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탈석탄’ 한국의 해외 석탄투자 이중성

2018.04.20 20:51 입력 2018.04.20 21:00 수정
줄리언 빈센트 국제NGO ‘마켓포스’ 대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베트남 순방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약속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균형 있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교역을 증진시킨다”는 게 핵심이다. 두 나라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에너지 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기고]‘탈석탄’ 한국의 해외 석탄투자 이중성

양국은 물론, 아시아 전 지역에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였다. 베트남은 한국에 4위 교역상대국이다. 새 협정이 발효되면 두 나라 간 무역 규모는 2020년 1000억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선언문에는 ‘장밋빛 전망’이 가득하다. 실상은 어떨까. 한국은 베트남을 합친 전 세계 화력발전소에 수십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2013~2016년 한국 공공 금융기관은 해외 석탄화력 사업에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20억달러(약 2조1300억원)를 제공했다. 반면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한 돈은 고작 3억달러에 불과했다.

문제는 지속가능한 미래와 석탄발전 투자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현재 베트남 내 에너지 인프라는 급속도로 확대돼 외국의 투자가 절실하다. 한국은 국내에서 에너지 전환을 추진 중이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이미 뛰어난 기술력도 갖고 있다. 베트남의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에 한국만큼 이상적인 파트너도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의 최근 행보는 아쉽기만 하다.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은 지난 13일 베트남 북부 탄호아성의 응이손 2호기에 8억61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 발전소에는 베트남의 다른 발전소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약 2배를 배출하는 구식 기술이 적용된다.

단기 수익에 기댄 이 같은 결정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국제적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자국에서는 미세먼지 등을 이유로 탈석탄을 선언해 놓고 해외 석탄발전에 적극 투자하는 행태는 위선적이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시민사회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베트남에서도 요즘 들어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국의 에너지는 깨끗하게 바꾸는 국가들이 왜 베트남에서는 오염을 유발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하느냐는 의문이다. 수은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의문은 분노로 바뀐다. 응이손 2호기는 한국의 신설 석탄발전소 허용치와 비교해 이산화질소(NO2) 10배, 황산화물(SO2) 8배, 미세먼지는 10배의 양을 배출한다.

이뿐이 아니다. 응이손 2호기는 해외석탄화력금융 제공에 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합의에 반하는 사업이다. OECD 합의에 따르면 회원국은 응이손과 같은 화력발전소(500㎿ 이상)에 가장 효율적인 초초임계압 방식이 아니면 금융을 제공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응이손은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초임계’ 기술을 사용한다. 이미 검토한 합의 위반 사업은 추진이 가능하다는 예외 규정이 있으나, 이는 합의 이후 ‘즉시’ 금융계약 등이 체결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응이손 사업처럼 합의 뒤 3년 넘게 지체된 사업에 대해서는 적용이 어렵다.

지난달 친환경 금융을 위한 비영리기구 마켓포스와 기후캠페인단체 지구의 벗, 천연자원보호위원회는 수은과 한국전력에 이런 우려를 담은 서신을 보냈다. 지난 6일 답장이 도착했지만 투자 과정은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실망스러운 내용이 전부였다. 수은은 베트남에서 응이손 2호기 외에 남딘 1호기와 뀐랍 2호기 등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에 20억달러 이상을 제공할 예정이다. 세 발전소의 발전 총량이 무려 3600㎿에 달하는데도 재생에너지 투자는 도통 눈에 띄지 않는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2016년 정부·재계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아시아에 석탄발전소를 더 짓는 것은 전 지구적 재앙”이라고 단언했다. 계획대로 석탄발전소를 증설할 경우 “파리기후협약의 이행은 물 건너간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한국은 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 첫걸음은 최근 한·베트남 공동성명을 제대로 이행하는 일이다. 석탄에 지원되는 금융을 당장 재생에너지 개발로 돌려야 한다. 그래야 아시아와 세계의 리더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한국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나아가 지속가능한 미래에도 보다 가까이 다가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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