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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스쿨 미투’ 왜?···“폐쇄적이고 성 금기시하는 학교 문화 바뀌어야”

2018.04.18 13:57

대학은 물론 중·고교에서도 줄줄이 '스쿨 미투'

미투 운동 이후 학생들 교내 성범죄 적극적 공론화

지난 11일 서울대학교 학내 언론사 <서울대 저널>에는 수의대 ㄱ교수의 상습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는 서울대저널이 지난 3월7일부터 약 한 달간 성희롱·성추행을 비롯한 제보다. ㄱ교수는 수의학과 학생들과의 회식자리에서 학생들의 볼에 입을 맞추거나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 학생들은 ㄱ교수가 지도교수로 있는 동아리 소속이었다. 이 사실이 공개되자 ㄱ교수는 서울대저널 측에 상습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학교 측의 조치는 미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학생회를 통해 피해사실을 수집해 학장단에 제출했으나 지도교수가 교체된 것 외에는 사건조사나 징계·피해자 보호 등 조치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도 한국무용 강사가 학생을 상습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는 피해 학생이 학교 건물에 “또 어디가냐? 남자하고 섹스하러 가냐?” “내가 승무로 너에게 감동을 주면 너 나에게 상납할래?” 등 강사 ㄴ씨의 성희롱 발언을 적은 자보를 붙이면서 알려졌다. 학교 측은 피해 학생 통해 사실관계 확인 뒤 해당 강사 강의에서 배제한 상태다.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강사 ㄱ씨의 성희롱성 발언을 폭로하는 내용이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이유진 기자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강사 ㄱ씨의 성희롱성 발언을 폭로하는 내용이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이유진 기자

교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 미투’는 중·고등학교에서도 이어졌다. 서울 노원구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제자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와 경찰이 내사에 들어갔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이 학교 체육교사가 학생들을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어 내사 중이다. 앞서 경찰은 이 학교 소속 국어교사가 학생들의 허리, 엉덩이 등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학교를 포함한 서울 시내 5개 학교에서 교사에 의한 성범죄 고발이 나왔다.

교육부 ‘교육 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단’에 따르면 지난달 9일부터 30일까지 추진단에 신고된 성범죄 신고 건수는 초중등 18건과 대학 13건, 기타 6건 등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20건은 교원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학생에게 가한 성범죄였다. 특히 대학에서는 교원이 학생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가 8건으로 절반에 이르렀다.

서울 노원구의 한 여고 교실 창문이 졸업생들의 미투 고발을 응원하기 위해 재학생들이 만들어 붙인 ‘위드유’ 등의 문구로 뒤덮여 있다.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의 한 여고 교실 창문이 졸업생들의 미투 고발을 응원하기 위해 재학생들이 만들어 붙인 ‘위드유’ 등의 문구로 뒤덮여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학교 조직의 폐쇄성과 성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성범죄에 취약한 환경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학교에서는 교사·교수와 학생 사이에 위계관계가 뚜렷하다”며 “성폭력은 권력 위계 관계 하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성폭력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학교에서는 다양한 층위의 성범죄가 발생하는데, 그 예가 교사와 학생뿐만 아니라 남학생들이 여교사에게 성희롱하는 일”이라며 “그동안 학교는 다양한 성범죄들이 일어났음에도 신성한 교육공간이라는 이유로 일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문제를 덮기에 급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투 운동의 확산으로 성폭력에 대응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학내 고발보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적극적인 공론화에 나선 것이다.

김 교수는 “입학과 졸업이라는 시간적 한시성 때문에 그동안 학생들은 학내 성폭력 문제를 공동으로 대응할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전사회적으로 일어난 미투 운동을 통해 성범죄는 조직의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고, 내부적으로 고발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조직 밖에 도움을 요청하는 형태의 폭로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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