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 2년…여성 노린 강력범죄는 오히려 늘었다

2018.05.16 16:06 입력 2018.05.17 18:19 수정

갈 길 먼 여성 안전 사회

<b>추모 메시지 살펴보는 시민</b>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를 하루 앞둔 16일 서울 대방동 성평등도서관 ‘여기’를 찾은 한 시민이 사건 이후 서울 강남역 등 전국 9개 지역의 추모공간에 붙었던 메시지와 추모물품을 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추모 메시지 살펴보는 시민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를 하루 앞둔 16일 서울 대방동 성평등도서관 ‘여기’를 찾은 한 시민이 사건 이후 서울 강남역 등 전국 9개 지역의 추모공간에 붙었던 메시지와 추모물품을 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공용화장실 관리 강화 치중에 “모든 공간에서의 안전 중요” 여성 절반 “사회 안전 불안”

17일은 서울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아무 이유 없이 흉기로 살해된 ‘강남역 살인사건’의 2주기다. 이 사건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의 심각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지만, 여성들이 안전한 사회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강남역 사건 이후 지난 2년 동안 여성 대상 범죄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 당시 경향신문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포스트잇 1004장의 내용을 전수조사했을 때 4분의 1을 차지한 ‘추모’의 메시지 외에 ‘살아남았다’는 생존에 관한 메시지가 132차례 등장하며 가장 두드러졌다. ‘안전’이란 단어도 46차례 적혔다. 그만큼 여성들에게 당시 사건은 ‘생존’의 문제로 체감됐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생존과 안전은 여성에게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사건 이후 정부는 사건 발생 장소인 공용화장실 관리감독 강화에 집중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공용화장실에서 안전할 권리가 아닌, “모든 공간에서의 안전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원생 이모씨(26)는 대학 입학 직후 학교 근처 여학생 전용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같은 건물에 남학생과 사는 것은 위험하다”며 부모님이 직접 나서서 선택한 주거지였다. 건물 벽에는 ‘여학생 전용’이란 플래카드도 걸렸다. 하지만 ‘여성 전용’이란 말은 안전을 담보하지 못했다. 오히려 범죄의 표적이 됐다. 이씨는 “반지하 방이라 외부에서 손을 뻗으면 창문 안이 닿는 거리였는데, 누군가 바깥 창문을 열어놓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여성 전용, 남성 전용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며 “방범창과 이중잠금 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물론 일부러 남성용 신발이나 속옷을 사서 놔두거나 걸어두는 등 안전을 위한 비용을 더 써야 했다”고 말했다.

여성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건 직장이나 학교도 마찬가지다. 직장인 박다영씨(33)는 “최근 ‘미투 운동’은 직장이나 학교 같은 공적 공간도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검사도 성추행을 당하고, 대학교수도 성폭행을 당했다”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범죄를 저질러도 괜찮은 존재로 보는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안전지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 대상 강력범죄는 줄기는커녕 더 늘어났다. 16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이 피해자였던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범죄는 총 3만270건으로 2016년(2만7431건)보다 10%가량 늘어났다. 강남역 사건이 일어났던 2016년에도 여성 대상 강력범죄는 상반기 1만2185건에서 하반기 1만5246건으로 증가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전반적인 사회 안전에 대해 ‘불안하다’고 느끼는 여성은 50.9%에 달하고, 이들이 꼽은 주된 불안 요인은 범죄 발생(37.3%)이다.

그래도 변화는 있다. 연구원으로 일하는 정모씨(31)는 강남역 사건이 불러일으킨 사회 변화로 ‘여성들 스스로의 각성’을 꼽았다. 정씨는 달라진 공중화장실 풍경을 예로 들었다. 그는 “화장실 내부에 붙여진 ‘신고가 예방이다’라고 쓰인 몰카 예방 스티커에 누군가 하나하나 ‘어떻게 신고가 예방이냐’는 등의 낙서를 적어놓은 것을 봤다”며 “불법촬영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여성들이 그런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된 건 강남역 사건 이후 인식 변화 덕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년 전 추모를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아간 적이 있다는 정씨는 “여성들은 우리 사회가 해야 할 것들을 이미 모두 말했다”며 “이젠 사회가 이 요구에 응할 때”라고 강조했다.

사회 전반의 ‘미투 운동’ 여파“공적 공간도 안전 보장 못해” 2주기 맞아 다시 거리로 나서

여성들은 17일 다시 거리로 나선다.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이날 오후 7시 신논현역 인근에서 검은 옷을 입고 추모집회를 연다. 부산·대구·전북·창원 등 전국 각지에서도 강남역 사건 2주기를 추모하고 성차별·성폭력 근절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성매매 등으로 긴급 구조·보호 또는 상담을 원하시면 국번없이 1366번(여성긴급전화)으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365일 24시간 운영하며, 전문 상담소나 각 지역 정부 기관, 경찰, 병원, 법률기관에 연결해 드립니다.

사진·영상 불법 촬영이나 유포, 관련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을 겪고 있다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 비공개 게시판이나 전화(02-735-8994)로 상담을 신청하면 됩니다.(전화 상담시간 : 평일 10: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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