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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된 광장, 환희의 춤이자 불의에 맞선 연대의 행렬

입력 : 2018.04.17 21:43:00 수정 : 2018.04.18 19:42:57

군상, 1988, 한지에 수묵, 69.5×139㎝(최초 공개)

군상, 1988, 한지에 수묵, 69.5×139㎝(최초 공개)
이응노 ‘군상 - 통일무’전

박정희 부녀와 끈질긴 악연
두 번의 억압과 해금 겪어

역사와 사건을 떼놓고 볼 수 없는 작가와 작품이 있다. 고암 이응노(1904~1989)의 작품이 그러하다. 고암의 ‘군상’ 시리즈는 5·18민주화운동 후 총칼에 희생된 사람을 기리며 나온 것이다. 이응노는 1967년 동백림 사건의 희생자로 옥고를 치렀다. 인민군으로 끌려간 아들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북한 대사관 직원과 접촉했다가 박정희 정권에 두고두고 탄압받았다. 1977년 백건우·윤정희 납치 미수 사건에 연루돼 국내에서 작품 발표와 매매가 금지됐다. 당시 한국의 화랑은 이응노의 그림을 사지도 팔지도 않겠다고 했다. 이응노라는 이름은 독재 정권의 금기어였다.

암울한 과거사가 아니었다. 이응노는 박근혜 정권에서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한·불 수교 100년 때 ‘이응노에서 이우환 : 프랑스의 한국화가들’은 ‘서울-파리-서울 : 프랑스의 한국작가들’로 바뀌었다. 이 정권에서 이응노미술관은 ‘문제 단체’로 각종 지원에서 배제됐다.

평화와 통일 염원한 그의 작품
남북대화 국면에서 더 부각

정권교체는 이응노에게 1987년 민주화에 이어 제2의 해금을 가져다줬다. 지난해 말 개막한 서울시립미술관의 ‘더불어 평화’전이 내건 대표작 중 하나는 이응노의 ‘반전평화’(1986)였다. 평화와 통일을 염원한 그의 작품은 최근의 남북대화 국면에서 더 부각된다. 가나아트센터에서 18일 개막하는 ‘이응노, 군상-통일무’전은 이응노의 도불 60주년 기념전인데, 현재 정세나 사건의 연장에서 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나아트센터는 평면과 조각 60여점을 전시한다. 40점이 미공개작이다. 작품 대부분은 전시 타이틀에 드러나듯 ‘군상’ 시리즈다. 이응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소식을 프랑스 땅에서 들었다. 광주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재현한 몇 안되는 작가였다. 프랑스에서 일흔일곱 나이에 군부독재 학살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그는 광주 시민의 넋을 달래기 위해 다시 ‘사람’을 그리기 시작했다. 생애 마지막 10년을 사람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군상’ 연작의 주제는 평화다. 사람 형상은 주로 ‘춤추는 인간’으로 해석된다. 이응노는 생전에 “내 그림은 모두 제목을 ‘평화’라고 붙이고 싶다. 모두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으로 공생공존을 말하는 민중그림 아니냐? 그런 민중의 삶이 곧 평화지 뭐. 이 사람들이 바로 민중의 소리이고 마음이야”라고 했다. 1년8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하면서 이 주제를 생각했다. 그는 “감옥이 자극을 주어서 (군상을) 형상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 셈”이라고 했다.

‘군상’의 독특한 조형언어는
시대·장소 넘어 보편성의 힘

좋은 작품은 열려 있다. 사람은 달리기도 하고 걷기도 한다. 두 팔 벌려 만세를 부르기도, 사람을 와락 껴안으려고도 한다. 붓질로 창조한 군상엔 인종이나 남녀의 구별도, 차별도 없다. 이응노는 통일무를 ‘통일된 광장에서 환희의 춤을 추는 남북의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는데, 부정부패와 불의에 항의하는 저항과 연대의 행렬로 볼 수도 있다.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을 떠올릴 수도, 2016년 촛불집회를 상기할 수도 있다. 그는 군상으로 지금 여기의 사람들과도 이어진다.

이응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화가의 무기는 그림입니다. 예부터 예술가들은 권력자에게 봉사하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 왔지요. 그러나 현대의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굳게 지키며 민중들 편에 서야 합니다.” ‘군상’에 구현한 이응노만의 독특한 조형 언어는 시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보편성의 힘을 지니고 있다. 해외에서 호평받은 작가다. 프랑스 퐁피두센터는 지난해 이응노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군상, 1984, 한지에 혼합재료, 135×18㎝(최초 공개)

군상, 1984, 한지에 혼합재료, 135×18㎝(최초 공개)

이응노는 옥중에서 가장 괴로웠던 게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잉크 대신 간장으로 화장지에 데생을 했다. 매일 밥알을 아꼈다가 헌 신문지에 개어서 조각품을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옥중에서 제작한 조각 2점도 나온다.

미공개작 40점은 가나아트센터 소장품과 개인 소장자의 것이다. 가나아트센터 이호재 회장은 이응노가 여전히 한국에서 금기시되던 1985년 프랑스로 세번이나 찾아간 끝에 그림을 받았다. 이응노전은 민주화 이후 1989년에야 열렸다. 가나화랑(가나아트센터 전신)은 1999년 10주기전에 이어 20주기에서 한 해 빠진 올해 두번째 개인전을 개최한 것이다. 이응노 사후에도 꾸준히 작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내년 20주기 대규모 회고전도 검토 중이다. 전시는 5월7일까지.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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