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제로’ 도전 한 달 “결국 내 삶을 바꾸는 일이더라”

2018.04.20 20:44 입력 2018.04.21 10:01 수정

‘제로웨이스트’ 프로젝트

참가자, 평소 배출량 먼저 관찰…뭘 먹고 뭘 하는지 ‘생활 습관’ 고스란히

손수건·텀블러·에코백 필수…페트병 쓰레기 제로·포장지 140개 → 37개

“쓰레기 없는 삶 실천해보니 소비자본주의와 싸우는 느낌 들었다”

이만큼 줄었어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쓰레기 덕질’에 참여하고 있는 그림(아래 사진 왼쪽)이 지난해 두달 간 자신이 버린 쓰레기를 관찰한 뒤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하며 사진으로 기록했다. 위 사진은 한달 동안 버린 쓰레기이고, 아래 사진은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한 한달간 버린 쓰레기다. 그림(별명) 제공

이만큼 줄었어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쓰레기 덕질’에 참여하고 있는 그림(아래 사진 왼쪽)이 지난해 두달 간 자신이 버린 쓰레기를 관찰한 뒤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하며 사진으로 기록했다. 위 사진은 한달 동안 버린 쓰레기이고, 아래 사진은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한 한달간 버린 쓰레기다. 그림(별명) 제공

한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패션? 먹는 음식? 사는 집?

그림(별명)은 예상치 못한 답을 내놓았다. “쓰레기를 보면 그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을 다 볼 수 있어요. 어디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하는지.”

정말 그랬다. 인스턴트커피를 마신 날엔 커피 봉지가, 라면을 먹으면 라면 봉지가, 치약을 다 쓰면 치약용기가 쓰레기로 나왔다. 쓰레기는 자신이 먹고 사고 쓴 것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다.

그림은 지난해 한 달 동안 자신이 버린 쓰레기를 모아 관찰하고 사진으로 찍어 기록으로 남겼다. 다음 한 달 동안은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했다. 지난해 ‘쓱싹쓱싹! 제로웨이스트’ 프로젝트를 벌였고,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 ‘쓰레기덕질’을 운영하고 있다. ‘쓰레기 덕후’인 그림과 클라블라우(별명)를 지난 8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제로웨이스트’는 생활 속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은 재활용하자는 운동이다. 그림은 “대단한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관찰하기

서울시민 1명이 하루에 배출하는 쓰레기양은 0.94㎏, 1년에 343㎏(2015년 기준)이다. 자신이 배출하는 쓰레기가 어떤지 관찰부터 하기로 했다.

“지퍼백을 한 달 동안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회사 및 밖에서 버리는 쓰레기를 모았어요. 집에 와서 다시 꺼내 무게를 달고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겼죠. 쓰레기를 보니 내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했는지가 고스란히 보이더라고요.”

그림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휴지가 많았고, 식생활이 인스턴트 식품으로 점철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쓰레기를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하게 됐다. 핸드타월을 안쓰기 위해 손수건을 챙기고, 일회용 커피컵을 쓰지 않기 위해 텀블러를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수 페트병 쓰레기, 인스턴트 식품, 과자 등 간식거리에서 나오는 포장 쓰레기는 여전히 많았다.

■ 줄이기

4주간의 관찰기 이후 본격적으로 ‘쓰레기 없는 삶’에 도전했다. 그림은 ‘제로웨이스트 기본 아이템’으로 4개를 제시했다. 장바구니, 손수건, 김밥이나 고기 등을 살 때 담을 플라스틱 용기, 빵이나 과일 등 물기 없는 식재료를 살 때 담을 면주머니다. 페트병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간이 정수기도 구매했다.

“플라스틱 용기를 챙겨서 마트에서 음식을 살 때 담아달라고 해요. 상품 가격 라벨도 용기에 붙여요.”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분식점에서 순대를 정량보다 더 많이 담아주고, 정육점에선 플라스틱 용기에 고기를 담아놓고선 무의식 중에 비닐로 포장하려는 걸 말리기도 했다.

