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으로 넘겨보세요

문학을 품는 TV…감동도 진해질까

입력 : 2018.04.17 21:48:00 수정 : 2018.04.17 21:48:55

tvN 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시를 드라마 소재로 전면에 내세웠고 예능 <숲속의 작은 집>에선 출연자 소지섭이 에세이집을 읽는 장면이 방영됐다.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도 시가 여러 편 인용돼 화제가 됐다(위 사진부터).

tvN 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시를 드라마 소재로 전면에 내세웠고 예능 <숲속의 작은 집>에선 출연자 소지섭이 에세이집을 읽는 장면이 방영됐다.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도 시가 여러 편 인용돼 화제가 됐다(위 사진부터).

최근 TV 프로그램 안에서 문학작품이 인용되거나 소개된 사례가 눈에 띈다. 드라마나 예능에서 시와 에세이는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묘사하거나 극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장치로 적극 활용된다. <내 이름은 김삼순>(MBC·2005), <시크릿 가든>(SBS·2010)처럼 과거에도 드라마에 문학작품을 인용한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최근엔 더욱 두드러져 유행이 되고 있다.

■ 시를 품은 드라마

tvN ‘시를 잊은 그대에게’ 등
드라마서 시·소설 등장 장면
최근 부쩍 늘어 새 트렌드로

tvN 월화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주인공 우보영(이유비)은 종합병원 비정규직 3년차 물리치료사다. ‘계약직’이란 신분은 주인공에게 좌절의 순간을 가져다준다. 이때 드라마 화면에 시 한 편이 소개된다. “오랜 시간의 아픔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도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중략)/ 아픔과 슬픔도 길이 된다”(이철환, ‘아픔과 슬픔도 길이 된다’ 중)

이 드라마는 시를 주요한 소재로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특히 드라마 장면 중 도로나 건물 외벽에 시를 그래픽처럼 넣어 시각적인 효과를 노린다. 한상재 PD는 “자막이 배경에 녹아든다면 더 효과적으로 시가 전달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시가 나오는 부분은 현실보단 어느 정도 판타지 성격이 있어 캐릭터 주위에 시가 흘러가고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한 PD는 “요즘 TV 프로그램들이 ‘장르 파괴와 혼합’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면서 “우리 프로그램은 드라마와 문학의 결합인데, 시는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들의 감정을 함축적으로 전달하기에 매우 좋은 장치”라고 말했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선 극중 손무한(감우성)이 안순진(김선아)에게 <밤에 우리 영혼은>(켄트 하루프, 뮤진트리)이란 소설을 읽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안순진에게 밤에 함께 있어주겠다는 손무한의 뜻을 전하는 매개체가 된다. MBC 주말드라마 <부잣집 아들>에선 극중 딸(홍수현)의 방을 청소하던 엄마(윤유선)가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를 발견하고, 수록시 한 편을 낭송한다. 이 장면에서 시집은 극중 딸이 가정형편의 차이로 이뤄지기 어려운 사랑을 하고 있음을 넌지시 전달한다.

드라마에 문학작품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간접광고(PPL)를 위한 것도 있을 테고, 문학작품을 끌어와 드라마의 작품성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문학작품의 인용이 드라마 자체의 완결성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교수는 “시의 언어와 드라마의 언어는 분명히 다르다. 드라마 대본 안에서 풀어낼 수 있는 것까지 문학작품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 ‘미디어셀러=베스트셀러’

김용택 시집과 박준 산문집
드라마에 소개된 후 판매 급증
‘미디어셀러’ 대열에 합류

드라마 <도깨비>(tvN·2016)에 나온 김용택 시인의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예담)는 서점가에서 5주 이상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7월 출간해 총 13만부를 인쇄한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으로 등극하는 데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tvN)에 소개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서점가에서는 이처럼 대중문화를 통해 화제가 된 책들을 ‘미디어셀러’라고 부른다. 최근 1~2년 새 ‘미디어셀러=베스트셀러’ 공식이 등장했다.

17일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집계를 보면 <키스 먼저 할까요?>에 소개된 나희덕의 시 ‘푸른 밤’이 수록된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는 지난 9일 방송 이후 13일까지 동기간 대비 판매량이 1266.7% 증가했다. 물론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멤버 옹성우가 공식 팬카페에 ‘푸른 밤’을 소개하면서 화제를 모은 것도 작용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소개한 책도 판매량이 급증했다. 지난달 25일 방송된 JTBC <효리네 민박 2>에서 박보검이 읽은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유유)은 일주일간 판매량이 전주 대비 33.3% 증가했다. 김도훈 예스24 문학 MD는 “최근 tvN 예능 <숲속의 작은 집>에서 소지섭이 읽어 화제가 된 사노 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마음산책)는 방송 후 5일 만에 940부가 팔려나갔다”면서 “미디어셀러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작품성 높이려는 장치 혹은
책 간접광고 의도도 있을 것”

미디어셀러는 시청자와 독자의 교집합이 커질수록 효과적이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를 얻은 박준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은 주로 청춘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인용됐다. 두 책을 편집한 문학동네의 김민정 시인은 “박준 시인 글의 정서는 사랑, 이별, 가난, 죽음인데 한국 드라마의 주요한 정서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소개되는 글귀가 TV 프로그램 흐름에 잘 녹아들면 책 판매에도 영향을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유명인이 소개해도 별 반응이 없다”면서 “요즘 시청자들은 문학작품이 TV 프로그램에 소개될 때 그것이 단순 PPL인지, 꼭 필요한 것으로 쓰였는지 잘 파악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댓글

등록

조회 순

    댓글 순

      공유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