애인 차별에 ‘대항’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극의 거리’ ‘낭만의 거리’로 알려진 대학로는 한국 장애인 인권운동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1999년 노들야학 학생인 뇌성마비 장애인 이규식씨(당시 31세)가 인근 지하철 혜화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목과 허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리프트 공간이 전동휠체어보다 협소해 발생한, 예견된 사고였다. 이를 계기로 2001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시작됐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 공동대표는 “한 달에 한 번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혜화동로터리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며 “장애인 10여명이 함께 버스를 타면 시위를 막기 위해 경찰 100여명이 몰려왔다”고 회상했다. 이들의 투쟁 덕분에 2005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통과돼 저상버스·장애인콜택시·지하철 엘리베이터 등이 처음 도입됐다.

대학로는 장애인 탈시설 투쟁이 처음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2008년 장애수당 갈취 등 비리가 있던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나온 장애인 8명이 ‘더 이상 시설에서 살기 싫다’고 외치며 마로니에공원에서 두 달간 노숙농성을 벌였다. 당시 이들의 투쟁을 도왔던 박경석 노들야학 교장은 “이들의 싸움을 계기로 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자립생활임대주택 제도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리프트 사고는 잊을 만하면 반복되고, 휠체어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시외 대중교통은 여전히 없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대학로에 모이기로 했다.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힘 있는 장애인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며 “기왕이면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증명해주는 대학로에 ‘진지’를 구축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했다. 문제는 월 1000만원에 달하는 비싼 사무실 임대료. 박 대표는 “목표는 쫓겨나지 않고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이라며 “5년 뒤 후원금을 되돌려드리는 ‘벽돌회원’을 모집해 부족한 임대료를 충당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오는 27일 마로니에공원에서 ‘대항로 파티’라는 후원행사를 열 예정이다.

오는 5월에는 마로니에공원에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통합놀이터도 조성된다. 휠체어를 탄 채 이용할 수 있는 ‘휠체어 그네’가 이곳에 국내 공공장소에서는 두번째로 설치된다.

이들은 오는 20일 장애인의날을 맞아 청와대에서 마로니에공원까지 1박2일 장애인차별철폐투쟁 대행진도 진행한다. 25일에는 마로니에공원에서 제16회 서울 장애인인권영화제가 3일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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