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의 적폐청산이 무섭다

2018.04.19 20:45 입력 2018.04.19 21:00 수정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낙마’는 출범 1년(5월10일)을 앞둔 문재인 정부엔 최대 ‘실패’로 기록될 만하다. ‘역사란 인간의 범죄와 우행과 불행의 기록’(<로마제국 쇠망사>)이란 에드워드 기번의 정의를 따르면 문재인 정부 초반을 가르는 역사로 남을 일이다. ‘적폐청산’이 소명인 문재인 정부가 그런 적폐들의 다른 이름인 ‘관행’ 뒤로 숨으려 한 때문이다. 청와대의 실패는 ‘인사 낙마’가 아니라, 그로 인해 ‘내로남불’의 이중적 이미지를 남긴 점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13일 메시지는 예상밖이었다. 특히 ‘평균적 도덕론’은 낯설었다. 정의당과 참여연대까지 돌아선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여론에 맞서는 것으로도 비쳤다. “인사 때마다 하게 되는 고민” 등 행간에선 격정도 읽혔다.

[편집국에서]‘나’로부터의 적폐청산이 무섭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들이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니다. 2006년 5월의 일이다. 3년여 청와대 생활을 접는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은 드물게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편하게 기자들을 만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꺼낸 이야기가 인사였다. “당시 관행의 문제” “무난한 선택은 관료” 등은 당시에도 토로했던 고민이었다. 핵심은 압축성장한 한국사회 현실에서 ‘과거 관행을 현재 잣대로 재단하면 인사를 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와 현실적 ‘기준’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정치권에 대한 일종의 서운함이 원인으로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의’에서 장관급까지 인사청문회를 확대·도입했지만, 선의는 온데간데없이 정치 공세 대상만 되고 있다는 불편함이었다.

실상 현재 인사청문 제도를 성찰해볼 지점은 있다. 그간 공직 후보자가 된다는 건 곧 ‘장대 끝의 광대’ 신세를 의미하는 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여야로 입장이 바뀔 때마다 ‘낙마’와 ‘엄호’ 사이를 오갔고, 낙마만이 청문회 성패의 잣대인 양 장대를 흔들어 대는 동안 후보자들이 지나치게 난도질당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반면 정책 능력이나 리더십은 방치돼 왔다. 정책자질을 검증한다면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게 ‘동성애’ 입장을 묻는 식의 ‘사상 공세’가 고작이었다.

언론들 또한 자유롭지 않다. 낙마만을 성과로 삼아 ‘낙마 경쟁’을 벌여온 것은 아니냐는 반성 때문이다. 인사는 어느 정권에나 가장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 돼버렸다.

하지만 ‘김기식 낙마’를 계기로 공직인사의 도덕적 기준을 새로 정립하는 것과 우리사회 관행을 정리하는 것은 별개다. 김 전 금감원장을 금융개혁 적임자로 매김하고, 의원들을 향해 평균적 도덕론으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있으면 돌을 던지라’는 기준을 제시한 것은 그래서 더더욱 적절치 않다. 의원들의 인사검증 행위는 국민 대리자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의 도덕성은 따로 평가받고 책임질 문제다.

문 대통령 바람대로 공직인사의 ‘평균적 도덕 기준’을 마련한다고 문제가 말끔해지길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책능력은 과거 성과와 실패를 따져본다 치더라도 조직 지휘자로서 리더십은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되기 쉽지 않다. 김 전 원장 낙마의 배경을 살펴보면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했지만, 타인에게는 추상같았던’ 내로남불에 대한 인심이 존재한다. 결국 정무적 판단은 여전히 중요하다,

소통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가 간과한 것은 ‘인사’는 어떤 면에서 민주정부가 국민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김기식 인사’를 통해 금융개혁 비전을 소통하려 한 것일 테지만, 민심은 그 자격에 의문을 표시했다. 이를 예민하게 잡아내지 못한 점에서 문재인 정부에 오만이나 자만이 스며든 것은 아닌가.

문재인 정부 국정의 제일 앞자리에는 여전히 ‘적폐청산’이라는 명제가 놓여 있다. 적폐청산은 일견 피를 묻히는 일이고, 그만큼 강력한 설득력을 요구한다. 진보이기에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다거나, 도덕성이 기반이어서 작은 부패에도 취약하다는 토로는 성립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핵심들과 지지층이 야당일 때 ‘인사’를 대한 자세가 지금 야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처럼, 그간 관행의 울타리에서 동거해왔다면, 여권과 진보는 딱 보수의 부패를 공격하기 위한 만큼만 도덕적이 아니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적폐를 청산한다는 건 상당한 결기가 필요한 일이다. 스스로를 제물로 삼을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역사란 것이 보수나 우파의 기록만이 아닐진대, 지난 역사에서 여야의 우행과 불행은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르지 않다. 이 진실을 받아들일 때 진정한 적폐청산도, 정치도 가능할 것이다. 오직 자신부터 시작되는 적폐청산만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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