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가 있어 꽃을 가꾸나…꽃이 삶의 여유를 만든다

2018.04.20 21:24 입력 2018.04.20 21:49 수정

곽원철의 ‘알프스 베베 레나’

프랑스 동남부 도시 그르노블은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환경을 자랑한다. ‘꽃과 마을의 도시’ 위원회는 이 지역에 ‘꽃 3개’의 점수를 매겼다. 곽원철씨 제공

프랑스 동남부 도시 그르노블은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환경을 자랑한다. ‘꽃과 마을의 도시’ 위원회는 이 지역에 ‘꽃 3개’의 점수를 매겼다. 곽원철씨 제공

파리를 벗어나 지방 도시 및 작은 마을들을 연결하는 국도를 차로 달리다 보면, 이따금씩 동네 이름을 가리키는 푯말 아래에 ‘꽃의 마을(Ville Fleuris)’이라는 문구와 1~4개의 꽃 마크가 그려진 노란 표지가 덧붙여 있다. 이 마을이 꽃을 비롯한 공공 환경과 주민들의 삶의 질에 얼마나 공을 들였느냐를 나타내는 일종의 인증 마크이다. 과연 꽃이 3개 이상인 마을에 들어서면, 대로변 및 이면도로, 공원과 녹지를 비롯하여 마을 곳곳의 공공장소에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화단이 정성스레 조성되어 있다.

이 꽃마크는 지자체가 임의로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꽃의 마을과 도시(Villes et Villages Fleuris)’라는 위원회가 신청한 마을들을 대상으로 엄정한 심사를 거쳐 꽃의 개수를 지정한다.

잠깐 역사를 되짚어 보자. 이 운동은 20세기 초에 철로변의 꽃길 조성을 위해 시작돼 1959년 전국 단위의 경연으로 퍼져 나갔고, 1972년에는 독립된 국가 위원회에서 관장하게 되었다. 참가 마을들도 해마다 늘어나 초기에는 불과 수백개 마을(코뮨, communes)의 참여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프랑스 전체 코뮨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만2000개의 크고 작은 지자체가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 2%에 해당하는 248개의 마을이 꽃 4개를 받았다.

프랑스의 지자체들이 이 꽃의 개수에 들이는 관심과 노력은 지대하다. 때로는 지방선거에서 쟁점이 되기도 한다. 임기 중에 꽃의 개수를 늘린 지자체장은 이를 주요한 업적으로 치장하기 마련이고, 때로는 지자체장 자리를 탈환하려는 반대파의 공격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우리 마을은 적어도 꽃 세 개는 받아야 하는데, 현 시장이 무능하여 꽃 두 개밖에 못 받고 있습니다! 저를 시장으로 뽑아 주시면, 즉시 조경 관련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여 임기 내에 꽃 세 개를 받아내겠습니다!”와 같은 선거 유세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꽃에 신경을 쓰는 마을들은 철마다 시청 소속의 공무원들이 장비를 갖추고 돌아다니며 화단의 꽃을 교체하고 공원의 녹지를 정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시에서 보내주는 공보물에는 “이번 가을 화단의 주제는…”이라는 식의 안내가 실리기도 한다.

사실 ‘꽃마을’ 지정은 경쟁 평가가 아니다. 꽃과 마을의 수를 제한하여 심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많은 마을이 꽃 4개를 목표로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의 개수가 줄어드는 지자체가 있을까? 물론 있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인구 2200명의 생타망(Saint-Amand)이라는 마을은 2015년까지 꽃 4개를 유지하다가 2016년에 3개로 강등됐다. 마을의 주요 화단과 녹지를 방문한 심사단이 광장 주변의 나무가 베어나간 점, 공원의 벤치가 방치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꽃 하나를 줄여 버린 것이다. 이는 지방 언론 등을 통해 심각하게 다루어졌다. 시장인 티에리 뱅송은 뒤늦게 녹지 조성 책임자를 교체하며 “꽃 4개 지위를 되찾을 전략을 마련하겠다” “이번 기회를 우리 삶의 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로 만들겠다” 등등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후에 시장이 약속을 지켰는지 궁금해 위원회 홈페이지에서 그다음 해 결과를 찾아보니, 아뿔싸 한 개가 더 줄어 지금은 2개에 불과하다. 아직 임기가 몇 년 남기는 했지만 시장의 연임은 쉽지 않을 듯하다.

프랑스의 ‘꽃의 마을과 도시’ 위원회는 해마다 엄정한 심사를 거쳐 한 도시의 꽃의 개수를 정한다. 1~4개의 꽃 마크는 마을이 꽃을 비롯한 공공환경에 얼마나 공을 들였느냐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꽃의 마을과 도시’ 위원회는 해마다 엄정한 심사를 거쳐 한 도시의 꽃의 개수를 정한다. 1~4개의 꽃 마크는 마을이 꽃을 비롯한 공공환경에 얼마나 공을 들였느냐를 보여준다.