아침마다 모카포트로 커피를 추출해 텀블러에 담아 출근했고, 재래시장에서 포장되지 않은 식재료를 샀다. 물티슈 대신 걸레로 청소하려 노력했다. “내가 직접 추출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즐기게 됐다. 하지만 재래시장이 집 근처에 없어 바쁜 날엔 마트에 들러 포장되지 않은 식품 위주로 구매했다”고 말했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선 계획적 소비와 효율적 시간운영이 필요했다. 그림은 “장 보러 갈 때도 뭘 살지 계획을 세워야 그에 맞는 용기를 가져간다. 시간이 없어서, 바빠서 사다 보면 일회용품을 소비하게 되더라. 제로웨이스트를 위해선 내 삶을 바꾸는 게 필요하더라”고 말했다.

한달 뒤 식품을 담는 플라스틱 포장재는 15개에서 1개로, 비닐 포장지는 37개에서 14개로 줄었다. 간식 포장지는 43개에서 18개로, 인스턴트커피 포장지는 45개에서 4개로 줄었다. 정수기를 사용한 후로 페트병 쓰레기는 제로가 되었다.

■ 있는 것 활용하기, 버릴 것 안 만들기

클라블라우는 독일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쓰레기를 직접 새활용(업사이클링·upcycling)한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다. 그의 손에선 쓰레기가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한다. ‘쓰레기덕질’ 모임에서 쓰레기를 새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상담을 해주고, 불필요한 물건을 받아 작품 재료로 활용한다. 양파망을 이어붙여 가방을 만들기도 하고, 자투리천을 이용해 에코백, 옷 등을 만든다.

‘쓰레기 덕질’에 참여하고 있는 디자이너 클라블라우(오른쪽)는 버리는 물건을 직접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왼쪽은 함께한 그림(별명).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쓰레기 덕질’에 참여하고 있는 디자이너 클라블라우(오른쪽)는 버리는 물건을 직접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왼쪽은 함께한 그림(별명).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클라블라우는 “플라스틱이나 일회용품은 생산과정과 후처리 과정 모두 환경과 사람에게 해롭다”고 했다. “학교에서 플라스틱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는데, PVC(폴리염화비닐)를 녹여서 작업하다 보니 유해가스를 많이 마셔 몸이 안 좋아졌어요. 비닐 공장이나 화학섬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환경이 어떨지 짐작이 됐어요.”

■ 제로웨이스트는 소비자본주의와 싸우는 느낌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다 보니 소비자본주의와 싸우는 느낌이었어요. 카페에서 커피 원두를 사면서 비닐팩에 담긴 원두를 개인용기에 담아달라고 하며 비닐포장지를 두고 왔더니, 직원이 돌아서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리는 거예요. 개인적 차원의 노력으론 한계가 있다는 걸 절감했어요. 유통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꾼다든지, 정책적 측면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림은 “제로웨이스트는 생활 습관뿐만 아니라 소비 습관을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이게 굉장히 정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시되고 장려되는 소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폐비닐 수거거부로 불거진 ‘쓰레기 대란’에 대해서 클라블라우는 “터질 게 터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소비가 미덕이고 오래된 제품을 쓰는 게 구질구질한 것이라는 인식을 바꿔 재사용과 재활용이 삶의 방식으로 확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제도와 개인적 실천이 함께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때 폐지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되살리는 등 일회용품 소비와 포장재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수동에 더피커라는 가게가 있어요. 포장용기를 갖고 가서 원하는 만큼 식재료를 살 수가 있어요. 하지만 제가 그걸 사겠다고 집에서 먼 성수동까지 가는 건 쉽지 않아요. 일상 속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림이 말했다.

