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댓글 자영업자

2018.04.17 21:22 입력 2018.04.17 21:23 수정

1987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여의도 광장에 100만명의 군중을 동원해 대규모 유세를 펼쳤다. 자발적 지지자들만으로는 광장을 채울 수 없어 각종 직능단체나 향우회, 동창회 등을 동원하는 조직책이나 선거브로커가 필요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군중 동원 대신 온라인 공간의 평판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이는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제품을 구매하거나 식당을 예약하기 전에 인터넷 검색이 보편화되면서 사업자들의 온라인 평판을 관리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런 수요 기반 위에서 ‘사이버 평판 마케팅’이라는 신종 사업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예가 바이럴(viral) 마케팅이다. 블로그나 소셜미디어, 인터넷 카페 등에 글을 올려 제품이나 식당에 대한 ‘입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포털에서 무심코 읽은 블로그 포스팅도 바이럴 마케팅 글인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포스팅만 보고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 갔다가 실망하는 사례도 있다. 십중팔구 전문 블로거가 업자로부터 돈을 받고 쓴 글이다. ‘언더마케팅’이라는 불법 비즈니스도 등장한 지 오래다. 댓글 입력을 자동반복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동원해 포털사이트, 소셜미디어의 댓글과 공감수, 검색순위를 조작해준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네이버 아이디와 매크로 프로그램만 갖추면 ‘댓글 자영업자’가 될 수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도 500만원 정도면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소자본 창업이 가능한 시장인 셈이다.

최근 포털의 단속이 강화되자 ‘댓글 자영업자’들은 페이스북 등으로 사업공간을 옮겨가는 추세다. 인터넷에는 ‘1주일 안에 친구수 5000명 채우기, 단기간 팔로어 3만명 이상 늘리기’ 등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강의목록에는 ‘페이스북 가계정 만들 때 필요한 전화번호, e메일 주소 무한생성 방법’ 등 불법적인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민주당원 댓글 추천수 조작’ 사건을 주도한 ‘드루킹’ 김모씨도 매크로를 돌려 정치여론을 조작했다는 점에서 ‘댓글 자영업자’와 다를 게 없다. 댓글에 휘둘리는 정치문화가 이런 불법행위의 자양분이다. 온라인 공간은 오프라인을 압도했으나, 미세먼지 잔뜩 낀 탁한 공간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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