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자살유가족은 ‘심리적 난민’ 사회가 손 내밀어야

2018.04.17 21:56 입력 2018.04.18 10:48 수정
오강섭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 외 운영위원 일동

자살유가족이었던 ‘증평 모녀’ 심리적·경제적·법적 문제 고통

지원 시스템 안내 의무화 필요…일본은 ‘사회적 대처 시행’ 명시

[지금! 괜찮으십니까](26)자살유가족은 ‘심리적 난민’ 사회가 손 내밀어야

충북 증평에서 일어난 ‘모녀사망’으로 많은 국민이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아직 경찰의 수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숨진 어머니의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유가족이었고 지원시스템은 거의 작동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은 13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6년 한 해 1만3092명의 생명을 자살로 잃었다. 정부는 올해 1월 자살예방국가행동계획을 발표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우리는 또다시 이러한 안타까운 사건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왜 이 안타까운 사건을 막을 수 없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보느냐, 사회의 문제로 보느냐는 것이다. 자살은 매우 다양한 원인으로 시작된 위기에 필요한 사회국가적 서비스가 부재하거나 접근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최악의 결과이다.

지난 10년간 자살률을 34% 감소시킨 일본의 자살예방법은 ‘누구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로 시작되며, ‘자살예방은 사회적 대처를 기본으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자살예방법은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목적에서 구체성에 대한 극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어떤 이유든 자살위기에 몰린 국민은 국가 그리고 사회공동체에 구조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개념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자살예방대책은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게 하고, 구조를 요청하지 않는 위기에 처한 국민들을 제대로 구조할 수 없다.

이번 증평 모녀사망 사건을 통해 자살유가족에 대한 대책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매년 1만3000여명이 자살을 하게 되면 최소 8만명의 유가족이 발생한다. 유가족의 자살위험은 일반인의 8배가 넘는다. 이들은 가족의 자살이라는 사회적 재난에 처해진 심리적 난민이라 할 수 있다. 일부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자살예방사업을 하는 민간기관들이 유가족 모임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을 잃은 유가족의 고통은 심리적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경제적·법적 문제로 인한 고통을 받는다. 유가족들을 다양한 문제해결방법의 연결을 통해 지원할 수 있는 자살유가족 종합지원센터가 필요하다. 유가족을 제일 처음 접촉하는 경찰과 사망진단서를 등록할 때 방문하는 동주민센터 직원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며, 이들이 유가족에게 서비스를 연결하는 것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지자체에서 경찰과 공무원이 유가족에게 안내할 수 있는 상담전화와 보건복지 통합서비스 목록을 마련하여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적인 심리상담 지원 등 지역사회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인프라가 마련되고 널리 알려져야 한다.

우리는 자살유가족을 지원의 대상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자살문제 해결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가장 고통을 겪은 유가족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살예방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는 강사로, 또 자살예방활동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는 금년 2월27일 국회자살예방포럼 발대식에서 유가족 대표의 주장이기도 했다. 영국, 일본 등에서 유가족이 유가족을 돕는 서비스의 효과성은 이미 검증되었다. 경험 있는 유가족이 고통을 겪는 유가족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다. 이들의 노력이 자살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살유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 일부의 편견이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각적 노력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과 마음을 모을 때이다. 그래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아픔과 위기를 지역사회와 이웃이 같이 나누고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돌봄공동체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자살예방센터·한국자살예방협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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