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화의 진화, 방탈출게임

2018.04.19 20:47 입력 2018.04.19 21:01 수정

[한창완의 문화로 내일만들기]방문화의 진화, 방탈출게임

2011년 5월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가 글로벌 뉴스 블로그를 통해 한국의 방문화를 소개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사회적 위신 등을 매우 중시하지만 ‘방’에 들어가면 느긋하게 여유를 즐긴다면서 ‘노래방’ ‘DVD방’ ‘게임방’ 등을 설명하며 이러한 방문화의 최고는 ‘찜질방’이라고 전했다. 찜질방이 최고인 이유는 ‘소금방’ ‘보석방’ ‘노래방’ ‘PC방’ 등 온갖 방들이 함께 있는 종합판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여한 외국인들도 식당마다 방으로 이루어진 형태를 신기해하고, 특히 온돌문화에서 출발한 식당의 방구조 때문에 한국인들은 식사할 때마다 요가를 하는 것 같다며 나름대로의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렇듯 방문화가 상품으로 발달한 이유는 주택구조와 가족의 형태에 있기도 하다. 국민의 대부분이 아파트와 빌라 같은 집단주택에 살고 있으며, 그러한 구조의 주택은 개인 공간의 보장과 친구, 연인, 동료 등과 교류할 수 있는 집단문화의 공간을 허락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적인 공간을 시간당으로 빌리며 그 공간의 목적을 명분으로 함께 모일 수 있는 문화를 상품으로 소비한다. 이것이 일상화된 방문화의 소비 형태이며, 더 다양한 형태의 문화로 개발되어 분화되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대학가 상가를 점령한 문화가 있다. ‘인형뽑기방’이다. 대개 편의점과 일반 소매상에 자판기 형태로 한두 개씩 배치된 것이 인형뽑기 기계였는데, 이러한 기계가 10여대씩 커다란 매장을 가득 채운 인형뽑기방이 상가 일대를 점령했다. 갇혀진 인형을 뽑아내는 게임을 한두 차례 재미로 해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10여차례 계속 계획적으로 인형을 이동시키고 쌓아서 결국 원하는 캐릭터 인형을 뽑아내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형뽑기방은 성취와 도전의 공간이다. 대개 무인점포로 운영되며 소위 대박문화로 확산되었다.

최근, 이렇게 인형을 뽑아내는 게임에서 스스로 갇히고 스스로 탈출하는 과정을 즐기는 신종 방문화가 상품이 되었다. ‘방탈출게임방’이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고, 1인당 비용도 1만~3만원까지 다양한다. 저렴하지 않은 비용까지 지불하면서 굳이 갇히려는 이유가 궁금하지만, 젊은이들은 친구, 연인, 선후배들끼리 모여 1~2시간가량 정해진 시간 내에 여러 가지 방법을 의논하며 제시된 힌트와 배치된 사물들을 활용해 탈출하는 게임을 즐긴다. 스스로 갇히는 문화, 그리고 그 공간을 탈출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뇌섹남과 뇌섹녀의 토론과정, 요즘 대학생들이 갖는 삶의 문화가 탈출의 본능을 자극한다.

방탈출게임은 온라인게임에서 유래되었다. 1990년대 말 등장한 온라인 탈출게임 ‘크림슨 룸(Crimson Room)’이 인터넷에서 주목받고, 2011년 쥬르코비츠 어틸러가 파라파크라는 탈출게임 전문회사를 설립하면서 탈출게임방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진다. 온라인 탈출게임의 아이디어를 오프라인에 적용한 비즈니스 모델이었으며, 생활 속에 함께하는 가구와 물건들에 숨겨진 힌트를 직관과 논리력, 추리력 등을 동원해서 문제를 풀어 탈출하는 형식을 개발해내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국가 홍보책자에 방탈출게임을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소개할 정도로 헝가리 전국에 120여개가 성행하고 있다. 아시아권은 싱가포르를 선두로 중국과 일본에서 테마카페로 성업 중이며, 북미권에서는 대학 주변으로 확대되어 2014년에 이미 280여개 도시에 이러한 공간이 생겼다고 한다. 국내에는 2015년 방탈출카페가 처음 등장한 뒤 입소문을 타고 홍대앞·대학로·강남 등 대학가·거대 상권을 중심으로 방탈출게임방이 생겨나며 연일 예약 완료의 매진을 이루고 있다.

갇혀진 인형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의도적으로 갇히는 경험을 소비하며, 긴장과 도전의 지적게임을 통해 다시 세상으로 나오려는 시간의 소비문화. 청년들이 갖는 세대 고민이 방문화를 진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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