■ 플라스틱 없는 매장 ‘더피커’

<b>1회용 포장재 안 쓰는 식료품 매장</b> ‘더피커’에서 송수니 매니저가 장바구니에 담은 식재료를 저울에 달기 위해 서 있다. ‘더피커’에서 식재료를 사려면 필요한 식재료를 무게만큼 계산한 뒤 장바구니 등 개인 용기에 담아 가져가야 한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1회용 포장재 안 쓰는 식료품 매장 ‘더피커’에서 송수니 매니저가 장바구니에 담은 식재료를 저울에 달기 위해 서 있다. ‘더피커’에서 식재료를 사려면 필요한 식재료를 무게만큼 계산한 뒤 장바구니 등 개인 용기에 담아 가져가야 한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그림이 말한 일회용품 없는 매장 ‘더피커’를 지난 17일 찾았다. 서울숲 옆 골목길을 걸어들어가자 환한 햇살을 받고 있는 유리창에 ‘건강한 소비가 만드는 건강한 지구’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매장 벽엔 ‘프리사이클링(Precycling)’이란 글씨가 쓰여 있다. 재활용 이전에 발생하는 폐기물을 최소화하자는 뜻이다.

‘더피커’엔 일회용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없다. 채소와 곡류 30여종을 손님들이 원하는 만큼 개인용기에 담으면 무게를 달아 계산한다. 매장엔 천으로 만든 장바구니, 주머니, 유리병과 대나무와 스테인리스 소재 빨대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홍지선 대표는 “현재 인류가 처리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하는 양의 쓰레기가 발생하고 있다”며 “독일에서 포장 없는 슈퍼마켓인 오리기날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가 생기고 유럽 전역에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일회용 포장재가 넘쳐나는 한국에서 포장 없는 가게는 아직 낯설었다. 식료품이 남으면 재고가 생겨 가게에서 판매하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그로서란트(grocerant)’ 형태의 매장을 시도했다. 샐러드와 샌드위치 등의 메뉴가 입소문을 타고 ‘맛집’으로 알려져 손님이 늘었다. 송수니 매니저는 “육식이 탄소배출을 많이 해 환경에 해롭기 때문에 완전 채식 메뉴(비건)와 달걀과 유제품까지 사용하는 락토오보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엔 커피도 없었다. 송 매니저는 “커피를 판매하면 찌꺼기가 많이 발생하는데, 찌꺼기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레스토랑까지 겸하다 보니 일회용품을 완전 배제하긴 힘들었다. 테이크아웃을 원하는 손님을 위해 옥수수전분으로 만든 일회용컵, 대나무펄프로 만든 포장용기 등 자연에서 생분해되는 포장재를 사용하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홍 대표는 “일반 플라스틱보다 단가가 5배 이상 비싸고, 원하는 때에 원하는 양을 구매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폐비닐 수거거부로 불거진 ‘쓰레기 대란’에 대해 “이번 기회에 쓰레기 문제가 임계점을 넘기 전에 산업과 생활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22일 ‘지구의 날’…테마는 ‘플라스틱 오염 끝내자’

오는 22일엔 세계적으로 10억명 이상이 참여하는 ‘지구의 날’ 행사가 열린다. 195개국 5만여개 단체와 협력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지구의 날 네트워크(Earth Day Network·EDN)는 올해 ‘지구의 날’ 주제로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자’로 정했다. EDN은 “미세 플라스틱이 해양 생물을 죽이고, 인간에게도 호르몬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플라스틱의 기하급수적 성장은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EDN이 제안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기’ 요령은 거절하기, 재사용하기, 재활용하기, 없애기다. 불필요한 일회용품을 거절하고, 한 번 사용한 제품을 다시 사용하고, 그래도 안되면 재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숲이나 바다에서 생태계를 위협하는 플라스틱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활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한국에서도 환경단체들이 ‘지구의 날’ 행사에 동참한다. 22일 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지구의 날’ 행사에 여성환경연대는 플라스틱이 없는 카페 ‘플라스틱 없다방’을 연다. 텀블러나 개인컵을 가져오면 무료로 음료를 제공하고 재사용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빨대를 판매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최근 폐비닐 등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 거부 사태로 불거진 ‘쓰레기 대란’이 벌어지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단기적으로 수거·재활용 업체를 달랠 대책을 발표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생산과 소비, 폐기 단계에 걸쳐 플라스틱 쓰레기양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환경단체들은 지적한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오염뿐 아니라 플라스틱 쓰레기 소각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발생하고, 토양오염을 일으켜 생태계와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며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국가의 정책, 기업의 책임 강화, 개인의 생활습관 변화 등 동시다발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부활시키고, 비닐봉지 사용 규제 등의 정책을 도입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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