꽃마을 같은 경연은 재력을 갖춘 부자 동네들만의 잔치는 아닐까? 물론 꽃을 가꾸고 화단을 꾸미는 데에는 적지 않은 예산과 인력의 투입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꼭 돈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프랑스 서북쪽에 위치한 인구 7500명의 쿨렌(Coulaines)시는, 인구의 4분의 1가량이 빈곤선에 못 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꽃 4개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부문 중 하나로 꽃과 공원이 꼽혔다. 우리가 7년 전 처음 그르노블에 살러 왔을 때, 그르노블 인근의 한 마을은 오랜 가난에 찌든 동네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조경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더니 2015년에 드디어 꽃 하나를 받는 데 성공하여 지금껏 유지하고 있다. 섣불리 인과관계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시기를 거치면서 지역 경제도 활발해져 지금은 꽤나 살 만한 동네로 탈바꿈했다.

사실 따지고보면, 꽃 가꾸기만큼 비실용적인 활동도 드물 것이다. 꽃이라는 존재는 우선 비싸고, 세심한 관리를 필요로 하며, 아무리 정성스레 가꾸어도 며칠 지나면 시들어 버리곤 한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마저도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뿐이다. 우리가 부모님 세대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자라온, ‘그거 한다고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는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바로 그 ‘무쓸모함’으로 인해 가꾸는 이의 마음의 여유를 드러내는 것이 꽃이다. 앞서 말한 가난한 마을들은, 화단을 조성하는 데 돈을 퍼붓기보다는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돕거나 교사, 경찰관 등 필수불가결한 인력을 확충해야 세금을 더 효율적으로 쓰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꽃을 가꾸는 데 필요한 것은 돈보다는 마음의 여유이다. 무엇을 삶의 보다 중요한 가치로 두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런 여유는 지자체뿐 아니라 개인 단위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부부는 프랑스에 10년 가까이 살면서 몇차례 집을 옮길 일이 있었다. 새로 살 집을 선택하는 우리의 기준 중 하나는, 동네 이웃들의 베란다나 창가에 꽃이 놓여 있는가, 아니면 빨래가 널어져 있는가였다. 이방인인 우리 가족으로서는 집 못지않게 주변 환경, 특히 이웃들이 얼마나 친절한 사람들인가가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창가에 꽃들이 놓여 있는 동네는 설령 집들이 낡고 허름하더라도 사람들의 표정에 여유가 있고, 낯선 외국인인 우리에게도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고 웃음으로 화답하곤 한다.

반면에 빨래가 널어져 있는 동네는 신축 건물에 말끔히 단장된 아파트라 할지라도, 길에 나가 보면 척 보기에도 불량해 보이는 청년들이 하는 일없이 운동복 차림으로 삼삼오오 모여 앉아 행인들을 꼬나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예쁜 꽃을 창밖에 내놓아 지나가는 이들의 마음이 밝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이웃이 많은 동네와, 빨래라든지 잡동사니 같은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제 눈에만 안 보이게 베란다에 내놓는 게으른 심보를 가진 이웃이 많은 동네 중 어느 곳에 더 살고 싶을지는 자명하다(물론 여기에는 청년실업과 구조적 빈곤 등 복잡한 사회경제학적 문제들이 얽혀 있지만 이 글에서 다룰 주제는 아니다).

꽃과 화단의 풍성함이 지자체장의 주요 업적으로 강조되고, 역세권이니 학군이니 하는 것보다 이웃들의 꽃사랑이 살 동네를 선택하는 주요 기준이 되는 풍토를 우리나라에서도 꿈꿔볼 수 있을까?

자영업자의 영업시간에 대해 적었던 지난 회차 칼럼의 온라인 반응 중에는, 쉴 때 쉬어 가며 일함으로써 창조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자영업의 살길이라는 나의 의견이 마치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 있었다(실제로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해당 회차의 말미에도 적었듯 나도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횡포에 휘둘리며 생존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2018년의 대한민국은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프랑스에 비해 그리 못사는 나라가 아니다. 나부터도 가끔씩 가족들을 만나러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나 인프라, 깨끗해진 거리, 백화점이나 마트의 온갖 새로운 상품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급속히 향상되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 듣는 고국의 소식은 온통 마음의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뿐이다. 심지어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특권을 누리고 살아왔을 재벌 3세조차 직원들과 협력사에 악악대며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러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계시니, 도대체 그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는 어쩌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금전적 이득으로만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은 아닐지.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지자체나 시골 마을 등에서 예쁜 이름을 짓고 체험 프로그램이나 각종 축제 등을 기획하여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때로는 너무 수익성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그 마을에 사는 이들의 정서와 삶의 질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의문인 경우가 있다.

유럽인들의 꽃 사랑이 부러운 것은, 비생산적인 활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보다는, 꽃을 가꾸고 그것을 이웃과 나누고 싶어 하는 그들 마음의 여유일 것이다.

▶필자 곽원철

[다른 삶]여유가 있어 꽃을 가꾸나…꽃이 삶의 여유를 만든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에서 12년 남짓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09년 프랑스로 건너갔고,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실에서 근무하게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현재는 알프스 자락에 걸친 남프랑스의 산악도시 그르노블에서 아내와 갓 태어난 딸 레나와 함께 살면서 파리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뭔가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모토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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